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022 사드의 정치학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5년 전에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둘러싼 논쟁이 2022년 대선 판을 달구고 있습니다. 북한이 올 1월에만 미사일을 7차례나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을 꺼낸 겁니다. 2017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로는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하니 추가로 들여와 북한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2,000만 명의 수도권 주민을 구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한반도에 있는 사드는 주한미군 자산인 만큼 한국군이 운용할 수 있도록 1조5,000억 원을 주고 미국에서 직접 사오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수도권은 고고도 미사일 해당사항이 없다”며 윤 후보의 공약이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연일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다시 사드를 배치해 중국 반발을 부르고 경제까지 망치려 하느냐”고 쏘아붙였습니다.
사실 사드는 5년 전 중국의 보복으로 홍역을 치렀던 기업인들과 ‘유해 전자파’ 논란으로 악몽에 시달린 성주 주민들에겐 다신 떠올리기조차 싫은 이름입니다. 중국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소상공인까지 그 여파를 체감하는 등 우리 경제에 던진 충격파가 컸기에 사드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정도였지요. 사드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까지 나왔으니까요.
5년 만에 재등장한 사드를 둘러싼 논점은 ‘사드가 수도권 방어에 필요한가’와 더불어 ‘5년이 지난 지금도 추가 배치를 고민할 정도로 한반도에 도움이 되는 무기체계냐’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의 고래싸움에 새우등처럼 우리만 터지게 만든 사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사드가 뭐기에… “높이 나는 적 미사일 잡는 미사일”
사드는 쉽게 말해 ‘높은 고도(40~150㎞)에서 떨어지는 적군의 미사일을 잡는 미사일’로 미국의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사가 붙인 무기 상품명입니다. 독보적 존재감으로 상품명이 제품 그 자체로 굳어진 반창고의 대명사 대일화학공업의 ‘대일밴드’나 국민 조미료인 대상의 ‘미원’처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대공 유도미사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최근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UAE)에 4조 원어치를 팔기로 한 ‘지대공 미사일 요격체계’ 천궁Ⅱ와 패트리엇이 15~40㎞의 낮은 상공에서 떨어지는 미사일을 격추한다면, 사드는 그보다 높은 상층에서 미사일을 잡아냅니다.
사드(THAAD)의 약자는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인데요, 한국어로 직역하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입니다. 방어체계라고 붙인 이유는 미사일을 쏘려면 여러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통상 사드 한 개 포대는 요격 미사일 말고도 △발사대 6~9기(1기당 미사일 8발 장착) △사격 통제 레이더 △포격 통제소 등으로 구성됩니다.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에는 발사대 6기가 있기 때문에 총 48발의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미사일 한 발당 가격은 11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사일 가격이 이렇게나 비싼 건 사드의 성능 때문입니다. 사드의 최대 사거리는 200㎞, 요격고도는 40~150㎞에 이르기에 상당히 넓은 면적을 방어합니다. 또 속도가 마하 14(초속 4.76㎞)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군에 배치된 패트리엇3의 요격 속도가 마하 3.5~5인 점을 감안하면 사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13년 시작된 사드 논란… 정부 대응은 '3NO'
사드의 한반도 배치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2013년입니다. 한반도에 사드를 가져오려던 미군의 군불때기가 시작된 때로 관련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청이 없었기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이른바 ‘3NO 방침’으로 일관했습니다. 우리나라 1위 교역국인 중국을 의식한 겁니다. 사드의 고성능 X밴드 레이더(전진배치용)는 탐지거리가 1,200~2,000㎞에 달해 중국 전역의 군사 동향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의 반발을 감안해 성주 사드 포대에는 탐지거리가 600~800㎞로 한 단계 낮은 레이더가 배치됐습니다.
정부의 3NO 방침이 “미국 요청이 오면 국익에 따라 검토한다”는 쪽으로 바뀐 건 2016년입니다. 북한이 사거리 1,300㎞인 노동미사일을 발사각도를 높여 쏜 것이 표면적 계기가 됐습니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고각발사로 쐈을 때 고고도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격추할 방어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40㎞ 이하 저층 방어용 무기는 있었지만 상층 방어는 공백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최고의 요격무기’라 찬사받는 사드를 왜 하필 경북 성주에 배치한 걸까요. 처음부터 수도권 인근에 뒀다면 지금처럼 추가 배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윤 후보 말처럼 수도권은 사드의 보호망 밖에 있습니다. 사드의 최대 사거리는 200km인데, 서울에서 성주는 260km 넘게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 사드 배치하면 일어나는 일들
윤 후보 공약대로 사드를 수도권 인근에 배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북한이 수도권을 향해 날리는 미사일을 하나도 막지 못합니다. 수도권에 떨어지는 단거리 미사일은 40㎞ 미만의 낮은 고도로 비행하기에 40㎞ 이상을 커버하는 사드의 요격 범위를 벗어납니다. 실제 북한이 지난달 14, 27일 발사한 대남용 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의 고도도 각각 36㎞, 20㎞였고요. 사드 배치를 강행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방백서에도 “수도권 방어에 있어 사드보다 패트리엇이 더 유용한 요격무기체계”라고 명시됐습니다. 실제 군 당국은 2020년 수도권 남부에 배치된 패트리엇 포대를 청와대 인근 북악산으로 옮겼습니다.
