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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공인 성평등 후진국인데, 페미니즘에 분노한다? [3·8 세계 여성의 날]

입력
2022.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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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1> 여성을 지운 대선, 현실을 보세요
성별 임금 격차 1위, 여성 승진은 꼴찌
여성 취준생, 면접서 불이익 탈락 허다
그런데도 성차별보다 페미니즘에 분노

한국은 성평등을 이미 이뤘을까. 성평등 지표에서 세계 최하위 수준이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새 성차별보다 페미니즘이 더 적폐 취급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성평등을 이미 이뤘을까. 성평등 지표에서 세계 최하위 수준이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새 성차별보다 페미니즘이 더 적폐 취급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대 대선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사회의 적폐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은 각종 성평등 지표에서 주요 국가들 중에서는 거의 꼴찌,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경제참여, 정치적 권한 등을 토대로 산출한 성별 격차지수(GGI)를 보자. 대상 국가 156개국 가운데 한국은 102위에 위치했다. 조사를 시작한 2006년(92위)보다 낮다. 필리핀(17위)이나 라오스(36위)보다 뒤처졌다.

차별이 오랜 기간 보편적이고 당연시되니,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해진 것일까. 성차별에 대한 비난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큰 것도 한국이 성평등 분야에서 후진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 후진국으로서 한국의 모습을 다시 정리해봤다.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며 가정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 심판을 청구해 허가를 받은 부부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은 남편이 아기를 안을 모습이다. 연합뉴스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며 가정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 심판을 청구해 허가를 받은 부부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은 남편이 아기를 안을 모습이다. 연합뉴스


'남자 성씨 우선' 법에 명시, 외국은 거의 없다

외국에선 결혼하면 자녀가 남성 성씨를 따르고, 여성까지 남성 성씨로 바꾼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이는 자발적 선택이며, 한국처럼 아예 남성 성씨를 우선하도록 법제화한 곳은 거의 없다.

한국의 부성주의 원칙에 영향을 미친 중국만 해도 1980년 일찍이 혼인법을 바꿔 자식이 부모 성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게 규정했다.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는 경향이 강한 미국조차 출생 시엔 부모 성씨가 아닌 제3의 성을 써도 대부분 주에서 규제하지 않는다. 독일・프랑스 등 다른 서양 국가 대부분도 부모 성씨 중 선택하게 하거나 혼용하게 할 뿐 부성주의로 치우치지는 않는다.

국내에서도 호주제는 이미 “남계혈통을 존속시킬 뿐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2005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당시 헌법재판소는 아버지 성씨를 따르는 ‘부성주의 원칙’을 두고는 “이전부터 생활 양식으로 존재해 온 사회 현상”이라며 합헌 판단했다. 2008년 폐지된 호주제와 달리 부성주의 원칙은 별다른 이유 없이 현행 민법(781조 1항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에 명문화돼 있다.

어머니 성을 따를 수야 있지만 절차부터 복잡하고 엄격하다. 우선 자녀 계획이 명확하지도 않은 혼인신고 시 결정이 끝나 있어야 한다. 혼인신고서 4항의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아니오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라고 답하고 나면,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정할 것을 협의한다'는 내용의 서류와 주민등록증 사본도 따로 제출해야 한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미출석 시 인감증명서와 서명에 대한 공증서도 필요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10~70대 3,3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녀의 성 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 결과, 응답자의 67.6%(2,234명)가 ‘부성주의 원칙은 불합리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도 법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위계를 명시하고, 여성은 태어나자마자 차별받는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여성학회장을 지낸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계 구조가 개인 단위로 완전히 바뀐 지금은 부성주의 원칙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김문중 기자

그래픽= 김문중 기자


한국 여성, 돈벌기 유독 힘들어

성평등한 사회라면 성별과 상관없이 채용 시장 환경이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2018년 고용노동부는 2017년 기준 10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면서도 최종 합격 여성 비율이 30% 미만인 91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채용 단계별 합격자 실태를 조사했다. 서류 합격에선 여성이 남성의 100.9%로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면접 전형을 넘어가자 여성 합격자 비율이 남성의 68.6%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종 합격 단계로 가면 여성은 더 적어진다. 지난해 국내 주요 공공기관 10곳의 4분기 일반 정규직 신규 채용자의 여성 비율 평균은 24.46%에 그쳤다.

한국공항공사·한국중부발전(32.3%), 한국수력원자력(28.9%), 한국전력공사(28.8%), 한국서부발전(28.3%), 한국남부발전(28%), 한국동서발전(26.5%), 한국가스공사(24.1%), 한국지역난방공사(15.4%) 순이었고, 한국석유공사는 아예 여성 합격자가 없었다.

취업시장의 심각한 남녀 차별은 수사나 감사를 통해 일부만이 표면화된다. 남성 지원자 113명의 평가점수를 높이고 여성 112명의 평가점수는 낮춘 국민은행, 응시자 중 1위를 차지한 여성의 면접전형 평균점수를 무려 87점에서 48점으로 조작해 탈락시킨 서울교통공사의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이 낮은 확률을 뚫고 입사하더라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기대하긴 어렵다. 고용부가 e-나라지표에 고시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여성과 남성의 월급은 각각 220만3,900원, 330만6,000원이었다. 여성의 월급이 남성의 67.7% 수준에 머무른다. 2016년 64.1%에서 3.5%포인트 좁혀졌을 뿐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33.3%)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9년 평균 12.53%)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이런 지표에 대해 △남성의 노동시간이 대체로 여성보다 길고 △남성이 '고위험 고수익' 직종을 도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금 격차가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돼왔다.

그러나 시간당 임금으로 따져도 남성이 더 많이 받는다. 고용부의 '2020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 총액은 여성, 남성이 각각 1만5,372원, 2만2,086원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간당 6,714원을 덜 받는다.

