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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생신 미역국은?" 박하선 '며느라기'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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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생신 미역국은?" 박하선 '며느라기'들의 현실

입력
2022.02.18 04:30
수정
2022.02.18 09:06
11면
0 0

30·40·50대 워킹맘이 말하는 며느라기(期)
엄마 된 박하선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
재생수 1,800만 건 돌파... '미세차별' 보여줘 공감대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사린(박하선·왼쪽)이 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있다. 부장은 "이번 프로젝트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사린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영 먹히지 않는다. 카카오TV 캡처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사린(박하선·왼쪽)이 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있다. 부장은 "이번 프로젝트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사린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영 먹히지 않는다. 카카오TV 캡처

"사실 제가..." 사린(박하선)이 직장 상사에게 임신 얘기를 꺼내자 부장은 헛기침을 하며 놀란 듯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축하해. 회사는 계속 다닐 건가?" 사린은 부장이 되레 퇴직을 바라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 12일 공개된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2...ing' 7회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1에서 맏며느리 혜린(백은혜·쇼파에 앉아 있는 오른쪽 여성)은 제사를 지내러 시댁에 왔다가 시동생들에게 "너무 하네"라고 말한다. 정작 조상을 모셔야 할 구영(권율)과 미영(최윤리) 등 시동생들은 음식 준비는 제 일이 아닌 양 데이트하러 나간다고 당당하게 말해서다. 그 옆에서 시댁 남자 어른들은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카카오TV 캡처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1에서 맏며느리 혜린(백은혜·쇼파에 앉아 있는 오른쪽 여성)은 제사를 지내러 시댁에 왔다가 시동생들에게 "너무 하네"라고 말한다. 정작 조상을 모셔야 할 구영(권율)과 미영(최윤리) 등 시동생들은 음식 준비는 제 일이 아닌 양 데이트하러 나간다고 당당하게 말해서다. 그 옆에서 시댁 남자 어른들은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카카오TV 캡처


"헬입덧에 산달까지 일해" 워킹맘들의 포효

드라마는 임신부가 된 워킹맘이 회사, 시댁, 집, 대중교통 등 일상에서 겪는 짠내 나는 현실을 덤덤하게 풀어 공감을 얻고 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엔 '회사일은 어떡하지, 내 경력은 어디로 사라지지,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없어지는 건가 싶어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엉엉 울어 엄청 공감했다'(쑥빠뚜***), '헬입덧(지옥에 간 듯 심하게)하면서도 신입사원이라 산달까지 일했다'(차이***)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17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카카오TV와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에 7회까지 공개된 '며느라기' 시즌2 누적 조회수는 15일 기준 1,800만 뷰다. "미세먼지처럼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문제점을 찾게 하고, 그 차별을 들추는 게"(정덕현 문화평론가) '며느라기' 시리즈의 인기 비결이다.

워킹맘들은 이 드라마의 어떤 점에 공감하고, 어떻게 회사와 집에서 며느라기(期)를 보내고 있을까. 30대 사회복지사, 40대 교사, 50대 콘텐츠 제작사 대표 등 직종이 서로 다른 세 워킹맘을 인터뷰한 뒤 그 얘기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사린이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자 남편이 아내를 꼭 안아주고 있다. 하지만 사린은 무표정하다. 당장 회사 일이 걱정이다. 카카오TV 제공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사린이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자 남편이 아내를 꼭 안아주고 있다. 하지만 사린은 무표정하다. 당장 회사 일이 걱정이다. 카카오TV 제공


"5번 유산, '일로 슬픔 극복'하라고"

-드라마에서 사린이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니 프로젝트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는다.

