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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아동 시신 3구… 美 10대들의 ‘악마숭배’ 범행? 혹은 희생양?

입력
2022.02.18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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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 ‘웨스트 멤피스 3인조’
美 경찰, 사건 발생 한 달 안 돼 백인 하류층 문제아 피의자로 지목해 발표
경계성 지능 장애인 유도신문 드러나… 후원자 모여 DNA 분석 결과로 뒤집어
18년 만에 무죄 주장 계속하는 ‘앨퍼드 플리’ 방식 석방… 영구미제로 남아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93년 5월 미국 아칸소주 웨스트 멤피스에서 어린이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웨스트 멤피스 3인조'의 경찰 체포 직후 '머그샷'. 제이슨 볼드윈(왼쪽부터), 데이미언 에콜스, 제시 미스켈리. 미국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1993년 5월 미국 아칸소주 웨스트 멤피스에서 어린이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웨스트 멤피스 3인조'의 경찰 체포 직후 '머그샷'. 제이슨 볼드윈(왼쪽부터), 데이미언 에콜스, 제시 미스켈리. 미국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1993년 5월 6일(현지시간) 미국 남부 시골 마을인 아칸소주(州) 웨스트 멤피스의 로빈후드 언덕에서 여덟 살 난 어린이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잡초가 무성한 도랑에서 발견된 시신 3구는 모두 밧줄로 결박당한 모습이었다. 전날 오후 집을 나간 어린이들의 시신은 성기 등이 훼손된 참혹한 상태였다. 부모는 오열했고 여론은 분노로 가득 찼다.

관심이 집중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한 달도 채 안 걸렸다. 같은 해 6월 4일 웨스트 멤피스 경찰은 전날 체포한 살인 피의자 3명의 명단과 사진을 공개했다. 데이미언 에콜스(18), 제시 미스켈리(17), 제이슨 볼드윈(16). 어린이 3명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 혐의를 받는 자가 10대 3명이란 소식에 여론은 다시 끓어올랐다.

10대 용의자들 ‘오컬트' 신봉자?

이른바 ‘웨스트 멤피스 3인조’. 경찰이 밝힌 이들의 살인 동기는 더 기막힌 것이었다.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의식을 행하다 벌어진 일로, 이들은 ‘오컬트(초자연력)’ 신봉자라고 경찰은 주장했다.

1994년 1월 26일 진행된 피고인 미스켈리의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그의 자백은 더 참담했다. 미스켈리는 경찰 진술에서 에콜스와 볼드윈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데이미언이 아이 한 명을 세게 때리는 걸 봤어요. 그런 다음 강간하기 시작했죠. 제이슨은 돌아서서 또 다른 아이를 때렸어요. 그런 다음 같은 짓을 했어요. 저는 도망가는 다른 한 아이를 붙잡아서 다른 애들이 올 때까지 붙잡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어요.”

검찰은 또 다른 증인도 불렀다. 에콜스의 친구였던 여성 비키 허치슨이 “에콜스가 사탄 숭배 모임에 초대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친구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댔다. 미스켈리의 친구들은 사건 당일 오후 “그와 체육관에 가서 레슬링 연습을 했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고 증언했지만 이미 충격에 휩싸인 배심원단에게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웨스트 멤피스 3인조'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웨스트 오브 멤피스' 포스터. 위키피디아

'웨스트 멤피스 3인조'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웨스트 오브 멤피스' 포스터. 위키피디아


충격적인 "토막" 증언과 유력한 증거 '톱날 칼'

검찰은 더 충격적인 증언으로 배심원단에 유죄 심증을 더했다. 볼드윈과 함께 소년원 생활을 했던 마이클 카슨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털어놓은 말은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내용이었다. 그는 “볼드윈이 아이를 어떻게 토막 냈는지 말해줬다”고 밝혔다.

유력한 증거물도 제시됐다. 검찰은 볼드윈의 집 뒤편 호수에서 잠수부를 동원해 발견한 톱날 칼을 살인에 사용됐다며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 측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한 아칸소주 범죄연구소 부검시관이었던 프랭크 페레티 박사가 시신 곳곳의 상처와 훼손된 부위가 드러난 사진을 톱니 칼과 함께 보여주며 “이런 종류의 칼이 (범행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밝히자 배심원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재판 결과는 보나 마나 한 것이 됐다. 1994년 1심 재판에서 에콜스는 사형, 미스켈리와 볼드윈은 미성년자란 이유로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받았다.

