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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끓여도 쫄깃해요"… 거센 물살이 빚은 '쫄쫄이' 원조 서생미역

입력
2022.02.28 04: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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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리 고장 특산물 : 울주 서생미역
국내 첫 자연산 돌미역 종묘 생산 "기장보다 먼저"
한류와 난류 교차 해역서 자라 쫄깃한 식감 일품
간절곶 생산 희소성 "임금 상 오르던 명성 찾겠다"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바닷가에서 건조 중인 미역. 울산시 제공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바닷가에서 건조 중인 미역. 울산시 제공

'미역' 하면 부산 기장이나 전남 완도를 떠올리지만,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 후기인 1808년 편찬된 ‘만기요람’에선 다른 지역 미역이 7냥 반일 때 울산 미역은 품질이 좋아 10냥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1817년 실학자 정약용이 쓴 '경세유표'에도 울산 미역은 맛이 매우 좋아 값이 다르다는 기록이 있다. '울산 미역'을 최고로 꼽았다는 얘기다.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주민들이 이날 채취한 미역을 말리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주민들이 이날 채취한 미역을 말리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달 24일, 해돋이 명소 간절곶을 품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을 찾았다. 35년째 미역을 생산 중인 김정래(69)씨는 이날 새벽 채취한 미역 손질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칠순을 바라보는 김씨는 "간절곶은 조류가 거세 미역이 많이 나부끼기 때문에 부드러운 일반 미역과 달리 오돌오돌한 식감이 일품"이라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은 일조량이 풍부해 서생 미역이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만큼 최상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채취한 미역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는 자숙 과정을 거쳐 다시 급랭시킨 뒤 12시간가량 건조한다. 작업자들이 건조 직전 미역을 널고 있다. 박은경 기자

채취한 미역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는 자숙 과정을 거쳐 다시 급랭시킨 뒤 12시간가량 건조한다. 작업자들이 건조 직전 미역을 널고 있다. 박은경 기자

미역은 보통 10월에 종묘를 이식해 이듬해 2월에서 4월 사이 수확한다. 김씨는 요즘 매일 새벽 1시 30분쯤 바다에 나가 수심 50m가 넘는 곳에서 미역을 채취한다. 3~4시간 정도 채취 작업이 끝나면 뭍으로 돌아와 바로 '자숙' 작업에 들어간다. 80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5~6초가량 살짝 데치는 과정이다. 데친 미역은 다시 급랭시킨 뒤 800g씩 소분해 12시간 정도 건조한다. 염장은 하지 않는다. 김씨는 "염장 없이 건미역을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해 2004년 해양수산 신지식인 표장을 받았다"며 "소금에 절인 것에 비해 더 쫄깃하고 신선해 미역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생미역 건조 전후. 북방산인 서생미역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거친 환경에서 자라 좁고 두꺼운 잎이 특징으로 일명 '쫄쫄이 미역'으로 불린다. 박은경 기자

서생미역 건조 전후. 북방산인 서생미역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거친 환경에서 자라 좁고 두꺼운 잎이 특징으로 일명 '쫄쫄이 미역'으로 불린다. 박은경 기자

건조를 마치면 800g이던 미역은 100g으로 줄어든다. 물에 불리면 800g으로 다시 늘어나는데 4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가격은 건미역 기준 100g당 1만 원 선으로 다른 미역보다 2~3배 비싸게 팔린다. 김씨는 “오래 끓여도 잘 퍼지지 않아 산모용으로 특히 인기가 많다"며 "기력을 보강하고 변비를 예방하는 데는 미역만한 음식이 없다”고 강조했다.

언제부터 산모가 미역국을 먹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기 힘들지만, 8세기 초 중국 당나라 서견 등이 현종의 명에 따라 편찬한 ‘초학기’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고 산후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구려인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고 돼있다. 실제 미역은 단백질·회분·인·섬유질·칼슘 등의 성분이 많아 산모는 물론 고혈압 환자에게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김씨는 "내가 생산한 미역이 산모 밥상이나 생일상에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작업을 허투루 할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서생미역을 생산하는 김정래씨가 건조기에서 나온 미역을 살펴보고 있다. 박은경 기자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서생미역을 생산하는 김정래씨가 건조기에서 나온 미역을 살펴보고 있다. 박은경 기자

미역 종류는 크게 완도 미역으로 대표되는 남방산과 기장 미역으로 대표되는 북방산으로 나뉜다. 완만한 조류와 얕은 수심에서 자란 남방산은 넓고 얇은 잎에 두꺼운 줄기가 특징이다. 얇은 만큼 식감은 부드럽고 맛은 담백하다.

반면 '쫄쫄이 미역'으로 불리는 북방산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거친 환경에서 자라 좁고 두꺼운 잎에 단단한 줄기를 자랑한다. 탄탄하고 쫄깃한 식감에 구수함과 단맛, 감칠맛 등 복합적 풍미가 일품이다. 동해안 끝자락인 부산 기장과 울산 간절곶에서만 생산되며 전국 미역 생산량의 5% 안팎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후 변화로 해마다 생산량이 줄고 있다는 게 울주군 설명이다. 울주군 관계자는 "수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져야 어린 종묘가 잘 자라는데 지난해 10월 종묘 이식 당시 수온이 23도였다"며 "전년 대비 10%가량 생산량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주민들이 이날 채취한 미역을 옮기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달 2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주민들이 이날 채취한 미역을 옮기고 있다. 울산시 제공

'서생 미역'에 대한 김씨의 남다른 자부심은 그가 국내 최초로 자연산 돌미역 종묘 양식에 성공했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1998년 그가 울산시 및 울산해양청 등과 함께 개발한 종묘는 기장 등에도 공급됐다. 김씨는 "원조로 따지면 기장보다 서생이 먼저"라며 "상품화에 밀려 한때 기장 미역 상표를 달고 팔려 나간 적도 있지만, 지금은 희소성을 무기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주군도 2019년부터 지역 대표 특산품 8종에 서생 미역을 선정해 홍보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울주에 오면 6가지 음식을 맛보고, 7가지 관광을 즐기며, 8가지 특산물을 사가자는 스토리텔링으로 관광상품 개발이 진행 중"이라며 "반드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서생 미역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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