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공약, 검증한다]
<6>기후·환경: 온실가스 감축, 누가 적극적인가요?
7년 148일. 24일 현재 '기후위기 시계'가 가리키는 마지노선이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뜨거워질 때까지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 경우 기후재앙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도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2021~2040년 중 이 한계에 도달할 거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다음 정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주요 대선후보들도 모두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차갑다. ''기후위기 대응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핵심 공약인 에너지정책의 경우 '재생 대 원전'의 논쟁만 반복할 뿐 로드맵이 없다는 지적이다.
모두 온실가스 감축 목표 동의, 내막은 큰 온도차
주요 대선후보들 모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NDC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중간 목표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NDC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았던 2018년(7억2,760만 톤) 대비 40%(2억9,100만 톤) 감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 목표를 성실히 이행하되 2050년인 탄소중립 시기를 2040년까지 앞당기겠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목표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배출 50% 감축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예상 감축량은 3억 톤이 넘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재조정'이란 단서를 달았다. 윤 후보는 NDC 수립 과정에서 산업계의 의견수렴이 부족했고, 과학에 기반한 ‘실현 가능한’ 목표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 후보도 ‘산업계에 무리한 수치’라며 재조정을 공약했다.
다만 두 후보가 말하는 재조정이 ‘하향’이라면 위기 대응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물론 국제적 고립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는 기존에 제출한 NDC를 낮출 수 없다는 ‘후퇴 불가’의 원칙이 있다”며 “목표를 낮추면 협약 탈퇴나 마찬가지인데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국제사회 흐름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ㆍ윤, 2030년 돼도 화석연료 비중이 가장 커
후보들의 위기의식 차이는 에너지전환 공약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9년 기준 국가온실가스 총 배출량 7억137만 톤 중 87.2%(6억1,150만 톤)가 에너지 분야에서 나왔다. 에너지전환이 위기대응의 핵심인 이유다.
그중 가장 중요한 문제인 화석연료 감축을 따져 보면 이 후보와 윤 후보의 공약은 대동소이하다. 둘 다 2030년 에너지원의 최소 40%를 화석연료에 의존한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가 제시한 2030년 에너지 구성에서 석탄은 21.8%, 천연가스(LNG)는 19.5%로 화석연료는 전체의 41.3%를 차지한다. 현 정부와 같은 계획이다. 윤 후보 역시 2030년 석탄과 LNG를 합한 화력연료 비중을 40~45%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8년 뒤에도 석탄화력발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두 후보가 화석연료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점은 그대로 둔 채 나머지 약 50%를 두고 ‘재생에너지냐 원자력이냐’의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현재 화석연료 비중은 62.4%인데, 두 후보 모두 약 20%포인트 감축에 그친다는 것이다.
안 후보도 2030년까지 석탄·가스 및 기타 에너지를 45~50% 활용한다는 계획인데, 석탄과 가스가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비중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안 후보는 수명을 다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운영중인 곳엔 오염저감설비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화석연료를 가장 큰 폭으로 줄이는 건 심 후보다.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부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석탄이 빠진다고 화석연료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2030년에도 LNG를 이용한 발전의 비중이 25%를 차지하기 때문다. LNG 발전의 탄소 배출은 석탄화력의 절반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온실가스가 나온다.
심 "재생에너지 50%" 이상적... 저장 계획은 부족
누가 당선되든 재생에너지 비중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후보와 심 후보는 전환의 중심에 재생에너지를 둔다.
이 후보가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은 30.2%다. 이를 위해 전국에 인공지능 기반 송배전망인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한다고 공약했다. 현재 대형발전원 중심인 전력계통을 변경해 분산형 전원인 재생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겠다는 얘기다.
심 후보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전력 생산의 50%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능한 모든 건물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공동주택에도 무상 보급해 ‘1가구 1태양광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를 재생에너지공사로 통합해 공공 투자를 확대한다는 전략도 내놨다. 이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2%를 기후위기와 녹색전환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1.5도' 상승 제한의 관점에서 심 후보의 목표가 더 이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유럽 기후분석 전문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한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50%로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더 구체적인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이사는 “심 후보의 공약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 시급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면서도 “에너지 저장에 관한 계획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데,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법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안, 재생에너지에 사실상 화석연료 포함시켜
윤 후보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20~25%로, 안 후보는 20%로 확대한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어떻게' 확대할지 구체적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안 후보는 또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5%로 확대하겠다고 제시했는데, 사실상 과대포장이라는 지적이다. 재생에너지의 15%를 연료전지로 채우겠다고 제시했는데 이는 실상 화석연료를 쓰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연료전지 가동을 위한 수소 생산은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 기술이 있지만 상용화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결국 실제 재생에너지 목표는 20%(풍력·태양광 각 10%)에 불과하다.
윤·안, 사용후 핵폐기물 대책 불분명
윤 후보의 에너지전환에서 핵심은 원자력이다. 2030년까지 그 비중을 30~35%(현재 29%)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안 후보 역시 205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35%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이를 위해 신한울 3ㆍ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기존 원전을 계속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소형모듈원전(SMR) 개발도 공약 중 하나다. 안 후보의 경우 SMR 기술 육성을 에너지 전환은 물론 산업발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전기차 확대 등으로 전력소비가 꾸준히 증가할 것을 가정할 때 두 후보의 공약달성 과정에서 원전 증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규 원전의 계획부터 완공까지 통상 10년이 넘게 걸린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용 측면에서도 효과가 불분명하다. 윤세종 전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전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태양광·풍력은 원자력보다 균등화발전원가(LCOE) 기준으로 더 저렴한 에너지원이 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며 원전의 비용부담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LCOE는 발전소의 건설-가동-폐기 전 단계의 비용을 감안한 평균 발전단가다.
두 후보의 공약에 사용후 핵폐기물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특히 안 후보가 내세우는 ‘파이로프로세싱’은 아직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이는 폐연료봉에서 우라늄만 분리하는 기술인데, 이렇게 얻은 우라늄을 재활용하려면 별도의 원전이 또 필요하다. 홍종호 교수는 “이 계획에 따르면 청년세대들이 향후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등의 사회갈등을 반드시 겪게 되는데 이에 대한 책임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문제에는 원론적 답변만
에너지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든 기존의 산업구조와 전력시스템은 전면적으로 변하게 된다. 특히 전기요금 변동은 불가피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민감한 사안이지만, 후보 대부분은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이 후보는 “연료비 연동제(연료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로 전기요금을 합리화하되 물가와 서민경제 영향을 고려해 시기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나 원자력을 활용해 저비용 공급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도 윤 후보와 비슷한 입장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모든 후보들이 전기료 인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임기 중에는 요금 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건 심 후보가 유일하다. 전기요금에 미세먼지ㆍ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비용을 반영하고 원가 공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윤세종 변호사는 “화석연료 발전의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드러내고 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을 드러나게 하는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다만 이 경우 단기적인 비용상승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에너지 수요관리와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홍종호 교수는 "에너지전환을 달성하고 전기요금을 안정화하려면 한국전력이 독점한 전력시장 유통체계를 개편해야 하지만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후보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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