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사이버렉카' 블로거들의
트래픽 노린 가짜 뉴스 퍼나르기
캐나다팀 세리머니도 아전인수
"한국 빙속 선수 차민규가 은메달을 앞두고 '악마'로 떠올랐다. 시상대를 닦는 제스처는 명백한 도발이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도 경고를 날렸으며, 어쩌면 메달이 취소될 수도 있다."
중국의 누리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차민규가 12일 남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 오르기 전 시상대를 손으로 쓰는 듯한 동작을 한 것을 두고 중국 네티즌들이 비난글을 대거 쏟아냈다. 이 글은 다시 한국 언론을 통해 '중국 매체의 황당 주장'으로 국내에 소개되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한중 양국 누리꾼이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두고 벌인 여러 신경전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차민규를 둘러싼 중국 웹의 루머는 중국판 '사이버렉카'라 할 수 있는 블로거들이 어떻게 거짓 주장을 확산시키는지를 보여준다.
"판정에 항의한다는 뜻" 답 정해놓고 분석한 중국판 '사이버렉카'
12일 차민규가 시상대를 쓸어보는 퍼포먼스를 한 직후 중국 네티즌은 그가 쇼트트랙 종목의 편파 판정에 항의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며 공격에 나섰다. 이들이 내놓는 주장의 근거는 평창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캐나다팀이 바닥을 쓸었던 퍼포먼스가 항의의 의미이며, 차민규가 이를 흉내냈다는 것이다.
차민규는 13일 "시상대가 나에게 소중하고 값진 자리이기 때문에 더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가겠다는 취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존중한다는 의미로 세리머니를 했다"고 밝혔지만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 시나 웨이보 외에 포털사이트 바이두, QQ, 넷이즈 포털(163닷컴)에서 활동하는 블로거들은 주로 '스포츠 크리에이터'를 자칭하고 있다. 글 제목에 최대한 자극적인 주장을 늘어 놓고 조회수와 덧글을 끌어모으기 위해 열중하는데, 대부분은 다른 이들의 주장과 사진을 퍼나르며 루머를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유튜브의 '사이버렉카'와 비슷한 모습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네이버'를 인용해 "차민규는 해당 세리머니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파문에 대한 항의라고 밝혔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들이 근거로 내세운 사진 속 기사는 차민규가 아닌 피겨 스케이팅 선수 차준환의 인터뷰였다. 세리머니를 '판정에 항의한다는 뜻'이라고 정해 놓고 '해명'을 찾다가 차민규와 차준환을 헷갈려 번역을 한 셈이다.
일부 '사이버렉카'는 경기 후 메달리스트들이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차민규 앞에만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이 없다는 이유로 "차민규가 빙둔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주장하며 공격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역시 "트래픽을 노리는 명백한 가짜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캐나다 세리머니' 두고도 아전인수
중국 누리꾼이 차민규를 향한 공격의 근거로 내세운 캐나다팀의 세리머니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5000m 남자 계주 경기 동메달 시상식에서 선보인 것이다.
중국 누리꾼은 "평창올림픽이 더럽다는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근거가 없다. 당시 금메달은 헝가리, 은메달은 중국팀이 얻었고 한국은 결승에서 4위로 밀렸다. 같은 해 3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ISU 세계선수권 대회 5000m 남자 계주 경기에서 캐나다팀은 시상대에 오르기에 앞서 동일한 세리머니를 선보인 바 있는데, 당시 캐나다팀은 2위를 했고 1위는 한국팀이었다.
캐나다팀은 이번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도 비슷한 세리머니를 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선 "차민규를 응원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중국의 블로거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한국팀을 겨냥한 것"이라며 "한국팀이 멋쩍게 박수를 쳤다"는 등 아전인수를 했고, 다른 일부는 "내가 정말 차민규를 오해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캐나다팀은 과거에도 진행한 적이 있는 세리머니를 다시 했을 뿐이다. 캐나다 쇼트트랙 종목 간판선수이자 올림픽 여섯 번째 메달을 획득한 샤를 아믈랭은 세리머니에 대해 "그저 메달을 받기 위해 단상을 청소하는 퍼포먼스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캐나다 대표팀 측은 "아믈랭이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딴 것이 기쁘다는 의미에서 한 세리머니"라고 밝혔다.
'세리머니 징계론'의 허상
차민규와 캐나다팀의 세리머니를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시상대는 경기 외에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목을 끄는 자리라 늘 이야깃거리가 된다. 한 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내에서의 정치적 메시지를 점차 허용하고 있지만 경기 중과 메달 시상식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도쿄 하계올림픽에서조차 '시상식 세리머니'가 말은 많았지만 실제로 징계로 연결된 것은 없었다. 이 대회에서 은메달에 입상한 미국 포환던지기 선수 레이븐 손더스는 'X자 세리머니'를 한 후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사이클 여자 단체스프린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선수 바오산쥐와 중톈스는 마오쩌둥이 그려진 배지를 부착하고 시상대에 섰다. IOC는 이들 선수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입장만 표명했을 뿐 결과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