[내 삶의 공약, 검증한다]
<1>집 : 내 보금자리, 누가 지켜줄까요
이재명 공급량 최다, 윤석열 민간 주도 방점
정비사업 활성화 한 목소리...주거 질 악화 우려도
대권을 노리는 후보들의 시선은 너나없이 삶과 직결된 부동산에 꽂혔다. 지난 5년간 거듭된 '헛발질'로 끓어오른 국민적 분노를 목도했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부동산 정책으로 돌파구를 뚫어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목표는 매한가지다.
유권자의 관심이 어마어마한 만큼 대선후보들의 베팅 규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급계획 200만 가구는 기본으로 깔고 간다. 여기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50만 가구를 얹어 250만 가구를 제시했다. 처음에 250만 가구를 내세웠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61만 가구를 더해 311만 가구까지 치고 나갔다.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실행계획이 빠진 '숫자 경쟁'에는 우려를 표한다. 아직까지 그 많은 집을 짓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숫자만 난무하는 공약..."공급 폭탄 李, 실용노선 尹"
6일 각 정당 선거캠프의 공약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공급 물량은 이재명 후보가 311만 가구로 가장 많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250만 가구로 동일하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공공주택으로만 200만 가구다.
이 후보의 대규모 주택공급의 핵심은 수요자의 부담 능력과 선호에 맞춘 다양한 공공주택 도입이다. △임대형과 분양형을 혼합한 '기본주택' 100만 가구를 포함해 △소유지분을 순차 적립하는 '지분적립형' △일정기간 임대 후 사전 확정된 가격으로 분양 전환하는 '누구나집' △주택가격 상승분을 공공과 공유하는 '이익공유형' 주택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김포공항 주변 유휴부지(20만 가구)를 개발하고 용산공원(10만 가구) 일대 등 공공택지를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311만 가구 공급 완료 시점은 불투명하다. 이 후보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임기 내 250만 가구 공급'을 공언했으나 지난달 말 목표 물량을 '311만 가구'로 올려 잡으면서 "임기 내 (입주까지) 가능하냐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계획하면 임기 내에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 좀 바꿔달라"고 입장을 정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의 공급 확대 의지가 두드러지고 계획도 구체적이라고 평가한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까지는 가장 상세한 공급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당 후보인 데도 과거와 달리 공급의 필요성을 느끼고 확대하겠다는 방향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공택지와 수도권 주요 부지를 활용한 개발 방식은 현실화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훈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용산 부지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원화 요구가 강하고, 김포공항 주변도 이미 항공기 소음 문제로 피해보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등 반발이 커 실질적 실행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계획물량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후보는 311만 가구 중 258만 가구를 수도권에 짓겠다고 했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는 "수도권 공급 폭탄은 오히려 지방의 투기 수요만 수도권으로 불러오게 할 것"이라면서 "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주택 공급은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공주도의 이 후보와 달리 윤 후보는 민간주도로 200만 가구, 공공주도로 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외연상 이 후보보다 61만 가구 적지만, 문 정부의 발표 물량 중 현실적으로 공급 가능한 150만 가구만 계승한다는 계획이라 신규 공급 규모(100만 가구)는 이 후보(105만 가구)와 비슷한 셈이다.
윤 후보는 분양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공에 되파는 △환매조건부 주택 '청년 원가주택' 30만 가구 공급을 제시했다. 건설원가 수준으로 분양한 뒤 5년 이상 거주하면 국가에 매각해 차익의 70%를 입주자가 가져가는 식이다. △역세권 재건축 단지에서 무주택자를 위한 '역세권 첫 집' 20만 가구를 공급하고 △공공임대주택 50만 가구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등을 복합 개발한다는 구성이다.
전문가들은 윤 후보의 정책을 '실용주의 노선'으로 봤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주의로만 가는 게 아니고 중간 정도에서 실용적인 구상을 하는 것 같다"며 "무주택자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분양 모델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물량이 적은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백인길 교수는 "임대주택 비중을 감안하면 50만 가구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예고한 130만 가구의 공급 대책이 구체화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동헌 교수는 "전체 250만 가구, 수도권 130만 가구의 공급 물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해 보인다"고 짚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양강 후보와의 차별화 노력이 엿보이지만 구체성이 부족해 설익은 단계의 공약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안 후보는 5년간 250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100만 가구를 토지임대부 안심주택으로 건설하고 이 중 절반은 청년안심주택으로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심 후보는 공공택지에서 장기공공임대주택 100만 가구,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공공자가주택 1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김준환 교수는 "두 후보 모두 청년을 위한 차별화된 주택공급 노력이 눈에 띈다"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 나와야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李·尹 모두 '민간 정비사업 옥죄던 文과 다르다'...닭장 주택·집값 자극 우려도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문 정부의 '억제' 기조와 대립각을 세우며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이 후보는 지난달 말 정책 발표회에서 △'재개발·재건축 신속협의제'를 도입, 정부·지자체·주민 간 신속 개발에 협의가 되면 인허가 통합심의를 적용해 사업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할 수 있는 '4종 주거지역' 신설과 △가구수·수직 증축을 확대하는 '리모델링 특별법' 제정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 등의 방안도 언급했다.
다만 방점을 '공공주도'에 찍었는데, 이런 기조가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일부 지역에서 공공주도 정비사업이 이뤄질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업은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은 보완적으로 개입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인센티브가 이전 정책의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명훈 교수는 "용적률 500% 상향은 현 정부의 '8·4 대책'과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에서 이미 제시된 내용이고 통합 심의도 마찬가지"라면서 "용적률 상향만큼 기부채납을 부담하게 할 경우 오히려 주민 동의를 얻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는 △용도지역 변경과 용적률 상향 등 '쌍끌이' 규제 완화로 민간주도 정비사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30년 이상 공동주택 정밀안전 진단 면제 △과도한 기부채납 방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대폭 완화 △역세권 재건축 용적률 최대 700%까지 완화 등을 통해서다. 조성 30년이 넘은 1기 신도시를 활성하는 특별법 제정 계획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억제' 일변도였던 문 정부의 기조와 정반대인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성태윤 교수는 "주택도 시장원리에 의해 공급돼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번 정부의 부작용을 교정하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김준환 교수는 "시장 친화적인 개발 방식으로 주택 소유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방향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중요한 건 급등한 집값의 정상화"라면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완화는 현재의 주택 가격을 그대로 두겠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이명훈 교수는 "개발 호재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값 상승이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과도한 용적률 완화로 주거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인길 교수는 "용적률 규제를 풀면 채광이나 통풍 등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면서 "주택 공급을 늘리려다 되레 주거의 질이 악화되고 도시 경쟁력은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급 폭탄'만 앞서고 재원 마련 대책은 깜깜
'숫자 경쟁'에 매몰돼 정작 재원 마련책은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은 네 후보 모두에게 해당한다.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 후보의 기본주택 100만 가구 건설에 220조 원이 소요된다"고 꼬집었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측 유경준 의원은 윤 후보의 공공분양주택에 대해 "30년간 기회비용이 1,000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해를 넘기고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도 각 정당 캠프는 '정부 예산과 세출 구조조정' '공공리츠 및 주택도시기금' '부동산 관련 세제 강화' 같은 개괄적 수준에서 재원 확보 대책을 마련 중이다. 선거 전에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재원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적다.
성태윤 교수는 "공공주도 사업은 재원확보 문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며 "공공택지를 활용한 개발에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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