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빙둔둔 구할 수 있니?" 한국에 있는 친구가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빙둔둔'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개막 전 들렀던 메인프레스센터(MPC) 기념품 가게에는 인형부터 열쇠고리, 핀 등 온갖 빙둔둔이 가득했다. 언제든 원하면 필요한 만큼 사는 건 문제없어 보였다. '돌아가기 전 지인들 기념품으로나 몇 개 사야지.' 사진이나 몇 장 찍어놓고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건 베이징에서 범한 '최대의 실수'였다. 올림픽 개막 직후 빙둔둔 품귀 현상이 중국 내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기념품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김민석을 시작으로 황대헌, 최민정 등 태극 전사들이 승전고를 울린 뒤 빙둔둔을 안고 해맑게 웃고 있는 영상이 매스컴을 타면서 한국에서도 이 얼음 팬더의 존재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빙둔둔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모처럼 쉬는 지난 토요일, 눈뜨자마자 MPC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빙둔둔이 박혀 있는 상품은 죄다 팔려나간 상태였다. 점원에 따르면 대부분 제품은 매일 개점 때마다 수십 개씩 새로 들어온다. 하지만 오전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거의 모든 상품이 동난다. "몇 시까지 와야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너무 일찍부터 와서 줄을 선다. 몇 시에 와서 줄을 서는지는 나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재기가 심해 이미 1인당 1개씩으로 제한을 건 상태다. 그래도 빙둔둔을 구경하긴 힘들다. 특이한 점은 빙둔둔을 손에 넣은 한국 기자들은 물론, 외국 기자들이 주변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던 한 외신 기자는 텅빈 가게를 보며 "손자가 팬더 인형을 사오라고 했는데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구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빙둔둔을 사들이는 것은 대부분 중국 내 올림픽 관계자나 미디어 관계자들이다. 아침 일찍 빙둔둔 기념품을 사 중국 내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념품 가게 옆에 마련된 중국 우체국에는 포장된 빙둔둔 박스가 늘 가득 쌓여 있다. 한 MPC 직원은 "내용물 대부분은 올림픽 기념품이다. 붙이는 사람은 거의 중국인들이다. 중국 내에서 빙둔둔 인기가 너무 많다"고 귀띔했다. 빙둔둔 인형은 중국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원래 가격인 198위안의 10배가 넘는 2,000위안(약 37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55위안(약 1만 원)짜리 빙둔둔 열쇠고리도 499위안(약 9만 원)에 팔린다. 쌓여 있던 박스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선물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얼마전 MPC 기념품 가게 앞에는 새로운 공지가 붙었다. 20일 이전에 출국하는 언론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내면 20㎝짜리 빙둔둔 인형 하나를 살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공지했다. 그 이후에는 공급이 안정을 찾을 모양이었다. 코로나19로 작아진 올림픽이다. 현장에 온 세계인도 별로 없는데 중국의 빙둔둔 사랑이 오히려 빙둔둔의 인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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