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인 이종덕 ‘영 이너폼’ 대표
"지금 무너지면 개성 못 가… 악물고 버텨"
개성공단 입주 기업 4곳 중 1곳 휴·폐업
"정치적 이해관계 떠나 협력 물꼬 트이길"
“6개월이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6년이 다 되도록 개성 땅을 밟지 못했네요.”
8일 경기 고양시 속옷 제조기업인 ‘영 이너폼’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덕(63) 대표는 기자를 만나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인 그는 공단 폐쇄 6주년을 사흘 앞둔 이날 “정부 말만 믿고 인생 전부를 걸었는데 6년째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공단 입주기업의 생존을 위해 재개가 더 늦어져선 안 된다”고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에게 2016년 2월 10일은 가장 아프고 슬펐던 날로 기억된다.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맞서 공단 전면 운영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다음 날 공단 폐쇄와 함께 우리 국민의 전원 추방 및 자산 동결 조치를 발표했다.
이 대표를 비롯해 쫓기듯 개성에서 철수한 기업인들은 남북 경협의 선두 기업에서 한순간 일터를 잃어버린 신세로 추락했다. 이후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8년 개성에 새 공장(5,950㎡)을 가동한 뒤 10년 가까이 손발을 맞춰온 북한 근로자 350여 명과 속옷 원재료, 제조설비 등까지 모두 잃어버린 탓에 수십억 원어치의 물품 납품 기일을 맞추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이 대표는 “하루아침에 미아가 됐다. 원부자재를 새로 구입하고, 서둘러 중국과 베트남 등에 대체 공장을 얻어 제품 생산에 들어갔지만, 납기 클레임에 금형제작 등 막대한 추가 비용을 대느라 그해에만 20억 원 넘게 손실을 봤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생산 기지를 옮긴 베트남과 캄보디아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현지 근로자 대부분이 북한 근로자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졌고, 언어나 문화 장벽도 채산성을 악화시켰다.
“대표 동무는 일감만 따오시라, 우리가 밤을 새서라도 납기는 맞추겠다”며 자신을 식구처럼 대하던 북한 근로자들을 떠올리면 개성 공장 폐쇄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한때 연 100억 원대 매출(임가공 계약 기준)로 대북 유망기업인으로 꼽혔던 이 대표는 공단 폐쇄 여파로 다른 개성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적자에 시달렸다. 생산비가 급증한 탓도 있지만 경영 불확실성도 발목을 잡았다.
그는 “2013년 개성공단 중단 사태 때처럼 반년이면 공단이 재개될 것으로 보고 회사를 운영했는데, 6년간 진전이 없었다”며 “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 불필요한 지출로 이어져 경영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대표는 공단 재개가 늦어지자 2018년 베트남에 땅을 사 공장을 새로 지었다. 이후 서서히 예전 매출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 공장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80억 원의 재투자 비용을 끌어 모아 투자했던 게 여전히 그에게는 부담이다. 그는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도 “지금 무너지면 다시는 개성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처갓집까지 담보 잡아 회사에 돈을 쏟아 붓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참담한 심정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개성공단이 곧 내 인생이기 때문에 다시 공단 문이 열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상당수는 경영 부진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개성공단 사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3곳 중 30곳(24%)은 자금 압박으로 결국 휴·폐업 상태에 빠졌다.
이희건 경기개성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개성공단 기업인 모두 다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혹한의 시기를 버텨내고 있다”며 “정부만 믿고 위험을 무릅쓰고 북으로 갔던 기업인들을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성을 갖고 공단 재개와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새해에는 남북 화합의 불씨가 되살아나 경제 협력의 물꼬가 다시 트이길 기대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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