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 방수·철거 트럭의 홍보 문구, 광화문 글판에 내걸린 글귀, 우산 꽂이의 디자인, 간판(상호명), 인스타그램 피드... 9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영감노트'의 운영자이자 IT 기업의 마케터인 이승희(34)씨에게 영감을 주는 건 이토록 사소하다. 그가 최근 낸 책의 제목('별게 다 영감')처럼 영감은 '별것'에서 나온다.
14일 전화로 만난 그는 마케터로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 "일상의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마케터가 요리사라면 일상의 경험은 콘텐츠의 재료인 거죠. 그런 것들을 잘 기록해 두고 거기서 엄선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거예요.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록은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이 많이 돼요. 하루하루는 그냥 지나치면 무료한데, 매일같이 기록한 후 들여다보면 특별하거든요." 책에는 시장을 둘러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전시를 보다가, 책장을 넘기던 중에 그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았던 이미지와 텍스트가 날것 그대로 차곡차곡 담겼다.
그가 마케팅 실무를 배운 건 독특하게도 병원에서였다. 대학에서 치기공을 전공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그 대신 치과의 코디네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영하던 병원 블로그가 말 그대로 대박이 나면서, 마케터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 "원장님의 임플란트 실력이 뛰어났는데, 처음부터 그걸 내세우진 않았어요. 그보다는 먼저 외과 수술인 사랑니 발치를 잘하는 병원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했고, 경험해 보고 신뢰가 쌓인 환자들을 임플란트로 연결한 거죠. 6개월 만에 신규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어요."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환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영리한 마케팅의 효과는 강력했다.
이직한 배달의민족에서는 2019년 퇴사하기 전까지 6년간 마케터로 일했다. 한창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마케터로서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당시 배민의 마케팅 타깃은 배달 주문을 담당하는 회사 막내,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20대였다"며 "이들이 '풋'하고 웃었나, '아~'하고 공감했나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요즘엔 "소비자의 참여"로 완성되는 브랜드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춘천 감자밭, 노티드 도넛처럼 식음료 업계를 중심으로 단순히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테마파크 같은 매장에서 놀면서 음식을 경험하도록 하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며 "또 비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를 통해 일상을 바꿔 나가는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크리에이터(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재미로 시작한 개인 인스타그램도, 개인 유튜브도 나의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특정 콘셉트를 정해서 거기에 갇히기보다는 자신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계속 꺼내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라"며 "크리에이터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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