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양극화 해소 위한 노동·복지 공약 토론회]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 연대해서 질의
각 분야 전문가와 활동가들 공약 평가 내놓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임기 내 청년 고용률 5%포인트 상향’과 같은 수치 중심의 공약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고용률 상승 자체에 매몰될 우려가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국민건강부 신설 공약은 사회서비스와 의료서비스의 통합적 접근을 제한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노동 의제를 찾아볼 수 없거나 매우 소극적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러 차례 요청과 촉구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양극화 분야 공약 답변을 하지 않아 유감입니다."
9일 참여연대 등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불평등끝장 2022 대선유권자네트워크(불평등끝장넷)'와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한 '노동·복지 분야 불평등·양극화 해소 위한 대선후보 공약 토론회'에서 복지·노동 분야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지적한 내용들이다.
한국은 주요 국가 중 불평등과 양극화가 매우 큰 나라에 속하며 그 간극도 커지고 있지만, 노동·복지 이슈는 대선후보 TV토론 등 주요 토론장에서 밀려나 있다. 이런 면에서 이날 토론회는 복지·노동 분야의 공약들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박정은 불평등끝장넷 공동집행위원장은 "2022년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위협은 불평등과 양극화"라며 "대선후보들에게 관련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토론회 모두발언을 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제는 경제 대통령이 아닌 복지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모두발언을 대독한 이수진 민주당 의원(선대위 국민건강보건의료위원장)은 "억강부약의 좋은 정치로 대동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수진 의원과 김병권 정의당 후보 캠프 정책본부장은 직접 공약도 설명했다. 이재명, 심상정, 안철수 후보는 사전 공약 질의에 답변을 보내왔고, 윤석열 국민의당 후보는 답변을 거부해 공약 분석이 어려웠다.
토론회에서 각 분야 전문가와 활동가 8명이 공약을 평가했다. 윤석열 후보의 공약 중 기존 발표된 것이 있는 분야는 일부 참고했다.
"이재명 '보육을 교육부로 통합', 사회적 합의 필요"
사회보장 분야 평가자: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재명·안철수·심상정 후보는 생계급여·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 50%, 초등돌봄 이용률 40%까지 확대에 모두 동의했다.
이 후보는 전국민 고용보험과 자영업자까지 포함하는 상병수당을 별도 공약으로 약속했지만, 유급병가는 단체협약 사항이라며 민간 자율의 영역에 남겨 놓았다. 심 후보는 소득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소득기반 사회보험’ 공약을 내놓아 전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한 셈이다.
현행 40%인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40년 가입 기간의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연금으로 월 40만 원을 받게 됨) 인상은 심 후보만이 50% 인상에 동의했다. 이 후보는 보험료 인상을 들어 답변을 유보했고, 안 후보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심 후보의 국민건강부 신설 공약은 사회서비스와 의료서비스의 통합적 접근을 제한할 우려가 있으며, 이 후보가 발표한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유보통합(교육과 보육 통합)은 면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안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동의한 의료영리화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재정 확충 방안으로 이 후보는 누진적인 과세체계 확립, 심 후보는 최고세율 구간 범위 확대 등 다소 엇갈린 대답을 내놓았다. 비과세 감면 제도 단계적 폐지에 이 후보, 심 후보는 찬성했으나 안 후보는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못 박았다.