북한이 전진 배치한 장사정포(야포와 방사포)의 무차별 공격에 사드 포대가 초토화될 위험도 있습니다. 북한의 신형 방사포 사거리는 200km입니다. 380문이나 되는 장사정포를 동시에 발사하면 1조5,000억 원 들인 사드 포대가 쑥대밭이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장사정포 역시 40㎞ 이하로 나는데요. 백 번 양보해 그 이상의 고도로 날아온다 해도, 48발을 보유한 사드 포대가 380발을 당해내긴 역부족입니다.
지금도 성주에서 계속되는 사드 반대 시위가 청와대 앞에서 더 큰 규모로 매일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드 레이더가 강력한 전자파를 내뿜는 탓에 전방 100m 내에는 사람 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2.4㎞까지는 일반 항공기가 비행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5년 전 “괌 사드 포대 레이더에서 방출된 전자파를 1.5㎞ 떨어진 곳에서 측정한 결과, 가정용 전자레인지 돌리는 수준이었다”는 국방부 발표가 성주 주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던 것처럼 수도권 주민들에게 통할 리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드 레이더가 본토와 더 가까워지는 중국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겁니다. 윤석열 캠프는 “2017년에는 주한미군이 성주에 배치한 거라 중국이 반발했다”며 “우리 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구매한 사드라면 중국도 반발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조차 ‘한복공정’ 논란을 자초한 중국에 이런 배려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2016년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경기 평택과 오산은 물론 강원 원주와 경북 칠곡, 전북 군산, 부산 기장 등이 줄줄이 탈락하고 성주가 최종 낙점된 이유입니다.
한국인 보호용이냐, 미군 보호용이냐
굳이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추가 배치를 고민할 정도로 사드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 보호에 도움이 되는 무기체계인 건지 근본적 의문이 남습니다. 실제 5년 전, 미국이 남한 전역을 완전히 방어하려면 최소 사드 포대 2개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미군과 보조를 맞추던 군 당국이 당시 사드 배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예를 든 미사일은 스커드(사거리 300~600㎞)와 노동(1,300㎞), 무수단(3,600㎞)입니다. 스커드를 제외한 노동과 무수단은 사거리가 한반도를 넘어섭니다. 이에 군 당국은 고각발사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노동과 무수단을 고각발사로 쏘아올리면 한반도로 떨어질 텐데 이들을 높은 고도에서 요격할 미사일은 사드뿐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윤 후보 주장도 같습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는 주일 미군기지와 괌을 겨냥해 만든 값비싼 미사일을 고각발사까지 해가며 남쪽으로 쏠 정도로 북한이 바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각발사는 땅덩이와 해역이 좁은 북한이 주변 영공과 영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중장거리 미사일 성능을 테스트하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실전에서 위험 부담이 큰 고각발사를 택할 리 없겠지요.
다만 당시 국방부의 논리는 주한미군의 입장에선 통합니다. 주일 미군기지와 미국령인 괌에 떨어질 미사일을 한반도 상공에서 격추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성주와 미군 험프리스 기지가 있는 평택까지의 거리도 사드 최대 사거리인 200㎞입니다. 스커드 미사일이 평택에 떨어져도 방어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드가 우리 국민보다는 미군 보호용이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를 미군의 일로만 보긴 어렵습니다. 한미연합작전의 파트너로 전쟁 시 증원될 주한미군의 보호는 곧 우리 국민을 지키는 길이니까요. 북한이 한반도를 벗어나는 미사일을 쏘는 이유 중 하나도 유사시 주한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용입니다. 또 미사일 대비는 이중삼중의 다층방어망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사드가 고고도에서 한 번 더 막아준다는데 우리에게 나쁠 게 없습니다. 우리는 기지만 제공했을 뿐 미국 돈을 들여 배치했으니까요.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 없어야 하고,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더 격화되고 5년 전과 달리 우리에겐 ‘한국형 사드’라 불리는 상층을 방어할 장거리 지대공 유도 미사일 L-SAM(40~70㎞)이 있습니다.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로 2027년 전력화될 예정입니다.
‘2조 사드’ 공짜로 얻고 17조 잃었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실시간으로 탐지할 수 있게 된 건 2013년 탄도탄감시레이더를 도입하면서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주한미군이 알려주기 전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쏜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합니다.
5년 전 사드를 들여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층을 지킬 미사일 방어망이 뻥 뚫렸기에 온갖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러가며 미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 손으로 만든 천궁Ⅱ를 전력화했고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중동에 수출까지 했습니다. 40㎞ 이상 상층을 방어할 L-SAM 배치도 머지않았습니다.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사드와 L-SAM의 성능이 완전히 같진 않지만 벌써 L-SAM2 개발을 준비할 정도로 성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며 “사드가 아니라 한국형 방어체계(KAMD)를 계속 고도화시켜 나가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습니다. 2조 원에 가까운 주한미군의 사드를 공짜로 얻은 대신, 중국 보복으로 최대 17조 원의 경제 손실이 났던 5년 전 교훈이기도 합니다. 남한에 사드 포대는 한 개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