1993년 미국 아칸소주에서 어린이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웨스트 멤피스 3인조'의 데이미언 에콜스(앞)와 제이슨 볼드윈이 형사재판을 받는 모습. 미국 데일리비스트 홈페이지 캡처

1993년 미국 아칸소주에서 어린이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웨스트 멤피스 3인조'의 데이미언 에콜스(앞)와 제이슨 볼드윈이 형사재판을 받는 모습. 미국 데일리비스트 홈페이지 캡처


경계성 지능 장애인에게 유도신문… 허점 투성이 자백

“지역사회의 모두가 안도한 느낌이에요. 누군가 감옥에 갔으니까요.” 한 피해자의 어머니는 선고 후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1996년 미 HBO방송의 다큐멘터리 ‘실락원(Paradise Lost)’이 이 사건 수사의 허점을 낱낱이 지적하며 판세가 역전됐다.

미스켈리의 자백이 유도신문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 녹취 테이프 재생으로 집중 부각됐다. 경찰이 "다른 아이는 칼에 베였다던데 어디가 베였지?"라고 묻자 그는 “아래쪽”이라고 답했다. 다시 경찰이 "여기 말이야? 사타구니? 음경이 뭔지 아니?"라고 채근하자 “네 거기를 베였어요”라고 진술하는 식이었다.

사건 발생 시간과 관련한 자백도 허점 투성이였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미스켈리는 처음엔 사건 발생시간이 “낮 12시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후 "몇 시에 아이들이 숲으로 왔지?"라고 되물은 뒤 “아마도 오후 5시쯤, 5시 아니면 6시요”란 답을 얻자, "아까는 7시 아니면 8시라고 했잖아. 몇 시였어?"라고 압박, 결국 “7시 아니면 8시요”란 답을 받아냈다. 미스켈리는 학습력과 지능 발달 속도가 정상인보다 부진한 '경계성 지능 장애'를 안고 있었다. 경찰이 이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허위 자백, 증거 짜맞추기... 흔들리는 수사 결과

수사기관이 허위 자백으로 쌓은 모래성은 흔들렸다. 검찰이 유력한 살인 증거물로 제시한 톱날 칼도 짜맞추기식 증거였다. 당시 검찰은 커다란 호수에 잠수부를 동원한 지 30분도 안 돼 이를 찾아내 제보에 의해 위치를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칼은 볼드윈의 어머니가 살인사건 1년 전에 집 뒤편 호수에 던진 것으로 사건과 무관하다고 볼드윈 측은 맞섰다.

더욱이 톱날 칼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며 배심원단을 자극한 프랭크 페레티 박사는 검찰의 통제를 받는 범죄연구소에서 일했고, 검시관 자격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져 자격증도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페레티 박사가 공판에 들고나온 법의학 책의 저자인 의학박사 빈센트 디 마이오는 “시신의 상처는 일정하지 않고 패턴도 없어 톱날 칼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웨스트 오브 멤피스(West of Memphis)' 인터뷰에서 단언했다. 그는 "아이들을 살해하는데 칼등을 이용했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가”라고 일갈했다.

시신 훼손이 인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도랑에는 거북이 수백 마리가 살아 이 지역이 ‘거북이 마을’이라 불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5월에 한창 식욕이 왕성한 거북이가 시신의 연한 부위를 물어뜯어 사후에 훼손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건 뒤집는 DNA 분석 결과와 오염된 증언에도...

3인조에 대한 미심쩍은 판결을 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후원회의 활동으로 사건의 판도는 다시 뒤집혔다. 1999년 12월 3일 에콜스와 옥중 결혼한 로리 데이비스가 시작한 이 후원자 모임은 록 밴드 펄잼의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 영화배우 조니 뎁을 비롯한 유명인도 다수 참여하며 점점 몸집을 키웠다.

후원자들은 전직 미 연방수사국(FBI) 프로파일러, 사설탐정 등을 고용하고, 시신을 결박했던 매듭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유전자(DNA) 분석을 의뢰했다. 결국 숨진 어린이 중 한 명의 양아버지인 테리 홉스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홉스를 용의자로 조사한 적이 없었던 경찰은 그를 한 차례 소환 조사한 뒤 “홉스는 이전에도, 현재도 용의자가 아니다”라고 급히 결론 짓는다. 2008년 9월 10일 항소심 재판을 맡은 데이비드 베넷 판사도 자신이 판결한 원심 선고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 '3인조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항소기각 사유였다. “(매듭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등) 모든 증거는 원심에 다 나왔던 것”이라며 애써 DNA 분석 결과를 외면한 것이다.

