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현수막·피켓에 ‘신천지 비호세력’ ‘술과 주술에 빠진 대통령’ 등 문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년 전 총선과 지난해 재·보궐선거 때 ‘내로남불’ ‘위선’ 등 문구가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금지했던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암시하는 주술 등 문구를 허용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원칙을 세워 여야에 해당하는 문구를 다 허용한 것이지만 선관위 잣대가 그때그때 다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선관위가 기준을 구체화해 일관되게 적용하기 바란다.
선관위의 현수막 운용 기준은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 이름을 특정할 수 있는 문구는 금지한다는 것인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움에 따라 이런 기준이 모호해졌다. 이에 따라 신천지나 주술 등 표현이 특정 후보와 무관하다며 사용 가능한 문구에 포함됐다. 선관위는 민주당이 문의한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세력’ ‘청와대 굿당’ 등 표현도 쓸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민주당을 겨냥한 ‘대장동 게이트 주범’ ‘특검 수사’ ‘내로남불’ ‘위선’ 등 표현도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냈다. 이름을 직접 명시하지 않는 한 폭넓게 허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보자 특정 금지’라는 기준의 실효성이 의심스럽게 됐다. 선거 때마다 구체적인 표현이 특정 후보자에 해당하는지를 선관위가 판단할 수밖에 없고, 그 판단에 따라 언제든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 과도한 비방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성 문구를 허용해 흑색선전과 상호 비방전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내에서 “이 후보의 형수 욕설도 현수막에 써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예다. 논란이 재연되지 않도록 선관위가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바란다. 선관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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