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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정책, 정치로부터 독립할 때 바로선다

입력
2022.02.22 05: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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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3> 지속가능한 주택정책, 부동산정치를 끝내야 가능하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국민들은 차기 정부가 이 고단한 현실을 바꾸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택문제는 단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급등한 주택가격과 숨 가쁜 제도변화 속에서 평범한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원하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제라도 집을 사야 할까? 집값이 떨어질 테니 더 기다려야 할까? 혼란스럽기만 하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주택정책이 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무엇인지 점검해보자.

얼마나 공급해야 할까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는 판단이 틀렸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 대선후보 모두가 공급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언하니 말이다. 문제는 어떤 주택을 어디에 얼마나 지을 것인가다. 수요가 있는 곳에 적절한 물량을 공급한다면 시장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반면 공급이 지나치면 대량의 미분양이 발생하고 가격이 폭락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실질적인 주택수요는 어느 정도일까. 통계청 가구수 추계를 보면 향후 5년(2022~2026)간 전국적으로 93만 가구, 수도권은 55만 가구가 증가할 전망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증가한 가구수(전국 182만 가구, 수도권 101만 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소득이나 주거비 등 다른 요인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주택수요도 과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택 인허가 및 준공 실적. 자료=통계청

주택 인허가 및 준공 실적. 자료=통계청

공급 가능성도 살펴보자. 주택 인허가 및 준공실적을 보면 과거 5년(2016~2020) 평균이 연 57만 가구(수도권 연 30만 가구) 정도다. 만약 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향후 5년간 전국 285만 가구, 수도권 150만 가구 정도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연간 실적이 감소하는 최근 추세와 택지가 점차 고갈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주택재고가 충분한 선진국들의 연간 공급량이 전체 주택수의 1, 2%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사실상 연 40만 가구 정도를 적정 공급량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주택인가'이다. 국민들은 양호한 주거환경과 교육인프라를 갖춘 동네에 저렴하면서도 적절한 면적을 가진 집을 원한다. 환경이나 품질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량목표에 매몰되는 어리석은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1, 2인가구 증가와 최저주거기준을 핑계로 소형주택을 대량 공급해 목표 물량을 맞추려는 시도도 그만둬야 한다. '2019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장 작은 주거공간을 소비하는 20대 1인 가구도 평균 27㎡를 사용하고 있고, 30대 3인 가구는 70㎡를 사용하고 있다. 최저주거기준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재개발, 재건축과 공공의 역할

적절한 위치에 공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은 환영할 만하다. 기성 시가지에 적절한 신축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직주근접 측면이나 도시재생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런데 공공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은 법정계획으로 공공이 정비계획을 수립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인허가권'이라는 강력한 권한도 공공이 가지고 있다. 민간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공공의 허가 없이는 단 한 삽도 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속한 정비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추진위원회에서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평균적으로 4, 5년이 걸리는데, 조합원들 간 이해관계 조정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심지어 이해관계가 첨예한 지구에서는 여러 개의 추진위원회가 난립하면서 예상보다 사업이 지체되기도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비사업 특성상 진행과정에서 공공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공은 민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공정성을 요구받고 책임도 더 무겁게 져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공이 민간만큼 정비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공공이 인허가를 신속하게 해주는 능력만으로 정비사업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공공재개발'이나 '신속통합기획'처럼 일부 지구에서 공공이 사업을 주도할 수는 있겠지만, 정비사업 전반에 영향을 줄 만큼 다수의 사업에 직접 참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3개 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경기주택도시공사)의 직원 수를 합하면 1만1,000명 정도다. 대형 건설사 직원이 통상 5,000명 내외니 3개 공사의 인력규모는 민간 건설사 2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물론 민간 건설사에서 정비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은 수십 명 수준이지만, 공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국 공공이 사업시행을 주도하는 물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용적률 500%의 의미

도심에서 진행하는 주택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지가인데 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용적률을 상향조정하는 것이다. '용적률 500%'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매우 직관적인, 그러나 동시에 위험한 전략이다. 대로변에 있는 독립적인 필지의 경우에는 달성하기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 내수동 준주거지역에 지어진 16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은 용적률이 590%에 이른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용적률 590%의 주상복합 '경희궁의 아침 3단지'. 출처=쌍용건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용적률 590%의 주상복합 '경희궁의 아침 3단지'. 출처=쌍용건설

그러나 부대복리시설을 제대로 갖춘 단지형 아파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대체로 용적률 300% 내외면서 25층이 넘는다. 건폐율이 10~15%로 주상복합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파트 단지라면 용적률 500%는 현실적으로 40층 내외의 초고층 아파트를 의미한다. 주거환경이 악화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전국에 적용되는 법을 바꿔 용적률을 일괄적으로 높이게 되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사업성을 핑계로 초고층 아파트가 과도하게 들어서면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고밀화될수록 동간 거리는 짧아지니 사생활 보호와 일조권 확보는 어렵다. 해당 지역의 기반시설용량을 넘어서게 되면 도로 정체나 학교 부족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용적률 500%는 꼭 필요한 지역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주택정책, 정치와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주택정책은 정치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 주택문제를 보는 관점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법이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공공임대 브랜드를 만들고, 불로소득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주택자 모두를 투기세력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전 국민의 2%밖에 안 된다고 해서 '그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일견 선명하고 공정성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다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다주택자 없이는 민간 임대시장이 존재하기 어렵고, 2% 중 일부는 과도한 세금으로 주거불안에 놓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달려왔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전 국민이 원팀이 돼 극복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문화적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그럼에도 주거안정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과학적인 분석과 합리적 선택보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정책이 좌우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주택정책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정치적 계산보다는 국민의 주거안정에 집중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가길 기대해본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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