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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잔인한 명화, 화가는 사디스트였을까

입력
2022.02.24 19:00
수정
2022.03.01 15:39
25면
0 0
김선지
김선지작가

고문그림을 즐겼던 갱단 보스 주세페 데 리베라

주세페 데 리베라,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1644년, 캔버스에 유채, 202 x 153cm,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바르셀로나

주세페 데 리베라,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1644년, 캔버스에 유채, 202 x 153cm,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바르셀로나

그림 속 붉은 낯빛의 남자가 고문을 즐기는 듯한 야비한 웃음을 머금고 희생자의 팔 살점을 슬라이스 햄처럼 천천히 저며내고 있다. 17세기 바로크 화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라는 작품에서 처참한 장면을 이렇듯 실감 나게 묘사한다.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인 성 바르톨로메오는 선교활동 중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오른쪽 손목과 왼쪽 발목이 밧줄에 묶인 채 고통으로 이마를 잔뜩 찌푸린 성인의 눈빛은 화면 밖 관람자에게 이교도들의 야만성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앙상하게 여윈 노화된 육체의 근육은 극심한 통증으로 수축되고 긴장돼 있다. 일상에서 볼 법한 평범한 모델의 얼굴과 극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관람자는 그의 고통을 더 실제같이 느끼게 된다. 두터운 임파스토 기법(impasto)과 거친 붓질은 상처 부분에 3차원의 감각과 촉각적 질감을 부여한다. 팔뚝에서 벗겨내진 피부는 너덜거리는 천 조각처럼 보인다. 이 얼마나 참혹한 장면인가! 하드 고어(Hard Gore)를 명화 버전으로 보는 것 같다.

리베라는 스페인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이자 판화가다. 그는 수세기 동안 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이탈리아로 가서 위대한 르네상스 거장들을 연구했다. 바로크 시대 동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카라바조의 극사실주의와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 대조)에 매료되었다. 여기에, 라파엘로, 코레조, 티치아노의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융합해 자신만의 독창적 양식을 개발했다. 리베라는 성모자와 그리스도, 성서의 이야기들을 그린 종교화, 신화적 주제, 초상화 등 다양한 범주의 그림을 그렸으나, 무엇보다도 고문과 공포 주제의 그림으로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전설이 되었다. 그는 초기 기독교 순교자에서 아폴론에 의해 가죽이 벗겨지는 신화의 사티로스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고통의 주제를 반복해 그렸다.

리베라는 극단적인 육체적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것 같다. 폭력적인 광경은 관람자에게 통증의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신체의 훼손을 극사실적인 기교로 표현하는 한편, 희생자가 느끼는 감정과 공포 또한 잘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의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 역시 보는 사람을 왠지 불안하게 만든다.

리베라가 고통을 즐기는 어두운 성격의 사디스트였을까? 폭력의 이미지를 그렸다고 해서 그가 사디스트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자료들에 의해 알 수 있듯이, 리베라 시대에는 잔혹한 고문과 처형이 평범한 현실의 모습이었다. 17세기는 과학혁명의 시대였고 18세기 계몽주의로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광기와 폭력의 시대였다. 반종교개혁의 비이성적 분위기 속에서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폭력적인 비전은 리베라의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화가의 작품들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리베라는 종교재판 및 처형 행사에 직접 참석해 그 장면들을 스케치했다. 이는 당대가 고문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문서와 그림으로 기록되는 시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보면, 리베라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보기에는 고문 주제를 지나치게 많이 그렸다. 리베라가 이러한 상황을 즐긴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폭력과 고문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기괴한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17세기 나폴리는 아주 거칠고 위험한 도시였다. 리베라는 악명 높은 예술 갱단 '나폴리 갱단(Cabal of Naples)' 3인조의 우두머리였다. 리베라 일파는 다른 화가들과의 경쟁을 막고 일감을 독점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협박했고, 심지어 한 화가를 독극물로 살해했다는 혐의로 재판까지 받았다. 본래의 성격과 삶이 이럴진대, 그의 그림이 살벌한 시대와 사회의 거울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리베라는 실제로 충격적이고 무자비한 주제에 흥미를 느낀 사디스트이었는지도 모른다.

2004년에 개봉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의 수난을 채찍질 태형으로 살갗이 찢어지고, 멍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범벅이 된 참혹한 몰골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묘사해 화제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예수 일대기를 그린 영화들과 확연히 다르게, 전적으로 그의 육체적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감독 멜 깁슨은 예수의 고난을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의해 표현해 신앙심을 고취하려 했다고 말한다. 리베라의 그림이 순교 성인들의 신체적 고통을 묘사함으로써, 이를 본 사람들에게 신앙적 감동을 일으키고 경건한 믿음을 강화하고자 한 바로크 시대 교회의 요구에 충실히 따랐다는 점과 비슷하다.

종교적 목적이 다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괴상하고 잔인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CCTV의 일상화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폭력과 범죄, 재난 등 온갖 자극적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서 도무지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끔찍하고 추악한 이미지에는 혐오를 느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있다. 리베라의 소름끼치는 그림들과 멜 깁슨의 잔혹 영화가 대히트를 친 것은 대중이 원하고 갈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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