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고도 안 한 의원님의 21가지 겸직
기초의원 2978명 상세 이력 전수조사
763명 겸직 중인데 의회 신고건수 '0건'
’사장님’ 의원, 취재 시작에 황급히 신고
임대업은 신고, 사업체는 미신고 의원도
"겸직 공개, 재산공개처럼 조건 강제해야"
“박 의원님은 작년까진 이사였고요, 올해는 부회장이 되셨어요.”
경남 김해시의 가야문화예술진흥회 김모 회장은 '박은희 김해시의원(59∙더불어민주당)이 진흥회 임직원을 겸직 중이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의원도 김해시의회 홈페이지 프로필에 자신이 진흥회 이사를 맡고 있다고 기재했다. 그가 현재 겸직을 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기재한 단체는 20곳이 더 있었다. 박 의원은 그러나 정작 자신이 속한 시의회에는 겸직 신고를 하지 않아 지방자치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2018년 7월 선출된 전국 226개 시군구 기초의회의 민선 7기 기초의원 2,978명의 상세 이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겸직 미신고 의원 1,642명 가운데 763명은 실제로는 겸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는 지난해 11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전국 기초의원들의 겸직 신고서류와 의회 홈페이지 프로필에 기재된 의원들의 이력을 대조해, 이들의 겸직 미신고 사실을 확인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의회 운영 가이드북'를 통해 겸직 신고 방법과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서면으로 의회에 신고해야 하며 겸직 대상은 "영리·비영리 여부, 기관·단체의 대표자 및 종사자, 자영업자 여부를 불문한다"고 명시했다. 박은희 의원처럼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등록한 이력은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겸직 신고 효력이 전혀 없다.
기초의원 6명, 겸직 10곳 이상 미신고
박은희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김해시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 위원 △김해YWCA 여성센터 운영위원회 위원 △가야문화예술진흥회 이사 등 무려 21개 직책을 의회 홈페이지에 '현직'으로 기재했다. 하지만 김해시의회에는 한 건도 '겸직 중'이라고 신고하지 않았다. 행안부의 겸직 신고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가야문화예술진흥회는 특히 2020년 보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전국시낭송대회 등 4건의 사업에 대해 김해시 예산 1,030만 원을 지원받았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진흥회 겸직은 명예직으로 보수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시의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21개 직책 중 김해교육청 학생선수보호위원회 등 3개 단체에선 현재 직위가 없으며, 나머지 18곳에선 현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의회는 이에 대해 “행안부가 영리·비영리 여부 등을 불문한 모든 직에 대해 겸직 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그동안 일시적인 위촉직 등은 겸직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모든 직에 대해 겸직 신고를 받겠다”고 밝혔다.
의회 홈페이지 프로필에 겸직 중인 직책을 10곳 이상 기재하고도, 겸직 신고를 하지 않은 기초의원은 6명으로 집계됐다. 박 의원 이외에 △윤성관 경남 진주시의원 △박인서 울산 남구의원 △김영희 경기 오산시의원 △최미옥 강원 원주시의원 △복진경 서울 강남구의원 등이다.
이들은 ‘모든 겸직이 서면 신고대상’이라는 행안부 지침을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윤성관 의원과 복진경 의원은 “영리행위에 해당하는 곳만 신고하는 줄 알았다”고 밝혔다. 최미옥 의원도 “내가 속한 단체는 신고 대상이 아닌 곳으로 알았다”고 해명했다. 김영희 의원은 “서면 신고와 관련한 세세한 사항을 몰랐다”면서 "오산문화원 이사는 임기가 끝난 '전직'인데도 현직으로 잘못 표기돼 즉시 수정했다"고 전했다.
박인서 의원의 경우 홈페이지에 현직으로 소개한 11개 겸직 중 삼산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 4개 직책을 뒤늦게 신고하기도 했다. 울산 남구의회는 “홈페이지 프로필과 실제 내용이 차이가 있어 작년 12월 박 의원에게 정식으로 겸직 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겸직 중인 나머지 7곳은 여전히 미신고 상태였다.
수원시의회 24명, 창원시의회 22명 “겸직 미신고”
경기 수원시의회는 의회 홈페이지 프로필에 현직이라고 밝히고도 겸직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기초의원이 24명에 달해, 전국에서 미신고 의원이 가장 많았다. 시의회 관계자는 "2018년 시의원 당선 뒤 의회에 제출된 겸직 신고가 없다"고 말했다.
한원찬 의원(57∙국민의힘)은 우만초등학교 운영위원장 등 7개 직책을 프로필에 기재했지만, 정작 시의회에는 신고하지 않았다. 김진관 의원(57∙더불어민주당)과 문병근 의원(63∙국민의힘), 윤경선 의원(57·진보당), 홍종수 의원(67·국민의힘) 등 4명도 각각 6개 직책을 신고하지 않았다.
수원시의회 다음으로 겸직 미신고자가 많은 기초의회는 경남 창원시의회였다. 전체 시의원 44명 중 절반인 22명이 겸직 중인데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장님’ 시의원, 취재 시작되자 황급히 겸직 신고
겸직 미신고 기초의원 중에는 사업가도 있었다. 이성우 경기 안양시의원(59∙국민의힘)은 의회 홈페이지에 '삼보실업 대표이사'라고 올려놓고도, 임기 3년이 지나도록 겸직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삼보실업 대표로 재직 중인 사실은 법인등기부로도 확인된다. 이 의원은 “겸직 미신고와 관련한 한국일보 질의를 받고 곧바로 신고했다”며 "그동안 (신고하는 것을) 깜박했다”고 해명했다.
겸직 중인데도 의회에 신고하지 않은 기초의원 763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선택적으로 겸직 신고를 한 기초의원도 있다. 이호귀 서울 강남구의원(65∙국민의힘)은 '부동산 임대업'을 겸직 신고했지만, 사업체 대표직은 누락했다.
이 의원은 작년 하반기까지 10년 이상 영농조합법인 ‘일하영농’ 대표와 이사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강남구의회 문의 결과 겸직 신고는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해충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신고를 안 했다”면서 “해당 법인은 경영 악화로 파산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겸직 신고가 의무 사항이지만 이를 위반해도 제재 규정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의해 올해부터 겸직 신고 내용이 공개된다고 해도 '선택적 공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겸직도 재산공개처럼 의무 공시 항목을 정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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