"임신 3개월 됐을 때 임신 사실을 일하던 데이케어센터에 알렸다. 센터장이 '축하한다'고는 했는데, 육아휴직을 걱정했다. 출산휴가는 쓸 수 있는데, 업무 특성상 육아휴직은 곤란하다더라. 황당해서 노무사를 찾아갔고, 자문을 받아 센터장에게 육아휴직을 요구했다. 결국엔 쓰게 해 줬지만, 나중에 업무적으로 볶였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임신 8개월 차에 조산기가 왔다. 무급 병가를 썼고." (사회복지사 하모씨·32)

"난임휴직을 사용하고 싶다고 학교에 말할 때 눈치가 보였다. '보직을 편하게 주겠다'며 회유했다. 기간제 선생님이 들어오면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국 결혼한 지 7년 만에 난임휴직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학교로 돌아오니 바로 고3 담임을 맡기더라. 학교에서 쉬고 왔다고 생각해 고된 자리를 준 거다. 정말 쉰 게 아닌데. 워킹맘들은 알 거다. 차라리 직장에 나오는 게 집에서 아이 키우는 것보다 좋다는 걸."(교사 권모씨·43)

"회사 다니면서 다섯 번 유산했다. 습관성 유산이었는데, 그땐 정말 회사에서 임신한 직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여상사도 대부분 미혼이었고. '전쟁터에 나가는 데 임신을 한다고?' 이랬으니까.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유산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날 보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일로 슬픔을 이겨내야지'라고 말하는 시대였다. 사무실에선 임신한 직원이 있든 없든 담배를 피웠다. 평일엔 밤 11시 전에 집에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임신하면 일을 쉬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고서 회사를 옮겼고, 그렇게 간신히 출산을 했다."(콘텐츠 제작자 김모씨·51)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사린(박하선)이 시댁에서 밥을 차리고 있다.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사린(박하선)이 시댁에서 밥을 차리고 있다.


그의 남편인 무영(권율·왼쪽)은 시댁 거실에선 혼자 밥 차리는 아내와 달리 쇼파에 편히 앉아 멍하니 쉬고 있다. 며느라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카카오TV 제공

그의 남편인 무영(권율·왼쪽)은 시댁 거실에선 혼자 밥 차리는 아내와 달리 쇼파에 편히 앉아 멍하니 쉬고 있다. 며느라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카카오TV 제공


"임산부 배지 없으면 배려석 앉기 어려워"

-사린이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질 못한다. 공공장소에서 임산부로 겪었던 불편이 있다면.

"만삭일 때 지하철 타서 노약자석에 앉으려고 했더니,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밀려 자리를 놓쳤다. 병원 갈 때 버스를 탔는데, 노약자석에 학생이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일어나질 않더라. 결국 병원까지 서서 갔는데, 갑자기 서러웠다. 그 이후엔 택시 타고 병원 다녔다."(하씨)

"임산부 배지가 없으면 배려석에 앉기 힘들다. 동료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더니 '옛날엔 다 애 배고 밭일 했다'고 어떤 할머니한테 혼났다고 하더라. 임신 초기가 제일 힘들고, 아이 엄마에게 위험하다. 만삭일 땐 아이가 자리를 잡아 차라리 낫지. 임신 초기 때 배가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때 배려를 받지 못하면 서글프다."(권씨)

"유산을 자주 하다 보니 필사적으로 노약자석을 찾았던 것 같다(웃음)."(김씨)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임신한 사린(박하선)이 시댁에서 밥을 먹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안 맞은편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카카오TV 제공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임신한 사린(박하선)이 시댁에서 밥을 먹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안 맞은편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카카오TV 제공


"뭐해 전 안 부치고?" 정월대보름이 싫었던 며느라기

-사린의 큰형님은 시댁 제사 독립을 선언했다. 사린의 큰형님 부부는 조상 제사를 각자 챙긴다. 제사 등 시댁 행사 참여 기준을 어떻게 정했나.

