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요.”
최근 만났거나 통화한 국내 영화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극장 관객이 쪼그라들었는데 더 이상 위기탈출 방법을 찾기 힘들어서다.
국내 극장가는 붕괴 직전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매출은 5,845억 원이다. 2021년(5,103억 원)보다 상승했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1조9,139억 원)에 비하면 30% 수준이다. 미국에선 극장 매출이 지난해 45억 달러(미국 조사업체 컴스코어 집계)로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60% 정도 회복한 것과 대비된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극장 산업이 발달한 국가 대부분이 미국과 비슷하다. 유독 우리나라 극장가만 코로나19 수렁에 깊숙이 빠져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 화제작들이 개봉을 하지 않아서다. 2020년 개봉하려 했던 대작들이 코로나19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는 데다, 이후 촬영된 영화들조차 개봉을 머뭇거리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윤제균 감독의 ‘영웅’,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등 밀려 있는 대작들을 다 열거하기에도 숨이 차다. 제작비 100억 원 미만 중급 영화들은 더 많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계기로 지난해 봄 미국 극장들이 문을 다시 열면서 할리우드 대작들이 속속 선보인 것과 대조된다. 코로나19 이전 국내 극장가는 미국 영화와 국내 영화가 양분했다. 날개 한쪽이 사라진 형국이니 극장가가 재비상하기는 어렵다.
국내 영화의 개봉 미루기는 제작사들의 영세성과 관련이 있다. 팬데믹 이전에도 1년에 2편 이상 개봉하는 제작사들은 손에 꼽혔다. 대다수 제작사들이 3, 4년 정도 공을 들여 완성한 영화 한 편에 사운을 걸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급감했으니 개봉을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다. 전 세계를 겨냥하는 할리우드와 달리 국내 영화는 내수시장 위주이니 위험도가 더 높다.
개봉을 미룬다고 답이 있지도 않다. 코로나19가 당장 해소되어도 개봉 정체 현상이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극장가는 예전 같지 않다. 밥 아이거 전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경영자는 뉴욕타임스와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대유행과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로 극장의 운명은 영구히 변했다”며 “관객들은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갈 때 무척 까다롭게 굴 것”이라고 주장했다. 100% 동의한다.
쌓일 대로 쌓인 미개봉작들은 국내 영화산업을 위협할 뇌관이다. 넷플릭스로 직행한 ‘승리호’(2021)처럼 OTT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경우 제작비의 110~120% 정도 돈을 주고 영화를 독점 구입한다. 비상 시기라 해도 제작사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낮다. 더군다나 최근 넷플릭스 등이 미개봉작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결국 ‘질서 있는 개봉’이 답이다. 극장들이 지난해 여름 자신들의 수익배분을 줄였던 것처럼, 여러 당근책으로 개봉을 유인해야 한다. 극장의 조치만 바라보기엔 늦은 듯하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GV의 지난해 한국 시장 영업이익 적자는 1,634억 원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때마침 영진위가 지난달 박기용 위원장을 중심으로 새 체제를 구축했다. 정책은 위기 때 힘을 발휘한다. 영화계에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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