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매미성, 지세포진성, 구조라진성, 근포동굴
바다는 존재만으로 여행을 부른다. 더없이 좋은 사진거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는 들쭉날쭉한 해안선으로 다양한 바다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관광 명소가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인스타 핫플’로 주목받고 있는 3개의 성(城)을 소개한다.
먼저 장목면 복항마을의 매미성. 네모반듯한 화강석이며, 항아리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성벽 모양새가 한눈에 봐도 방어용 옛 성은 아니다. 매미성 부지는 원래 백순삼(68)씨가 은퇴 후 가족과 지낼 목적으로 구입한 밭이었다. 그러나 2003년 태풍 매미로 쓸려 내려갔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그때부터 하나하나 공들여 쌓은 축대가 지금의 매미성이 됐다.
백씨는 어떤 태풍에도 끄떡없고, 이왕이면 주변 경치와 어울리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쌓았다고 한다. 태풍 매미는 당시 전국적으로 132명의 인명 피해와 4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혔다. 요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에서 여행객이 몰리는 명소가 됐지만, 알고 보면 가슴 아픈 작명이다.
매미성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20년 가까이 혼자서 쌓자니 진도가 느릴뿐더러 규모도 거창할 수 없다. 대신 미로처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만나는 아기자기한 풍광이 매력적이다. 맨 위에서는 바다 건너 부산과 이어지는 거가대교가 아스라이 보이고, 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 성 아래 몽돌해변과 앞바다의 작은 섬(이수도)이 모습을 바꾸며 예쁘게 등장한다. 어디서 찍어도 그림이지만, 창틀에 바다와 섬이 걸리듯 보이는 통로가 가장 인기 있다. 매미성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성으로 가는 골목에는 카페와 식당, 디저트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일운면 선창마을 뒤편의 지세포진성은 초여름에 좋은 곳이다. 성 내부의 비탈밭에 라벤더를 심어 6월이면 보랏빛 향기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다. 요즘은 군데군데 유자나무가 때묻은 열매를 달고 있을 뿐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 풍광이 시원하고, 성곽 가는 길에 통과하는 돌담길도 정겹다. 동쪽 성벽을 제외한 성돌은 논밭의 축대나 가옥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세포는 세종 때 대마도 정벌 이후 수군만호가 배치된 방어거점이었다. 지세포진성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종 21년(1490)에 완공했고, 인종 때 영남 6부에서 2만5,000명을 동원해 포곡식 산성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갑오개혁으로 폐진된 후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지역에서도 잊히고 있지만, 조선통신사 귀국길로도 사용된 역사적인 성이다.
인근의 구조라진성 역시 성종 때 쌓은 경상우도 수군진성이다. 둘레 860m, 너비 4.4m, 높이 4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최근 남문 부근 성벽과 옹성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구조라는 ‘옛 조라’라는 의미다. 선조 37년(1604) 일시적으로 수군진영을 북쪽 조라포로 옮기면서 구조라가 됐다.
구조라진성에서 여행객이 주로 찾는 장소는 남문에서 마을로 급격한 경사를 이루는 언덕 꼭대기다. 작은 벚나무 한 그루가 뿌리 내린 성벽 위에 서면 허리처럼 잘록한 지형에 터를 잡은 마을을 중심으로 구조라해변과 구조라항의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성벽 아래 언덕에도 사진 찍기 좋은 그네와 하트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주변은 유채밭으로 조성해 4월이면 노란 물결이 일렁거린다. 거제수협 구조라공판장 앞에 차를 대고 걸으면 마을을 통과하는 좁은 돌담 골목과 빽빽한 대숲도 매력적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남부면의 근포동굴은 요즘 거제에서 뜨는 ‘인생사진’ 명소다. 근포마을 뒤편 바닷가에 일제강점기에 포진지를 설치하기 위해 파 놓은 5개의 동굴이 있다. 그중 2개는 수산물 창고로 쓰고, 3개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높이 5m, 길이는 최고 50m 정도인데 2개 굴은 내부에서 연결돼 있다.
동굴 안에서 바깥으로 사진을 찍으면 아래쪽에 잔잔한 바다가 걸리고 위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주변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데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식민의 아픈 역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쾌한 사진거리로 소비되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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