또 성별 임금 격차는 '남초 고위험 고수익 직종'에 한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용부의 '2020 사업체 특성별 임금분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조차도 남성의 중위소득은 한 해 약 3,614만 원으로 여성보다 1,100만 원 더 많았다. '남초 고위험 고수익 직종'으로 알려진 건설업의 성별 임금 격차는 1,200만 원이다.

고용 형태별로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남성 대비 여성 임금 평균은 파견・용역 근로자 92%, 기간제 근로자 82.4%, 자택・가내 근로자 95.4% 등 일부 고용 형태에 따라 오르기는 했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받는 현상은 똑같았다. 동일 임금을 받는 경우조차 없었다.

여성가족부는 성별 임금 격차의 대표적인 요인을 '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과 이후 재취업 현상'으로 보고 있다. 경력단절로 인해 여성의 근속 연수가 짧아지며, 복귀하더라도 낮은 임금의 일자리나 비정규직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각종 돌봄 노동 등 전통적으로 '여성 일자리'로 여겨지는 직종은 '여성 디스카운트'가 들어가, 임금이 후려쳐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맞벌이인데 여성이 가사노동 3배, 조기 퇴직

지난해 서울시가 발간한 ‘2020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서울 맞벌이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121분으로 남성(38분)의 3배가 넘었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일ㆍ가정 양립지표’를 보면 한국 남성의 1일 평균 가사노동 시간(45분)은 OECD 29개국 평균(139분)의 3분의 1 수준으로 꼴찌였다.

결국 맞벌이 여성은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의 ‘인구동태 코호트 데이터베이스(DB)’ 분석을 보면, 1983년생 기혼 여성 중 출산을 기점으로 퇴직을 겪은 사람은 2019년 기준 25.5%에 해당했다. 1988년생 여성도 22.2%로 5명 중 1명 이상이다. 반면 같은 조건의 기혼 남성은 결혼・출산 후에도 직업을 유지한 비율이 93%였다.

여성이 출산・육아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으려면 남성의 공동 육아가 필수다. 그러나 국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017년 13.4%, 2018년 17.8%, 2019년 21.2%를 기록하다 2020년 겨우 24.5%로 올랐다.

일각에서는 “여성 육아휴직만이 우대되느라 남성은 육아휴직도 눈치 보고 쓰거나 아예 못 쓰는 등 역차별을 당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여성차별로 인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한 한편, 임금이 높은 남성이 선뜻 낮은 휴직급여를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문제가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에선 아이 한 명당 부모에게 공동으로 480일의 육아휴직이 부여되는데, 이중 90일은 아빠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엄마에게도 90일 원칙 똑같이 적용)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을 높이기 위해 ‘육아휴직 부모 쿼터제’를 공약했다.

한국선 유난히 “기왕이면 남자가 승진”

한국에선 유독 '여성 임원'이 희귀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중앙정부 1∼3급 고위공무원은 모두 1,568명으로 이 중 여성은 단 7.7%(121명)에 그쳤다. 그나마 2016년부터 5년간의 평균 6.3%에 비하면 소폭 상승한 수치다.

공무원만의 일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의뢰해 2021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2,246개의 성별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국내 상장사의 여성 임원 수는 1,668명이었다. 2020년 1,395명에 비하면 273명 늘어난 수치지만 여전히 전체 임원(3만2,005명)의 5.2%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6%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성 고위직은 남성보다 의원면직(임기가 끝나기 전 사표를 쓰는 퇴직 형태) 비율도 월등히 높다. 중앙정부 1~3급 고위공무원 1,568명(2019년) 중 여성은 재직자 96명 중 37.7%가 의원면직으로 관둔 반면 남성은 재직자 1,420명 중 9.4%만이 의원면직으로 퇴직했다. 여성의 퇴직률이 남성의 4배에 달한다.

여성이 유리천장을 실감하고 관두는 이유는 무능해서가 아니라, ‘밥벌이는 결국 남성 몫'이라는 성차별적 인식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신경아 교수는 “2020년 국내 30개 기업 인사 담당자를 조사해 보니 여성의 승진 제한 기반에는 순수한 성차별이 있었다”며 “‘여자라서 안 돼’보다는 ‘기왕이면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이 승진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교수는 "실제로 남성 생계부양자가 보편적인 규범이라면 모를까, 맞벌이 가구가 훨씬 보편화된 지금은 통하지 않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전체 유배우(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45.4%(555만3,000가구)에 달했다. 유배우 가구 중 남편 대신 생계 책임을 맡는 여성 가구주 비율 역시 2000년 16.2%에서 2015년 24.7%, 2019년 26.7%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페미니즘 백래시' 세대로 알려진 젊은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30 남성들로 구성된 모임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열린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에서 여성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페미니즘 백래시' 세대로 알려진 젊은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30 남성들로 구성된 모임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열린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에서 여성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성차별 뚜렷한데 웬 여성 우월? “백래시 전형”

국내 여성의 생애주기 곳곳에 성차별은 여전한데, 페미니즘은 어쩌다 '부적절한 여성우월주의'라는 취급을 받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페미니즘을 '공공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 교수는 "여론을 결집할 '분노의 과녁'이 필요했던 정치 세력이 페미니즘을 갈등 전선으로 끌고 나왔다"며 "여성 자체를 표적 삼자니 반사회적이고, 특정 여성을 표적 삼자니 그럴 만한 인물이 나오지도 못하는 사회라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어 "백래시(사회·정치 진보에 대한 반발)가 심화할수록 두려워하지 말고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더욱더 활발히 쓰는 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1회>여성을 지운 대선, 현실을 보세요

<2회>여혐 기사, 미러링 해봤다

<3회>알고 보면, 당신도 페미니스트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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