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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받고 군대에 가시겠습니까

입력
2022.02.24 04:30
수정
2022.02.24 07: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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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5년 8월 24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신병 입영행사에서 입영 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15년 8월 24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신병 입영행사에서 입영 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오빠나 남동생이 월급을 얼마나 받으면 군대에 보내겠어요?”

'모병제를 왜 빨리 시행 못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장교는 오히려 내게 물었다. 카투사에 복무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2020년 가을이었다. 고위층 자제 뒤치다꺼리에 동네북 신세가 된 군을 보며 이럴 거면 차라리 모병제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끝내 대답을 못 했다. 그럴듯한 금액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모병제하에서 내 가족을 군에 보낸다는 생각을. 나도 미처 몰랐던 이기심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안방에서 “필승코리아”를 외치며 승부차기 끝에 4강행을 확정 지은 스페인전까지 같이 본 오빠가 입대하자마자 제2연평해전이 터졌다. 전운이 고조되면서 우리 집은 난리가 났다. 훈련병도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며 엄마는 밤잠을 설쳤다. 총 한 번 안 들어본 이들도 실전에 투입되는 게 전쟁이다.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때 나는 간절히 소망했다. 모병제로 바뀌는 날이 어서 오길.

“모병제가 좋다”, “빨리 도입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가족을 기꺼이 군대에 보낼 이는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거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군대에 안 가도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장삼이사들이 꼽는 모병제의 장점이니 말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나. 군대 체질이라고 자부하는 몇 안 되는 청년들, 병역 명문가 자제들, 애국심이 투철한 젊은이들. 다 끌어모아도 남북 대치하에 필요한 최소 병력을 채우지 못한다. 모병에 애를 먹었던 미국처럼 시민권 부여를 인센티브로 국적이 다른 이들에게, 또는 사면을 대가로 전과자들에게 안보를 맡겨야 할지 모른다.

모병제하에서 대한민국 풍경도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군내 이슈는 더 이상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파병부대에 코로나19 백신을 안 맞혔다는 이유로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도, 부실급식 논란에 장성들이 한 달 넘게 병사들 식판만 쳐다보며 여론 눈치를 살피는 일도, 콧대 높은 기획재정부가 병사 급식비를 단번에 20%나 올려주는 일도, ‘윤 일병 사건’ 때처럼 병영 내 폭력 사태에 국민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 일도 더는 없다. 표가 안 되기에 정치인 관심사에서도 멀어질 거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내건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이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모병제를 준비하는 차원이든, 병사 처우를 현실화하는 차원이든. 자원이 귀할수록 몸값도 오르기 마련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렇다고 산을 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사와 봉급 역전이 문제라면 지금은 국가에서 대주는 병사 밥값과 피복비를 스스로 부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군 기강이 걱정된다면 병사가 군율을 어길 때마다 감봉 등 징계를 하면 된다. 대우받는 만큼 책임지는 게 당연해진다.

무엇보다 이런 논란에 맞서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결기가 두 후보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선거에 이기려고 즉흥적으로 입 밖으로 나왔거나,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이 써내려 간 공약(空約)이 아니었기를.

정승임 정치부 기자

정승임 정치부 기자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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