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 한강에 몸을 던졌던 20대 초반 여성이 응급실로 왔다. 담요도 덮어주고 전기난로도 켜놓았지만 그는 계속 몸을 떨었다. 이것저것 물어봐도 제대로 한 문장도 구사하지 못했다. 유일한 직계가족인 아버지를 만나 들어보니, 그는 조현병 환자였다. 생계를 위해 한번 일을 나가면 한참 지나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아버지는 아픈 딸을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몇 년간 방에서만 혼자 보내던 그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강으로 가 몸을 던졌다가 스스로 다시 나왔고, 이를 본 시민의 신고로 병원에 오게 됐다.
아버지를 설득해 입원을 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그에게 “그때 어떻게 해서 물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추워서요”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2개월쯤 지나자 망상과 환청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도무지 삶의 의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에 적절한 대답을 듣기도 어려웠다. 그해 우리가 본 조현병 환자 중에서 가장 심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퇴원을 하게 됐지만, 주치의 전공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포기하지 않고 치료하다보면 꼭 기회가 온다”라고 말하면서도 조마조마한 건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환자는 꼬박꼬박 외래를 찾아왔다. 정신사회재활시설도 소개받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어느 날 그가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저 취직됐어요." 그는 지금까지도 그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5년째 일하고 있다. 그가 오는 날은 치료하는 의사도 함께 웃게 된다. 점차 넓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진료 때마다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살위기를 겪은 사람이 달라질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가장 행복하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반드시 온다. 1998년 의사 1년 차를 시작한 이후 모두 10명의 환자를 잃었다. 한 선배의사는 자살로 잃은 환자의 차트를 한편에 모아놓고 지금도 틈날 때마다 본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환자의 자살은 가장 큰 트라우마이다.
우리는 흔히 조현병 하면 누구를 다치게 한 기사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핵가족화로 방치되는 조현병 환자가 늘어나면서 사건사고가 증가한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더 많은 환자들이 다른 누군가를 해치기 보다는, 어디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은 일반인의 7배 수준이다.
또 다른 환자가 있다. 그를 처음 본 건 음독 자살을 시도하고 실려온 응급실에서였다. 산후우울증이 의심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해줬고, 무사히 퇴원했다. 하지만 1년쯤 지났을 즈음, 그 환자에게서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전화였다. 옆에 있던 당직의사에게 112와 119에 신고하게 했고 나는 계속 통화를 이어갔다. 경찰과 소방의 도움으로 구조해 두 번째 입원을 했다. 이후엔 훨씬 나아져서 원하던 공부도 시작했었다. 2년을 잘 유지하고 치료도 종결했다.
그러다 2008년 9월 다시 만나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었고 다시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렵겠지만 두 번을 이겨낸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하필 그해 10월 유명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언론은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삽화까지 그려가며 자살수단을 방송했다. 그 환자는 더이상 진료에 올 수 없게 됐다. 이렇게 해서 난 첫 외래환자를 잃었다. 유가족 면담은 눈물바다였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아이의 우울증도 심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유가족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의사도 괴롭다. 머릿속에서 내가 그때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스스로에게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불안에 휩싸이면 다른 환자에게는 자살에 대한 질문 자체를 피하게 되기도 한다. 의사도 트라우마의 심연에서 빠져나오려면 도움이 필요한 건 똑같다.
진료실 안에서 진료만 한다고 한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마음의 위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명의 환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정신과 의사의 치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특히 가족의 힘이 약해진 핵가족사회에서는 더하다. 한 명의 사례관리자의 헌신이, 언론의 기사 한 줄에 쓰인 언어가, 그리고 법과 제도에 쓰인 한 문장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균 4개의 복합적 이유로 절망상태에 빠진다. 건강하던 누구라도 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때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을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의 선이 단절되어 점과 같은 상태에 빠진다. 반대로 이때 한 사람이 옆에 있어 희망에 연결되면 한 사람이 산다. 그 후 우울증을 알리고 자살을 예방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좀 더 사회로 나와 만난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게된 확신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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