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민심’을 다독이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관영매체를 동원해 자력갱생, 사상무장 등을 강조하며 주민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찌감치 예고한 공식 회의체 개최 여부조차 언급을 꺼릴 만큼 ‘숨고르기’ 양상이 두드러진다. 혈맹 중국의 스포츠 축제 탓에 무력시위가 부담스러워진 현실을 감안해 당분간 대외 행보를 자제하면서 오랜 경제난 여파로 느슨해진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7일 논설에서 “남의 도움을 받아 잘 살아 보려는 것보다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며 “외부 영향에 끄떡없는 강력한 자립경제가 우리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국경봉쇄가 길어지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 움직임이 뚜렷해지자 어려워진 주민 생활을 ‘자립 추구’ 과정으로 포장, 고통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다.
북한 생산 인구의 주축인 청년세대의 사상무장도 독려했다. 신문은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게 된 비극적 사태는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과 물질 지상주의에 빠져 혁명적 원칙에서 탈선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투철한 반제계급의 의식을 깊이 심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 지도부는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할,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갈수록 외부세계를 동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외부문화를 접한 청년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게 한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북한의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데일리NK 등 북한전문매체들은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까지 강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피로감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은 얼마 전 통근버스 등에 방역소독 인원을 무조건 한 명씩 태우게 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방역법 위반으로 단속토록 했다. 또 내륙 지역의 여행은 허용했으나, 여행증명서 발급 절차는 더 까다로워졌다. 주민 편의를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인민적ㆍ선진적 방역체계’로의 전환을 내세우고도 통제 수위는 외려 높아진 셈이다.
북한 당국의 시선이 한동안 내부로 향할 것이라는 징후는 이뿐이 아니다. 북한은 6일로 예정됐던 최고인민회의 보도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 북한은 회의체가 열린 다음날 관련 소식을 전하는 게 관례였다. 가뜩이나 이번 회의는 1월 7차례 미사일 도발 뒤 개최하는 첫 회의라 대외 메시지가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에 관심이 쏠렸었다. 회의 일정이 변경됐거나, 2일차 이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 베이징올림픽을 고려해 보도를 아예 뒤로 미루는 시나리오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없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국가사업 이행에 더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미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철회를 시사한 만큼 내놓을 수 있는 대외 메시지는 모라토리엄 파기뿐”이라며 “협상력 확보를 위해서도 대외 관계에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내부위기는 정면돌파하는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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