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의 질문]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정치에서 여야 대립과 이념·지역 갈등은 늘 있었지만 노동자·여성·외국인 등 특정 집단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공격하는 혐오 정치가 이토록 만발한 적은 없었다. 이것이 득표율에 미칠 효과만 따지고 있기엔 우리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미칠 해악이 심각하다. 정치심리 전공인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5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혐오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며 “과거 정치적 대립이 죽지 않으려 싸우는 공포 심리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더러워서 피하고 절멸시키겠다는 혐오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며 “다른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대중 불만과 신예 정치인의 결합”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등 혐오 전술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부상한 극우 포퓰리즘의 한국 버전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진단하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이 큰 충격이었는데 사실 비슷한 극우 정치인이 21세기 초부터 유럽에 있었고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냉전 직후 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이 역사에서 확인됐다는 낙관론이 2010년대에 의심으로 바뀌면서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이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세가지 이유가 꼽힌다. 첫째 자유무역이다. 세계적으로 번영하긴 했지만 선진국의 생산직 노동자 일부는 공장이 없어지거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밀려나는 피해를 입었다. 둘째 이민이 늘어 종교·인종·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이민자들이 표적으로 떠올랐다. 셋째 표현의 자유가 너무 확대됐다. 개개인이 미디어를 가진 시대가 됐는데 문제가 되는 모든 표현을 법으로 제어하기는 어렵다 보니 가령 가로세로연구소가 체포당하는 현장을 생중계해 돈 버는 일까지 생긴다. 우리나라는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20대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가 그 대체물이 되고 있다.
다만 윤 후보를 극우 포퓰리스트로 딱지 붙이기엔 조금 조심스럽다. 포퓰리즘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존재하는 악성 종양이라고 봐야 한다. 엄밀하게 조건을 말한다면 포퓰리즘 정치는 △기성 정치에 불평불만을 가진 대중이 △자신의 불만을 ‘국민의 의견’으로 착각해서 △이에 기반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배타적 행동을 보이며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화할 신예 정치인을 찾았을 때 등장한다. 트럼프가 정확히 이런 조건에 부합한다. 윤 후보도 가깝기는 한데 본심을 모르겠다. 말려도 거침없이 혐오 발언을 하던 트럼프와는 다르다. 오히려 포퓰리스트로 의심되는 건 이준석 대표다. 윤 후보는 신지예·김한길씨 등을 영입했었는데 무산시킨 게 이 대표였다. 캠프에서도 이 대표가 뿌리면 윤 후보는 기계적으로 말할 뿐이라고 한다. 이 대표가 갈등하다 재합류한 뒤 실제로 선대본부의 레토릭이 많이 바뀌었다. 통합은 없고 갈라치기로 간다.”
“법의 논리로 정치 하면 갈라치기 횡행”
-윤 후보가 오락가락하긴 했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한다” 등 혐오 발언을 내비치고 최저임금·주52시간제 폐지를 시사했다가 말한 적 없다고 부정하고, 이수정·신지예씨를 영입했다가 여가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신설을 공약했다. 하지만 본심이 아니라 해도 혐오 전술을 공식화한 것 아닌가. 이 대표의 생각을 그대로 읊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대선 후보로서 자격이 없는 것일 텐데.
“그야 그렇다. 윤 후보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선출직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1987년 이후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자기 힘으로 선거에서 이겨본 적 없이 대통령이 된 사람이 없다. 경험이 전무한 윤 후보가 당선되면 주변에 휘둘리거나 혼자 막 나갈 가능성이 있어 상당히 위험하다. 또한 정치를 법의 논리로만 이해하는 게 정치학자 입장에서는 가장 큰 불만이다. 흑백의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의 논리에선 한쪽 입장을 택하면 반대 쪽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한다. 정치란 답이 없는 것이고 차선(Second Best Choice)으로 가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정치는 불가능하며 다수에게 차선의 만족을 안겨주는 게 가장 좋은 정치다. 법의 논리에만 익숙한 사람은 선악을 구분하고 갈라치는 정치를 하기 쉽다. 여기서 포퓰리즘과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불만이 팽배한 이들은 차선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눌러서 자기 요구를 충족하려 한다. ‘이대남’의 반페미니즘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30대에 남성 취업률이 높아진 이후부터는 모든 게 남자에게 유리하다. 지금의 현실이 차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더 원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자들도 죽창가, 토착왜구 등을 언급하며 반일 정서를 자극해 결집 효과를 누렸다. 편가르기 정치라면 민주당도 뒤지지 않는데 이런 문화가 혐오 정치의 전제가 된 걸까.
“지지자를 모으는 선거운동(Campaign)과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정운영(Governing)은 다른 것인데,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모든 정치행위가 선거운동이 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혐오 논리가 강화된다. 어떤 정치인이든 당선 후에는 국가를 위해 통치한다는, 기어 변경을 해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과 통치기간을 구분하고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발언하는 게 공직자의 역할이다. 일본 무역보복 때도 갈라치기 레토릭을 쓸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국민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대통령의 가장 큰 권한 아닌가. 전문적이고 정보가 많은 관료들이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문제다. 국민들이 정책 결정에 배제됐다는 불만이 커지면 포퓰리즘으로 나아가는 한 이유가 된다.”
