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거제의 동백섬 지심도
장승포항에서 배로 20분, 지심도는 섬 모양이 마음 심(心) 자를 닮아 이렇게 부르는 거제의 작은 섬이다. 동백나무가 뒤덮고 있어 한겨울에 더욱 좋은 여행지다. 검푸른 난대 상록수 터널을 지나 붉은 꽃송이 눈부신 숲길을 걷다 보면 섬의 아픈 역사가 버려진 듯 흩어져 있다.
검푸른 숲속에 붉은 동백, 분홍 매화
지심도까지는 거제 장승포와 지세포에서 하루 5회 유람선이 왕복한다. 여행객이 많은 주말에는 수시 운항한다. 승선료는 왕복 1만4,000원이다. 전망이 탁 트인 야외 갑판에서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를 가르는 유람선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크다. 좌우로 3개 좌석이 배치된 객실에 앉으면 눈높이가 수면과 비슷하다. 더구나 안전대가 창밖 전망을 방해한다. 아쉽지만 선상에서의 섬 여행 낭만은 포기해야 한다.
지심도 선착장에 내리면 작은 바위 위에 인어 동상이 반긴다. 동상 앞에 ‘범바위’ 전설이 적혀 있다. 인어공주를 사랑한 호랑이 이야기다. 작은 섬에 호랑이가 있었을 리 만무한 데다 유럽의 동화 캐릭터까지 소환했으니 허망하고 뜬금없다. 지심도의 생태적 역사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 만든 조형물이겠거니 웃어 넘긴다.
인어상 뒤에 돔 모양의 붉은 지붕 건물인 여행자 쉼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검푸른 활엽수가 절벽을 뒤덮고 있고, 중턱쯤에 바다로 전망을 낸 작은 건물이 보인다. 차가운 겨울바람만 아니면 영락없이 밀림을 이룬 열대의 섬 풍광이다. 지심도 숲은 동백나무가 60~70%를 차지하고 있고,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가마귀쪽나무 돈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고루 섞여 있다.
민박집인 동백하우스 마당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좌우로 나무가 빼곡하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원시림 터널이다. 차가운 바람소리도 숲속에선 잠잠하다. 대신 정체를 숨긴 새소리가 아침 이슬처럼 맑게 울려 퍼진다. 지심도에는 동백꽃 꿀을 빠는 동박새와 직박구리 외에 멸종위기종인 팔색조, 솔개, 흑비둘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붉은 꽃송이가 위아래로 장식돼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직은 이르다. 지심도 동백은 12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천천히 피고 진다. 꽃이 가장 풍성한 시기는 3월이다.
그래도 산책로 곳곳에 봄 기운이 터져 나온다. 조그만 밭뙈기에 한두 그루 심은 매화가 화사한 봄 소식을 전한다. 연둣빛 머금은 새하얀 꽃잎부터 진홍빛이 가득한 꽃송이까지 봄빛을 뽐낸다. 섬 중앙의 민가를 지나면 대숲도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왕대가 푸르고 기운차다. 일부 구간은 아름드리 솔숲이다. 밑동부터 두 갈래로 가지를 뻗어 ‘곰솔할배’로 불리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섬 북측에 버티고 있고, 남쪽 바닷가에는 10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활엽수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북쪽 끝에 2개의 전망대가 있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설치한 덱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쪽빛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섬의 하단을 떠받치고 있는 암벽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새하얀 바위에 부딪치고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가슴속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섬의 한가운데 능선은 유일하게 나무가 없어 잘록한 허리 좌우로 바다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일제강점기에 활주로로 쓰기 위해 닦았다는 말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한쪽 구석에 ‘세관초소’ 표석이 세워져 있다. 1966년부터 20년간 남해안 일대에서 어선을 이용해 특공대식으로 벌어진 해상 밀수를 차단하기 위한 감시 초소 자리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바로 옆은 옛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다. 학교 건물은 사라지고 지금은 마을회관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동백으로 둘러싸인 작은 운동장에 새 소리만 요란하다. 운동장 한쪽에 벤치가 놓여 있다. 섬에서도 가장 고즈넉하게 쉴 수 있는 장소다.