이 후보의 토지보유세와 탄소세 등을 재원으로 활용한 연 100만 원 수준(청년 연 200만 원)의 기본소득 공약이 절대빈곤 해소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복지재정 확보 방안과 관련해서는 어느 후보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최저소득보장, 윤석열·안철수 후보 소극적"
소득보장 분야 평가자: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저성장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제도적인 재분배를 적극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후보는 농어촌·청년층 대상 '부분 기본소득'과 아동수당 확대·장년수당 도입 등을 제시했고, 심상정 후보는 소득 하위 50% 이하 국민에게 월 100만 원을 보장하는 '시민최저소득'을 제시했다.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실질적 효과와 국민 지지에 성패가 달렸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보장성 강화, 대상 확대에 소극적이다. 다만 윤 후보의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지급기준 확대'(중위소득 30%→35%), 안 후보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같은 공약은 유의미하다. 이 정도 개혁을 제대로 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정의당은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 등 '일하는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전국민 소득보험을 공약했다. (윤 후보를 제외하고) 세 후보가 상병수당(아파서 쉬는 근로자에게 소득 일부 보전) 제도화에 찬성한 것은 긍정적이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어려운 개혁과제란 이유로 '초고령 사회 대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선 전반적인 논의가 더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실패한 공약 반복, 빈곤층 정책 수립 참여해야"
소득보장 분야 평가자: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기존 사회보장 정책은 선정기준이 낮고 까다롭다는 고질적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빈곤율은 2001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한 최옥란씨의 노숙 농성 이후로도 20년간 16%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새 정부 예산은 6배 늘었지만 생계・의료급여 수급률은 여전히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이재명 후보, 안철수 후보는 각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 후보는 생계급여 보장수준 현실화도 약속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한 공약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문재인 정부에서 단계적 실천을 명목으로 무한 대기한 끝에 사실상 파기된 공약이다. 생계급여 보장수준 현실화 역시 현 정부가 기준 중위소득과 실제 국민소득 중간값의 간극조차 좁히지 못하면서 이행에 실패했다.
이전 정부의 공약파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서비스, 의료, 주거, 노동 등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정책 전반에 변화를 줘야 한다.
제도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빈곤층이 직접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등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민주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소득보장제도의 포괄성과 적정성 확보를 우선순위로 정하고 예산을 포함한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후보들, 노인장기요양시설 국공립 확충 외면"
돌봄 분야 평가자: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돌봄서비스에 대해선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 영역’으로 보는 시각과 '정부가 공적 책임을 지는 사회보장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동안은 공적 재원을 투자해 '저비용'으로 막대한 수의 민간 자영업자를 육성해 온 식이었다. 이는 불충분한 서비스와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로 이어졌다.
네 명 후보 모두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를 약속한 건 긍정적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도 공감대가 높다. 이 후보, 심 후보는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을 50%로, 안 후보는 공공보육 이용률 70% 확대를 공약했다. 하지만 왜 보육만 50%인가. 공공비중이 1% 남짓인 노인장기요양시설에 대한 국공립 확충 비중 목표를 밝힌 후보는 없다.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어린이집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3차 중장기보육 기본계획(2018~2022)에 이미 포함된 내용으로, 재정 투입 같은 구체적인 대책 제시가 필요하다. 많은 돌봄 노동자가 적은 수의 사람을 돌보는 환경이 돼야 한다. 이 역시 요양과 장애인 활동지원 영역에 대한 정책은 빠져 있다.
좋은 돌봄서비스를 위해선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를 방문한 네 후보가 '사회복지종사자 단일임금체계 도입' 등 처우 개선을 약속한 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요양보호사 45만 명이 시급제로 일하는 불안정 일자리를 정부가 계속 만들어내는 사업구조 자체를 방치하고서는 종사자 처우개선도 의미 없다. 고용 유형 개선, 재정 투입 등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윤석열 후보만 공공의료 강화 입장 없어"
보건의료 분야 평가자: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한국은 코로나19 초기방역엔 성공했지만, 공공병상과 인력 부족으로 의료자원이 쉽게 포화되는 일이 반복됐다. OECD의 공공병상 비중 평균은 75%인 데 반해 한국은 10%이며, 인구당 활동 간호사도 OECD 평균의 절반 이하다.
