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창·온라인 게시판서 공격적 모욕 지속
사이버불링, 여성 등 소수자에게 더 가혹
혐오 전파, 인터넷 특성상 뿌리뽑기 어려워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와 유튜브 등에서 활동한 방송인(스트리머) '잼미님(본명 조장미·27)'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은 일제히 충격에 빠졌다. 죽음 전까지 그의 곁에 있지 않았던 모두가 목소리를 냈다. 인터넷 언론을 넘어 기존의 언론이 보도를 내고, 팬과 평소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를 넘어 정치인이 추모 메시지를 내고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잼미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이버불링'은, 몇 년째 문제라는 목소리만 나오고 있을 뿐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우선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인터넷 방송인을 다루는 게시판에서 '인터넷 여성 혐오'의 전형성이 드러나는 집요한 사이버불링이 있어 왔다.
그리고 '사이버렉카'로 불리는 대형 유튜버마저 이를 다루면서, 악성 루머가 악성 루머를 낳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혐오와 극단적인 행동을 사실상 방조하는, '관심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인터넷 플랫폼의 구조가 이를 추동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 사이버불링에 취약한 까닭
2000년대 초 등장한 인터넷 방송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소통'의 방식 중 하나로 크게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플랫폼인 '트위치'도 시청자 수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관심이 늘어난 만큼 다뤄야 할 문제도 늘었다. 방송인을 향한 증오성 행위와 괴롭힘도 그중 하나다.
트위치는 기본적으로 개인 방송인이 다수의 시청자와 대응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공개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구조로, 유튜브 등 완결된 영상을 공유한 다른 플랫폼과 달리 실시간 소통이 핵심인 플랫폼이다. 방송에 만족하는 팬들이 구독과 후원의 형식으로 방송인을 지원하면, 플랫폼과 방송인이 수익을 나눠갖게 된다.
물론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도 실시간(라이브) 방송이 가능은 하지만, 트위치만큼 그 비중이 크지는 않다. 국내에서도 트위치와 아프리카TV에서 유명한 방송인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는 방송 하이라이트를 편집해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 양상이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매력인 상호작용은 그러나 방송인을 인신공격과 부당한 괴롭힘에 노출되기 쉽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이 사건은 트위치와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는, 그러나 트위치 등 방송 플랫폼의 인기 방송인을 다루는 게시판에서 지속적으로 사이버불링이 일어난 것이 시발점이었다.
'에펨코리아'의 인터넷방송 게시판과 '디시인사이드'의 인터넷방송 갤러리·스트리머 갤러리에 모인 시청자들은 '잼미님'뿐 아니라 여러 방송인을 소재로 다루며 방송을 평가하고, 때로 모욕적 표현을 사용해 이들을 조롱하는 일이 상례다. 해외에서도 트위치와 긴밀하게 연결된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관련 게시판이나 음성채팅 프로그램 '디스코드' 등에서 이런 모임이 조직되고 있다.
이런 게시판의 여론조차 방송인에게는 참조하고 피드백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들여 수익을 올려야 하는 방송인 입장에선, 자신을 향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이나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이 어느 정도 당연시되고 있다.
여성과 소수자에게 더 가혹한 루머와 괴롭힘
모든 방송인이 스트레스에 노출되지만, 여성에게 있어 이런 공격은 더 배가된다. 여성 방송인에 대해서는 "실력도 없는데 미모로 인기를 끈다" "예쁘면 돈 벌기 더 쉽다" 등의 여성 혐오적 비판이 따라붙는다. 트위치의 주력 콘텐츠인 게임은 '남성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이 방송을 하면 게임보다는 다른 요소가 눈길을 끄는 경우가 많고, '혐오자'들은 이를 문제 삼는다.
인터넷 방송 시청자 가운데는 트위치에서 '심프(simp)'라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는, 여성 방송인의 방송을 선호하는 남성 팬층과, 이들을 혐오하는 팬층이 공존한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특정 방송인의 팬이 다른 방송인을 향해 일부러 혐오성 공격을 가하고, 방송인의 팬이었다가 실망했다는 이유로 더 공격적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성 방송인을 향한 공격이 더 가혹하다는 것은 그들이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했을 때 나타나는 비난의 강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남성 방송인들조차 체감할 수 있는 수위다. 트위치 여성 방송인 중 가장 많은 900만에 가까운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포키메인(본명 이만 에니스)은 1월 초 저작권 위반으로 방송 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그가 방송 정지가 마무리되고 복귀했을 때, 수많은 공격을 받고 방송을 예정보다 일찍 끝내야 했다.
