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제동 장치 없는 법률자문 시장
고문 변호사 '법률 사무' 계약 따라 천차만별
합법과 불법 경계 법원 판단도 제각각 '혼란'
고문 변호사 활동과 자문료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전관예우 문제와 함께 변호사업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재판부 청탁 명목으로 100억 원을 받는 등 법률 자문 시장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법조계의 '곪은 상처'로 꼽힌다.
특히 고문 변호사들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 속에서 거액을 챙겨 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처벌과 규제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높다. 변호사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이 없는 데다, 불법 혐의로 수사를 받아도 '변호사'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땅한 제동 장치가 없는 탓에 좀더 과감한 방법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변호사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다룰 수 없는 일 없어" 세밀한 규제 쉽지 않아
법조계에선 법률자문 시장이 변호사의 편법과 불법 활동이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고 평가한다.
일단 계약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고문 변호사의 경우 계약서상 명시된 활동 범위가 기업 등의 요구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 매우 포괄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문을 하는지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법률사무 수행에 국한된 활동을 하는지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문이나 자문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기도 쉽지 않다. 변호사법에서 허용하는 변호사의 업무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만나 합의를 유도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를 설득하는 일도 변호사 활동인 소송사무나 일반 법률사무로 인정되고 있다. 그나마 금지하는 활동은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 또는 사무와 관련해 청탁·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거나 전달하는 일 정도다.
기업 자문 경험이 풍부한 전관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법과 엮이지 않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변호사가 다룰 수 없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며 "그만큼 고문이나 자문 역할에 제한을 두기는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자문 변호사가 은행장 만나 청탁 "정당한 법률사무"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알선과 청탁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알선과 청탁은 고문 변호사 업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짭짤한' 수입을 안겨주고 있지만, 로비스트 활동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도 재판부마다 유·무죄 판단이 갈리는 게 변호사의 알선과 청탁 업무"라고 지적했다.
최근 1심과 2심에서 극과 극의 판단을 내린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의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재판매 청탁'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윤 전 고검장이 변호사 신분으로 손태승 우리은행장을 만나 라임 펀드 재판매를 청탁한 행위(알선수재 혐의)가 정당한 자문 활동인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윤 전 고검장이 법정에 서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다른 기업들과는 자문 기간을 정하고 매달 200만~400만 원의 고문료를 정기적으로 받았지만, 라임에선 자문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2억2,000만 원을 일시불로 지급받았다.
1심은 "법률전문직으로서 정상적 활동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징역 3년을 선고한 반면, 2심은 "변호사는 윤 전 고검장과 같은 일반 법률사건에 관한 대리·청탁·알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와 법조계, 규제 대안 심각히 고려할 때"
변호사가 대면 접촉이나 전화 통화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청탁 정황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의혹을 받더라도 청탁한 사람과 청탁받은 사람이 입을 다물면, 불법 여부를 밝혀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관 변호사나 로펌 소속 고문 변호사의 반칙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계는 또렷하다. 특정 사건을 수임하는 형태가 아니라 포괄적 형태로 고문 계약을 체결한 뒤 활동하면, 의심스런 정황이 포착돼도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합법적인 알선과 청탁 범위에 대한 판례가 없어서 변호사 활동에 대한 위법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기준이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변호사 활동의 범위를 법률로 일일이 규정하기 어려운 만큼 변호사단체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그나마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로펌 소속의 한 중견 변호사는 "로펌과 개인 변호사마다 자문 계약과 관련해선 기본적인 틀과 기재 내용이 다르고,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는다"며 "우려되는 부분을 모두 법을 통해 규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모범 사례와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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