심상정·안철수 후보가 △전국 70개 중진료권 중 공공병원이 없는 30개 지역에 공공병원 신설 △간병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인력확충 등에 찬성했다. 이재명 후보도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가 70개 중진료권별 공공병원 1개 이상 확보를 공약했으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실제로 설립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해소할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탈모치료 급여화, 피임·임신중지 보장성 확대 등 '소확행' 공약은 각각은 찬성할 만하나 정책 중요도가 떨어지며, 정작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체계적 정책 제시가 없는 건 문제다.
심 후보는 공공병원 신증축, 예타 면제라는 지지할 만한 입장을 밝혔다. 간호인력 기준을 법제화하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안 후보는 '공공병원 신설에 찬성하지만 의료인력 충원이 먼저' '의료인력 확충에 공감하나 직역단체 의견을 듣고 단계적 시행'이라는 입장에서 보듯 공약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 공공의료 정책보다는 '바이오산업 육성' 등 의료산업화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공공의료 강화 관련 공약이 아예 없다. 보건위기 해결을 위해 민간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공공정책 수가' 신설)을 제시했는데, 이는 민간의료 중심 체계를 고착화하겠다는 생각이다. 도리어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의료 도입 등 '의료영리화' 정책이 두드러진다.
"후보들 노동자 차별 폐지는 공감했으나..."
취약 노동자 차별 해소 분야 평가자: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
이재명·심상정·안철수 후보 모두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 금지 및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불법파견 근로감독 및 처벌 강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 폐지 등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이 후보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법 제정과 '동일 가치노동 동일 임금·처우' 제도화 등을 내세웠는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없다. 상시지속 업무에 대한 정규직 고용 원칙을 세우고 파견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등의 심 후보 공약이 가장 실질적이다. 노동관계법 유연화 도모 등 안 후보의 공약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같다.
심 후보만이 간접고용이 많은 기업에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는 공약에 동의했다. 이 후보는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겠으나 강제할 순 없다"라고 밝혔고, 안 후보는 반대했다.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은 안 후보만이 반대했다. 단체교섭권은 노동기본권(국제노동기구는 한국정부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을 여러 차례 권고) 중 하나이다.
"이재명 장기 안목 부족, 심상정 구체성 아쉬워"
노동 분야 평가자: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이번 대선은 노동공약이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당면과제 관련 정책은 구체적이지만 장기적 안목은 부족하다. 채용 및 임금 차별 해소 공약은 성별임금 격차를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를 예리하게 짚었다. 다만 '임기 내 청년 고용률 5%포인트 상향’과 같은 수치 중심의 공약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고용률 상승 자체에 매몰될 우려가 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 공약 역시 당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겠으나, 비정규직 상태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맹점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심상정 후보는 이 후보와 반대로 장기적 해결 의지가 가장 높아 보이지만 내용의 구체성이 아쉽다. 플랫폼노동, 기후위기, 젠더격차 해소 등 노동 관련 이슈를 폭넓게 다루며 장기적인 시야가 두드려졌다. 최소노동시간 보장제, 평등수당 등 공약은 단시간·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고 청년일자리 보장제, 지방대 의무채용 상향 등은 청년・지역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성을 채울 필요가 있다.
안철수 후보는 노동 의제를 찾아볼 수 없거나 매우 소극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반노동적 기조가 뚜렷하다. 기업 자율성 확대는 외려 일자리 불안정성을 유발한다. 산업재해 사망 사건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등 반노동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공약과 발언에 일관성이 부족해 진정성이 의심된다.
"노동문제에 자꾸 국가는 빠지려고 해"
노동 분야 평가자: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유력 후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만 정책을 내놓고 관리하는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노동정책의 맹점을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사회적 대화와 합의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 노동법과 제도는 국가 주도의 수출, 대기업 육성 전략의 하나로 꾸려졌기 때문에 정작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다. 노조가 아니라 과거 정부가 주도해 (노동법을) 그렇게 만들었다. 유독 노동기본권 문제만 나오면 국가는 쏙 빠지고 사용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이 강하다. 노동기본권 보장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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