이를 두고 방송인 '디스가이즈드토스트'는 "내가 같은 일로 정지를 당했을 때는 '바보 멍청이'로 끝났던 일인데, 그가 당하면 '더러운, 콘텐츠도 없는, 화장한, 못생긴' 같은 공격이 따라붙는다"면서 "일부 사람들이 기회만 보고 있다가 성차별적 욕설을 늘어놓는다"고 지적했다. 유튜버 '잭셉틱아이'는 "이 업계에서 성공한 여성들을 존경한다.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받아야 하는 괴롭힘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혐오의 확성기, 유튜브 '사이버렉카'
이번 사건을 증폭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유튜브의 '사이버렉카' 또는 '유튜브 타블로이드'로 불리는 가십 유튜버의 활동이었다. '사이버렉카'란 교통사고가 나면 현장에 나타나 차량을 견인해가는 견인차(wrecker·레커)에 빗댄 표현으로, 온라인에서 여론이 발생하면 해당 내용을 짧게 정리해 영상으로 올리며 조회수를 끌어모으는 행동을 말한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유명인의 활동과 그들에 대한 가십이라, 이들의 활동 가운데 동료 유튜버나 방송인에 관한 루머를 다루며 사실상 '저격'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인으로 성공하는 이들이 늘면서 '연예 가십'을 다루던 '타블로이드'의 인터넷 버전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 네티즌들은 사이버불링 사건을 유발케 한 주 원인으로 '사이버렉카'로 분류되는 유투버 '뻑가'의 활동에 주목했다. 얼굴을 가린 채 활동하는 이 유튜버는 온라인 가십을 요약정리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모았는데 그 가운데 '잼미님'을 '저격'하는 영상도 총 세 차례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잼미님'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선정적 영상이 악플로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비난이 커지자 뻑가는 "나는 어떤 일이 터지면 뒤에서 정리만 하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는데 이 해명은 역설적으로 '사이버렉카'의 "요약정리만 하는" 활동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정리해 전파하는 것으로 책임성은 조각하되, 사이버불링을 둘러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콘텐츠화(化)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내용에 공신력이 부여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혐오 전파를 막으려는 노력에도 뿌리 뽑기가 어려운 이유
유튜브와 트위치 등 플랫폼이 사이버불링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요인은 많지 않다. 높은 조회수가 나오는 콘텐츠는 창작자뿐 아니라 플랫폼의 수익으로도 연결된다. 또 사전이든 사후든 검열을 도입하게 될 경우에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또 다른 비판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이버불링 사건을 다루면서 많은 언론은 독일의 네트워크 강제법(Netzwerkdurchsetzungsgesetz, NetzDG)에 주목했다. 2018년부터 시행된 이 법률은 증오와 극단주의 등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에 최대 5,000만 유로(약 683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글은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해당 법률에 대응하기 위해 불법 및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 콘텐츠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이에 대응하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유튜브 타블로이드'를 비롯해 '가짜뉴스' 전파자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와 반극단주의프로젝트(CEP)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률은 우려했던 과도한 콘텐츠 검열로 이어지지 않은 대신 증오 표현 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단 삭제된 영상의 재업로드를 효율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고, 극단적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인센티브를 축소하는 데도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방송인과 시청자 사이의 관계가 훨씬 개인화해 있는 트위치의 경우 방송인을 대상으로 한 괴롭힘이 빈발한다. 지난해 9월 특정 방송에 공격적 시청자나 봇을 한 번에 입장시키는 '헤이트 레이드'가 문제가 되면서 해당 플랫폼의 일부 방송인들이 '#TwitchDoBetter(트위치는 더 잘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쳤다. 트위치는 이런 요구에 응답해 이메일·전화 인증을 마친 계정에 한해서만 채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과거의 공격자가 다른 아이디로 접속했을 때 이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도 등장했다.
이런 조치가 있다고 해서 증오 표현과 방송인에 대한 공격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점은 트위치도 인정했다. 이들은 "공격을 최대한 늦추고 영향을 줄일 수는 있지만 기술적 해결책만으로는 악의적 행위자의 행동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지금껏 이어진 사이버불링에서 보듯, 인터넷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악성 공격은 특정 플랫폼에서 아무리 기술적 수단을 사용한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터넷 방송을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방송인과 이용자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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