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 고장 특산물 : 제주 구좌 향당근
전국 생산량 60% 차지 2월이 최고 맛있을 때
'테르페노이드' 성분 많아 향과 당도가 압도적
주스 수요 급증 시설확대… 케이크 쌀빵도 인기
중국산에 코로나 악재… 소포장 사업으로 대응
"전세계 어떤 당근보다 뛰어나" 주민들도 홍보
제주 들판은 겨울이 가장 바쁘다. 다른 지역에선 농산물 수확이 끝나고 잠시 일손을 놓는 농한기이지만, 1년을 준비해 키운 각종 농산물들이 겨울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무, 양배추 등 겨울에서 초봄까지 출하되는 제주산 월동채소는 전국 월동채소의 60~70%을 공급한다. 제주가 없다면 겨울철 국민 식탁은 없다고 봐도 된다.
제주 당근도 전국 생산량(약 10만 톤)의 60%를 차지하는 주요 작물이다. 특히 섬 동쪽에 위치한 구좌지역은 제주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생산해, 전국 최대 당근 산지로 꼽힌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출하되는 구좌 향당근은 2월이 가장 맛있을 때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이달 15일 구좌읍 세화리 밭에선 당근 수확이 한창이었다. 한겨울 얼어붙은 땅속에서 나온 주황색 당근이 밭이랑마다 한가득 쌓여 있었고, 밭 주인과 인부 10여 명이 보기 좋은 것들만 골라 박스에 담느라 손놀림이 분주했다.
구좌 향당근은 향이 뛰어나 공식 명칭도 ‘구좌 향당근’이다. 당근 향을 결정짓는 '테르페노이드' 성분에서 구좌산을 따를 당근이 없다. 당도 역시 구좌 향당근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구좌 향당근의 맛과 향이 뛰어난 것은 물빠짐이 좋은 제주 화산회토에서 여물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선 당근 파종부터 수확까지 재배기간이 4,5개월이지만, 구좌 향당근은 8,9개월이나 되는 것도 품질이 좋은 이유다. 땅속에서 더 오랜 시간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맛과 향은 물론 모양과 빛깔도 우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당근밭에서 일하는 이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김명성(62)씨는 “지난해에는 박스당(20㎏) 2만6,000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1만7,000원까지 떨어졌다”며 “여기에 인건비까지 올라 올해 농사는 손해만 보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근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비침체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당근뿐 아니라 제주산 월동채소류 대부분이 상황이 비슷하다. 제주도와 제주당근연합회, 구좌농협이 당근 가격 안정을 위해 지난달 133㏊를 격리하고, 상품용 8,000톤을 가공용으로 대체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섰지만 가격 폭락은 막지 못했다. 김은섭 제주당근연합회장은 “가뜩이나 중국산 당근이 국내 시장을 50%가량 점령한 상황에서 코로나 악재까지 겹쳐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며 “전 세계 어떤 당근보다 향과 맛이 뛰어난 구좌 향당근을 많이 구매해달라”고 호소했다.
구좌가 국내 최대 당근 산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농민들은 당근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2005년부터 가동 중인 구좌농협 거점산지유통센터(APC) 설립이 좋은 예다. 지역농협 중에선 이례적으로 당근을 매입한 후 제조·가공하고, 판매까지 맡아 직접 시장을 공략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특히 센터는 중국산 당근의 시장 점유율을 낮추기 위한 대책으로 소포장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산 세척 당근이 10㎏ 단위로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 요구에 맞춰 1·3·5·10㎏ 단위로 소포장해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을 통해 공급하기 위한 전략이다. 센터 관계자는 "소비 촉진을 위해 100% 구좌 향당근 주스 생산시설도 가동했는데,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공장 증설을 통해 생산량을 600톤에서 1,000톤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좌 향당근 시장과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농가들도 한데 뭉쳤다. 구좌읍 세화리 주민 490여 명이 참여한 세화마을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옛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질그랭이(지긋이 오래 머무른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 거점센터’를 두고 이곳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향당근을 홍보하고 있다.
세화마을협동조합은 온라인을 통한 구좌 당근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물론, 거점센터 내 카페에서 당근 주스, 당근케이크, 당근쌀빵 등을 만들어 구좌를 찾는 이들에게 향당근의 맛과 향을 알리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카페에선 관광객들이 당근 주스 만들기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다"며 "향당근 디저트 할인 등 지역 카페와 음식점까지 가세해 구좌 향당근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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