“우리 사회 혐오, 최악 단계인 비인간화로 악화 중”
-이런 선거가 결국 사회에 큰 해악을 남기지 않을까. 공동체 분열과 약자 배제·차별이 심해질 것이 걱정스럽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5가지 감정 중 공포(소심이)와 역겨움(까칠이)은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의 감정이다. 공포는 나에게 해를 끼칠 것이란 마음이다. 해를 막으려 적극 정보를 습득하고 맞서는 전략에 초점을 맞추며 가능하다면 협상도 한다. 역겨움은 더러워서, 오염될까 피하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없애려 하지 대화나 협상의 상대로 삼지 않는다. 과거 정치적 대립이 공포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혐오 정치는 역겨움에 기반한다. 지난 20~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안 싸운 적이 없는데 과거엔 죽을까 봐 싸우고 타협도 했다면 지금은 절멸의 대상으로 삼고 흙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투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집단 간 관계가 악화하는 심리를 보면 처음에 ‘집단 정체성’을 느끼고 다음 단계로 상대 집단에 대한 ‘편견’이 생긴다. 여기까진 머릿속 생각이지만 편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차별’ 단계로 가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가장 심한 단계인 ‘비인간화(Dehumanization)’ 즉 다른 집단 구성원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면 학살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여러 인식조사 등을 봤을 때 걱정스러운 점은 현재 우리 사회가 차별에서 비인간화로 넘어가는 단계로 보인다는 점이다.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설문을 해 보면 페미니스트를 인간 진화 단계에서 인간보다 아래, 원숭이에 가까운 위치에 놓을 정도로 심각하다. 국민 중에는 ‘다른 정당 지지자도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다’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내 방식이 아니라고 해서 국가를 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가 국민의힘에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해 달라며 “여가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다”고 말했다시피 차별과 배제의 피해는 성범죄 피해자, 결혼이주민, 중국동포, 성소수자 등 약자들을 가장 먼저 덮칠 것 같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집권 시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인종 차별이 격화하고 의사당 무력 점거 등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정작 트럼프가 지지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지도 않은 듯한데.
“트럼프 영향으로 인종 차별과 이민자 혐오 등이 심해진 것은 확실하다. 트럼프가 집권 후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 또한 무서운 일인데, 말한 만큼 실현되지는 않았다. 멕시코 장벽 세우려 의회와 다투고 이민자 자녀 보호 법을 폐기하려 시도했으나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미·중 무역갈등이 심해졌다지만 공화당 텃밭인 중부의 농가는 최대 수출국이 중국인 터라 트럼프가 보복관세를 부과할 때 반대 압력을 엄청 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지자들은 종교처럼 아직 트럼프를 신봉한다. 공화당 내 트럼프 세력이 확장될지 위축될지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후원하는 후보들이 얼마나 당선되느냐를 봐야 한다."
-그러니 트럼프가 지지세력으로 포섭한 블루칼러 백인들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대변하지도 않았던 셈이다. 그래도 지지가 유지되나.
"유권자 기류가 바뀌려면 물질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폐지를 공약하고 강제가입 조항을 두고 사회주의자라며 공격해 호응을 얻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화당 지지층인 저소득층이 오바마케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식 조사를 해 보니 젠더 갈등의 기저에는 계급 갈등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자리 문제가 나아지면 젠더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근본적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겨서 정치적 지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20대 전체를 대표하는 이슈라고 보지 않는다.”
“혐오 정치인, 언론과 유권자의 견제 필요”
-문제는 엉뚱한 대상을 불만의 표적으로 부각시키는 바람에 청년취업, 계급 갈등 같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리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오랜 기간 이런 문제를 등한시했던 기성 정치 모두의 책임이 있지만, 그 불만을 이용하는 혐오 정치인이 등장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 사실 혐오와 차별을 자제하는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다. 법으로는 최소한만 제어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정치인이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혐오발언, 가짜뉴스, 음모론 등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드는 것은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정치인 입에서 나와서 메이저 언론이 보도했을 때다. 언론은 정치인의 혐오 발언을 비판해야 한다. 단 이 과정에서 혐오 발언이 재생산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유권자는 혐오를 이용하는 정치인에 대해 투표 행위로 견제해야 한다.”
-정치가 혐오와 분열의 막장으로 가는 것을 막을 해법은 무엇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정확한 정보 유통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개인 수준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치우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내 믿음을 옹호하는 정보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게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쉬어가는 노력, 즉 내가 접한 정보에 상반되는 정보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전문가 주장을 살펴야 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언론은 의도적으로 균형을 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방의 이야기만 전달하고 말 게 아니라 대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혐오가 판치는 대선 정국에서 정치인들에게 ‘국민 통합을 위해 뭘 할 거냐’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질문하는 것도 좋겠다. 국민의 대표가 될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인지하는가, 심각한 갈등이 뭐라고 보는가, 해결할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이를 위해 다른 정당 정치인들과 협의할 의사가 있는가를 물어보라. 후보가 이런 질문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면 심각하게 문제 삼아라. 정치인이 대화할 의사가 없고 내 식대로만 하겠다면 그것이 포퓰리즘이고 파시즘으로 가는 길 아닌가. 이런 걸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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