3인조를 오컬트 신봉자로 굳게 믿게 한 검찰 측 증인 진술의 신빙성도 추후 도마에 올랐다. 에콜스가 사탄숭배 모임에 초대했다고 증언했던 비키 허치슨은 사건 11년 후인 2004년 증언을 철회했다. 사건 이전 에콜스를 만난 적은 있지만, 에콜스가 사탄숭배 모임을 했다는 증언은 거짓이란 것이다. 허치슨은 “내게 닥칠 일이 두려웠다”고 말해, 수사기관에 약점이 잡힌 상태였다는 점을 암시했다. 볼드윈이 범행을 실토했다고 증언했던 마이클 카슨도 “당시 강성 마약을 복용했으며, 검찰이 이를 알고 있어 거짓말을 했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무죄를 주장하되 배심원이나 판사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정하는 '앨퍼드 플리' 방식으로 석방 판결을 받은 제이슨 볼드윈(왼쪽부터), 데이미언 에콜스, 제시 미스켈리. 미국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무죄를 주장하되 배심원이나 판사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정하는 '앨퍼드 플리' 방식으로 석방 판결을 받은 제이슨 볼드윈(왼쪽부터), 데이미언 에콜스, 제시 미스켈리. 미국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후원자 대대적인 불복 운동... 무죄 주장 ‘앨퍼드 플리’ 석방 합의

수사기관과 법원 모두 과오를 인정하지 않자 분노한 후원자들은 대대적인 불복 운동에 나섰다. 미국 시골마을의 백인 하류층 10대 세 명이 수사성과 내기에 급급한 수사기관의 희생양이 됐다고 후원자들은 판단했다. 잘못이라면 공책에 악마와 죽음에 관한 내용을 끼적거리거나(에콜스), 헤비메탈 음악을 즐긴(볼드윈) 두 사춘기 청소년이 경계성 지능 장애인(미스켈리)과 어울렸다는 점이었다. 장애인을 압박해 얻은 허위 자백과 조작된 증거와 증언으로 이들을 악마화해 손쉽게 수사 결과를 만든 게 사건의 실체라는 얘기다. 강압수사에 의한 거짓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미국판인 셈이다. 후원자들은 미국 각지에서 보내온 ‘3인조’ 응원 엽서를 이어 붙인 플래카드를 들고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항의를 계속했고, 분노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결국 아칸소주 대법원은 2010년 11월 4일 이 사건의 DNA 검사 결과를 증거로 받아들여 재심을 명령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 측과 협상하는 길을 선택했다. 마침내 18년간의 긴 수감생활에 지친 ‘웨스트 멤피스 3인조’는 무죄를 계속 주장하되, 배심원이나 판사는 계속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정하는 ‘앨퍼드 플리(Alford Plea)’에 검찰과 합의했다.

이제 30대가 된 ‘3인조’는 2011년 8월 19일 이들과 검찰의 ‘앨퍼드 플리’ 합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다. 죄가 의심스럽지만 풀어준다는 것으로 이들은 계속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재판은 종결된 것이다. 3인에겐 “보상할 필요도 없고, 사건은 끝났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었다. 마침내 '3인조'는 18년 전에는 그들을 “죽이라”고 외치던 사람들 앞에 고개를 들고 법정 밖으로 걸어나오며 위로의 박수를 받았다. DNA가 가리키는 홉스는 아무런 처벌도, 추가 수사도 받지 않으면서 사건은 사실상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수감된 지 18년 만에 '앨퍼드 플리' 방식으로 석방된 '웨스트 멤피스 3인조' 데이미언 에콜스(왼쪽부터), 제이슨 볼드윈, 제시 미스켈리의 체포 당시(위)와 석방 후(아래) 모습.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수감된 지 18년 만에 '앨퍼드 플리' 방식으로 석방된 '웨스트 멤피스 3인조' 데이미언 에콜스(왼쪽부터), 제이슨 볼드윈, 제시 미스켈리의 체포 당시(위)와 석방 후(아래) 모습. CBS방송 홈페이지 캡처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18년만에 '앨퍼드 플리' 방식의 석방 선고를 받은 '웨스트 멤피스 3인조' 데이미언 에콜스(앞줄 왼쪽부터), 제시 미스켈리, 제이슨 볼드윈. AP 연합뉴스

2011년 8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법원에서 18년만에 '앨퍼드 플리' 방식의 석방 선고를 받은 '웨스트 멤피스 3인조' 데이미언 에콜스(앞줄 왼쪽부터), 제시 미스켈리, 제이슨 볼드윈. AP 연합뉴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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