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4명 줄어든 828명으로 집계됐다.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다. 당초 정부의 목표치는 달성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노력하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산재지표의 긍정적인 변화 추세를 지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돼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른바 '후진국형 재해' 문제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추락 끼임 등 후진국형 재해의 비율이 전체의 53.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48.3%)과 비교해 오히려 늘었다. 이런 재래형 재해의 대부분은 기본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했다면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해 나가고 있음에도 이 같은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안전에 대한 의식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됐다. 특히 이 법이 우리 산업현장 근본적인 안전 문제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법 시행을 계기로 산업현장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안전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조직 정비를 끝낸 기업들도 법 시행을 맞아 현장 안전에 더욱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중대재해로 경영책임자가 직접 처벌받는 상황만큼은 피하자'는 정서가 이러한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등 일련의 상황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중대재해법은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 스스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토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법이 요구하는 의무사항 등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기업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업 최고경영자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며 조급해하기보다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후진국형 재해를 막기 위해 예방 중심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정착시키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노동조합, 노동자 개개인들도 안전수칙 준수 등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다.
이제는 최고경영자부터 일선 노동자까지 모두가 안전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공감하며, 실질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 민간재해예방기관에서도 기업과 노동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빈틈은 메우고, 미흡한 점은 보완하는 등 다각적 지원에 힘써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들이 주어진 과제를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때 이 법은 위기가 아니라 경쟁력 있는 일터를 조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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