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공약, 검증한다]
<7·끝> 젠더: 누가 젠더평등 실현해 줄까요
A씨는 6년간 호텔 카지노에서 일했다. 3교대 근무에다 각종 성희롱 등으로 결국 그만뒀다. A씨는 "6년 경력이라지만 다른 좋은 직장을 구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B씨는 박사과정 수료 후 학과 사무조교 등으로 일했다. 좀 괜찮은 시간제 연구원 일자리를 구했지만 조직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곧 그만뒀다. 지금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산다.
석사 학위 뒤 꽤 괜찮은 국제기구의 한국 연구소에서 일했던 C씨도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곧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줄 알고 그만뒀는데 쉽지 않아서다. C씨는 "아무래도 30대 후반인 나이가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A, B, C씨는 각각 9개월, 3개월, 22개월차 경력단절여성이다. 사정도 여건도 저마다 다 다르지만, 확실한 공통점은 하나 있다. 바로 이들은 경단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이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경단녀란, '기혼'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이 키우는 워킹맘'뿐인가
물론 경단녀를 저렇게 정의한 데는 이유가 있다. 통계청 성별고용률 자료를 보면 2020년 남성은 69.8%이고 여성은 50.7%로 19.1%포인트 차이다. 20%포인트 안팎의 격차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유지됐는데, 이 격차는 여성 고용률이 20대 68.7%에서 30대 58.6%로 한 번 확 꺾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꺾이는 이유는 '결혼·임신·출산·육아'라고 분석한다. 통계청이 경력단절 조사를 하면서 '15~54세 기혼여성'만 따로 떼내어 분석하는 이유다.
문제는 기혼여성 기준으로 경력단절을 정의하다보니, 경단녀 해법은 늘 출산과 육아 부담만 덜어주면 된다는 순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실제 통계수치만으로 보면 경단녀는 2015년 207만여 명에서 2020년 150만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우리 정부의 경단녀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동기부여 안 되는 낮은 일자리 질이 문제
이는 2017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연구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재단은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조사해본 결과,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 이유는 '낮은 임금이나 긴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 문제'가 27.5%로 가장 많았다. 결혼,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꼽은 건 13.7%에 그쳤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취약한 일자리에 몰리고 오래 버티지 못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런 접근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선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미래연구본부장은 "출산과 육아 지원도 중요하지만, 너무 그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문제"라며 "여성정책이라 해서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불안정하게 일자리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력개발 등 지원책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진정성 있는 접근"이라고 말했다.
'비키니 의학'에 갇힌 여성 건강권
여성 건강권 공약도 피상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심상정 후보는 임신중지와 피임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포함한 성·재생산 건강 권리 보장을 약속했고, 윤석열 후보는 자궁 및 유방 검진 건강보험 적용을 내놨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여성 건강이라고만 하면 다 자궁경부암, 유방암처럼 비키니로 가리는 부분만 얘기하는 전형적인 '비키니 의학' 시각에 갇혀 있다"며 "오히려 같은 심장병인데 남성보다 여성 치료가 늦거나 소극적이고, 심뇌혈관 여성 사망이 계속 증가하고, 이런 것들이 건강 불평등과 연관된 문제인데 매번 유방, 자궁 타령만 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양한 가족' 권리 보장은 이·심 앞서
전형적 가족 형태를 벗어난 1인 가구, 한부모, 비혼공동체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심상정 후보는 혼인하지 않고 함께 사는 공동체에 가족과 같은 법적지위를 인정하는 '시민동반자법'을, 이재명 후보는 친족이 아니어도 의료, 장례, 돌봄 영역에서 개인끼리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관계인 등록제도'를 공약에 포함시켰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구체적 제도 명칭까지 제안한 건 매우 의미있다"면서도 "다만 이 후보는 1인 가구로 대상을 제한한 게 아쉽고, 의료적 결정과 장례절차 참여 정도만 언급해 연대관계인이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지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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