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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김대표'는 다시 돌아올까

입력
2022.02.19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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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지난해 말 트위터에 흔한 표현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약 두 달 동안 3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끈 계정이 있다. '스타트업 김대표'라는 이름의 이 계정은 운영자의 정체가 베일에 쌓여 있는 일종의 가상 캐릭터 계정이다.

하지만 실제 존재로 믿을 만큼 자신을 소개한 프로필이 구체적이다. 1986년생으로 서울 대치동에 살며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 하버드대학을 거쳐 서울대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신생기업(스타트업) 대표다.

스타트업 김대표 트위터 계정의 자기 소개글. 해당 트위터 캡처

스타트업 김대표 트위터 계정의 자기 소개글. 해당 트위터 캡처

그런데 방문자들이 열광한 것은 그럴듯한 프로필보다 그가 올린 허를 찌르는 트위터 내용들이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 대표라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개방적 사고를 지닌 진취적인 젊은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스타트업 김대표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그런 통념과 정반대로 가식적인 '꼰대'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밤에도 아이디어가 넘치는 저는 메신저에 아이디어들을 적어 내려갑니다. 직원들 이름을 태그로 걸어둡니다. 즉각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확인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데 다들 대답이 없네요.' '잠 안 자고 회사에 남아 열심히 일하는 개발자들을 보면 밤에 스윙연습하는 프로야구 선수 같아 보기 좋아요. 우리는 프로구단이어야 해요. 야근은 스포츠예요.' '부당해고 잡음 없이 인건비 줄이는 실리콘밸리식 방법. 직무와 무관한 부서로 보낸 뒤 매일 역량부족을 꾸짖고 자존감을 짓밟으면 느낌 알고 쿨하게 떠나든지 멘털이 나가 떠납니다.'

이런 황당한 내용에 방문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현실과 똑같아 공감하기 때문이다. '여자 개발자 면접을 보면서 남자들이 공대 여학생 숙제도 대신 해주던데 학교 다니기 편하지 않았냐고 질문했더니 지원 포기 메일이 왔다'는 글에 '진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도 있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직급위계 없는 평등을 지향하려고 영어 이름을 부르랬더니 새파란 젊은 인턴이 감히 마이클이라고 불렀다'며 분개하는 글에는 '우리 회사가 떠오른다'는 식의 댓글과 '실리콘밸리식 해고 방법' 글에 '저런 식으로 퇴사당했다'는 글들이 잇따랐다.

놀라운 것은 올린 내용들이 창작이 아니라 제보를 토대로 작성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운영자는 '반노동, 반인권, 성차별 발언이 담긴 녹취와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했다'며 '처음 준비한 기록은 한 달치였는데 제보가 이어지며 운영 기간이 길어졌다'고 공지했다. 그렇기에 어떤 창의적인 드라마보다 생생하고 극적인 내용들을 담을 수 있었다.

스타트업 김대표는 지난 15일 돌연 계정 운영을 중단했다. 운영자는 중단의 변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직원과 동료의 전문성을 존중치 않고 얄팍한 지식에만 갇혀 본인 중심의 권위적 사고밖에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초창기 김 대표의 모델이었지만 말미에는 모든 개xx들이 모델이 됐다. 허울 좋은 감투만 쓴 스타트업 대표와 관리자들에게 김 대표의 존재가 부끄러움을 주었기를 바란다. 발언자들이 진심으로 많은 욕을 먹기 바랐고 그 목표가 이뤄졌다.'

스타트업 김대표 계정이 일으킨 파란은 비단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의 댓글처럼 여기 올라온 글이나 댓글을 보고 화가 난다면 그 조직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스타트업 김대표는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스타트업 대신 다른 타이틀을 붙인 김 대표 또는 이 대표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만큼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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