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곡 수록한 솔로 미니앨범 '공중부양' 22일 발매
“음악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말과 노래의 관계는 뭘까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계속 생각해왔어요. 말과 노래는 원래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얼굴들’과 결별한 장기하가 이번엔 목소리를 들고 돌아왔다.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후 3년의 공백을 깬 장기하의 첫 솔로 앨범 ‘공중부양’은 목소리로 펼쳐 보이는 팝아트 같은 작품이다. 빈 종이에 끼적인 낙서 같은 독백, 친구와 나누는 잡담 같은 문장, 수다스러운 말투가 운율이 되고 리듬이 되고 사운드 아트가 된다. 신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2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5개의 트랙 안에서 넘실거린다.
말이 곧 노래가 되는 묘기는 장기하가 밴드 시절 즐겨 사용했던 마술이다. 록 밴드 편성이 빠진 이번 앨범에선 자신만의 전매특허를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현대 한국어의 DNA와 가장 가까운 랩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가도 때론 음악으로 현대미술을 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3일 온라인으로 만난 장기하는 새 앨범을 설명하며 ‘정체성’을 반복 언급했다. “밴드 해체 후 2년간 가장 크게 고민했던 건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내 목소리를 내 목소리답게 활용하는 방식이고, 다른 건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을 하다 보니 데뷔 곡인 ‘싸구려 커피’ 때 가지고 있던 정체성만 남더라고요.”
밴드 해체 후 익숙했던 환경에서 멀리 떨어져 보고자 경기 파주에서 2년을 보낸 그는 종종 임진각까지 차를 달리다 가사가 떠오르면 메모해 뒀다 노래로 만들었다. 아무런 악기도 없이 목소리만 먼저 녹음한 뒤 “대중가요로 인식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소한의 소리”만 덧붙였다. 어떤 소리든 상관없었지만 “은연중에 장기하와 얼굴들 때와는 조금 많이 다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전자음이 많이 들어간 이유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작사와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연주, 편곡, 녹음, 믹스까지 혼자 도맡아 완성했다.
타이틀 곡 ‘부럽지가 않어’는 슴슴한 평양냉면처럼 별다른 선율도 없는데 자꾸만 듣게 되는 곡이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라고 말하는 이 곡에선 장난스런 비트 위에 유머러스하게 흐르는 수다가 차진 두운의 리듬과 선율을 만들어낸다.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네 번째 곡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사운드아트로서 이 앨범의 정점이다. 제목이 곧 가사의 전부인 이 일렉트로닉 댄스 곡은 소리꾼 이자람의 ‘심청가’를 샘플링했다. 단순히 끼워 넣은 게 아니라 미술의 콜라주 기법처럼 이리저리 잘라 붙이고 반복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는 "쉬면서 독일 베를린에 머물 때 미술관에 다니면서 개념미술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은연중에 영향이 제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자람 누나가 고등학생 때 완창한 ‘심청가’ CD를 보내줘서 군 복무 때 닳도록 들었어요. 판소리가 엄청난 장르라는 걸, 우리말의 음악성이 대중음악인들이 활용하는 것보다 훨씬 확장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았죠. 나중에 제가 음악을 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줬어요. 그래서 언젠가 오마주(존경의 표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중부양’은 올해 마흔이 된 장기하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는 “장기하라는 음악인의 기본값이자 좌표”라고 소개했다. “밴드 해체를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때 그렇게 마무리했기에 이런 앨범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장기하는 작든 크든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 정도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다음 달 17일부턴 3년 만에 공연도 열어요. 이디오테잎의 DJ 디구루, 안무가 윤대륜과 함께합니다. 음악과 움직임뿐 아니라 이야기와 침묵과 놀거리가 있는 공연이 될 겁니다. 아, 공중부양을 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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