"결혼 1년 차 땐 시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챙겼다. 사린이처럼 시댁에 잘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시부모님 생신과 명절 차례 정도만 참여한다. 다만, 남편이 반드시 음식 준비를 같이 하게 만든다. 전 부칠 때 일부러 시어머니 들으라고 남편한테 '뭐해? 같이 부쳐'라고 한다. 이제 아이가 둘이라 애를 봐야 하니 '내가 애 볼게, 당신이 전 부쳐'하고. 웹툰으로 '며느라기'(2017)를 먼저 봤는데, 사린이처럼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웃음)."(하씨)

"결혼 초에 남편이랑 '용돈도 행사도 양가 똑같이 챙기자'고 합의했다. 우린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다. 시부모 생신만 챙긴다. 하지만 명절 땐 어쩔 수 없이 시댁이 메인이다. 이번 설 연휴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들 단톡방에 사흘 치 메뉴를 준비했다고 올렸다. 며느리들한테 음식 장만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해 놓을 테니 와서 먹어라'는 건데,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며칠을 시댁에서 보냈다. 친정엔 설 당일 오후에만 갔다왔다."(권씨)

"일하는 여성은 명절이 제일 싫을 거다. 시댁 가기 전까지 일하다 가면 또 일해야 하니까. 연휴 내내 일하고 끝나면 다시 회사에서 일하고. 그래서 명절 땐 늘 초주검 상태였다. 맞벌이를 해서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다. 오랫동안 명절 내내 같이 보냈다. 명절보다 정월대보름 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찰밥, 나물 만드는 게 은근 손이 많이 간다. 시어머니는 정월대보름 때 여자들이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타고 놀 테니, 여자들이 차린 밥으로 남자들이 알아서 챙겨먹어라는 취지에서 식어도 맛있는 찰밥을 한 것이라고 했다. 단옷날이랑 혼동하신 거 같은데, 여튼 그 음식 준비하다 '제발 나가서 안 놀아도 좋으니 정월대보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김씨)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무영(권율·왼쪽)이 임신한 아내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다. 카카오TV 제공

드라마 '며느라기' 시즌2에서 무영(권율·왼쪽)이 임신한 아내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다. 카카오TV 제공


"시어머니 미역국 끓여달라는 남편"

-결혼 1년 차였을 때 사린이 시어머니 집에 가 미역국을 직접 끓여준다. 그다음엔 사린이 일이 바빠 구일(권율)이 대신 끓여주고. 비슷한 경험이 있나.

"남편이 내게 '엄마 생신 미역국 좀 끓여줘' 했다. 그래서 '알았어' 한 뒤 다음날 아침에 남편을 깨웠다. '뭐해? 당신 엄만데 미역국 같이 끓여야지' 했다. 처음엔 물론 시댁 가서 휴대전화로 블로그 뒤져가며 떡국 끓이고 이것저것 다했다. 이젠 시부모님 생신 때 외식한다.' '짬밥'이 쌓여서(웃음)."(하씨)

"웹툰 보고, 진짜 미역국 끓여주는 며느리가 있다고? 하며 놀랐다. 명절에 시댁 가서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상을 받는 거였다. 남자 상, 여자 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다르고."(권씨)

"미역국과 관련해선 산후조리 때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기억이 더 세다. 여러 사정으로 시어머니가 내 산후조리를 해주셨는데, 남편이 '너 복 많은 줄 알아. 며느리 산후조리 해주는 시엄마가 어딨냐'고 하더라. 나 참, 어이없어서.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내가 '어머니, 분유 좀 타주세요' 할 수 있겠나. 퇴근 후 시어머니 눈치 보여서 남편 시켜먹지도 못하고."(김씨)


"딸 같다고 하는데 자아를 드러내면 사이 금 가"

-당신에게 며느라기란.

"식구인 듯 식구 아닌 관계?(웃음)."(하씨)

"시어머니가 날 딸처럼 대하며 시아버지 흉을 보는데, 내가 '아드님도 아버님 닮아 그래요' 했더니 웃으면서 이러시더라. '얘, 나도 네 시아버지가 일할 땐 부엌일 안 시켰어'라고. 나도 웃으면서 '어머니, 저도 일해요'라고 했다. 딸 같은 며느라기라고 하지만,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균열이 난다."(권씨).

"시댁은 시댁이다. 시댁 식구를 클라이언트(고객)라 생각한다. 그래야 내 속이 편하다."(김씨)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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