지심도는 가장 높은 곳이 97m, 남북 길이 1.5㎞ 남짓한 작은 섬이다. 선착장에서 섬 중턱까지 지그재그로 난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동백하우스부터 순탄한 산책로로 연결된다. 길은 북쪽 끝까지 갔다가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 후 선착장으로 돌아오게 연결돼 있다. 유람선은 탐방 시간을 감안해 두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그러나 천천히 여유 있게 즐기려면 두 시간으로는 빠듯하고, 네 시간이면 넉넉하다.
아픈 상처에 유난히 고운 동백꽃
지심도는 1469년 간행한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지사도(知士島)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861년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지삼도(只森島)로 기록돼 있다. 사시사철 나무가 우거진 섬이라는 뜻인 듯하다.
일본과 가까운 변방의 외딴 섬은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병참기지로 사용하면서 땅도 사람도 수난을 겪는다. 1936년 일본 육군성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섬을 요새화했다. 1963년까지도 서류상 땅 주인은 일본 육군성이었고, 1971년에야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광복 후 새로 들어온 주민들은 3년마다 임차 계약을 맺고 건물만 임대했다.
지심도에는 현재 15가구가 있다. 그중에서 6가구는 민박, 또 3가구는 식당을 겸하고 있다. 커피와 차, 해물라면과 파전, 멍게비빔밥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다.
지난해 섬연구소가 조사한 바로 지심도의 전체 주택 15채 중 13채가 일본군 주둔 시기에 건축된 건물이다. 기존에 용도가 알려진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외에 조선인 징용자 숙소, 발전소, 일본군 장교 사택, 헌병 주재소, 통신소, 단무지 공장, 일본군 병사 식당 등으로 확인됐다.
섬의 서쪽 중턱에 위치한 전등소 소장 사택은 일본식 가옥의 외형이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이다. 전등소는 섬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발전시설이었다. 이곳에서 탐방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방향지시석, 욱일기 게양대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방향지지석에는 장승포와 가덕도, 절영도(부산 영도) 외에 일본 쓰시마 섬을 가리키는 표식까지 6개가 있었다고 한다. 욱일기 게양대는 태극기 게양대로 바뀌었다.
섬 남쪽 끝에는 5개의 포진지와 탄약고가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포진지는 지름 18m의 원형 콘크리트 방호벽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설치한 구조다. 계단을 통해 양쪽에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일제가 포대를 착공한 건 1936년 7월, 대륙 침략의 발판을 다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의 일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포대에는 1개 중대 약 100명이 주둔했다고 한다.
바로 옆의 탄약고는 현재 지심도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흙으로 덮인 콘크리트 벙커 내부의 4개 방에 지심도의 수난사와 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흑백사진이 전시돼 있다. 스산한 기운 탓에 지심도의 상처가 더욱 쓰리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진지는 섬에서도 양지바른 곳이다. 바로 앞으로 쪽빛 바다가 눈부시고, 주변의 동백나무도 유달리 꽃을 많이 달고 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나뭇잎과 붉은 꽃잎이 유난히 고와서 더 서럽다.
지심도 소유권은 2017년 거제시로 이전됐다. 80여 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셈이지만, 이번에는 섬 개발 문제를 놓고 거제시와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졌다. 다행히 지난해 6월 원하는 주민은 남고, 이주하는 주민에게는 보상하기로 양측이 합의하면서 4년 넘는 갈등은 일단락됐다.
더불어 모조리 철거될 뻔한 건물도 보존의 길이 열렸다. 운명은 문화재청의 심사에 달렸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은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등록문화재 제718호)처럼 지심도 전체를 문화재로 등록해 일제 침략 역사의 산 교육장이자 역사박물관으로 쓰여야 마땅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심도는 해설사 대신 ‘오디오 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아이폰 불가)에서 ‘지심도 오디오 가이드’ 앱을 설치·실행한 후 해당 유적으로 이동하면 자동으로 해설이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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