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 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교수가 전해준다.
영화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차기 교황이 될 프란치스코 신부가 마르가리타와 디아볼라(악마) 피자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독일식 담백함과 남미식 장난스러움이 오간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인 아버지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인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0~1930년, 유럽 곳곳에서 중남미를 향한 대규모 이민 붐이 불기 시작했다. 토착 인디오의 수가 많은 중미와 차별화를 꿈꾸던 남미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은 백인국가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럽인을 받아들였다. 칠레는 독일인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정착을 유도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 후에는 남미가 나치와 네오나치의 은신처, 때로는 새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다. 동독 정치가 호네커도 칠레로 망명해 말년을 지냈다. 히틀러가 칠레로 도망쳤다는 설도 있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유럽인은 남미의 엘리트층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그들만의 세상은 아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도 식민 전후 노예 신분으로 신대륙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오늘날 한·중·일로 대표되는 아시아는 자본의 상징이 되었다. 아시아사람들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아시아 없이는 삶이 아쉽다.
21세기에 들어 중미에서는 미국으로 향하는 캐러밴 행렬이 이어지고 남미 이민자들은 칠레와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제 위기, 범죄, 폭력을 피해, 주로 중남미에서 가장 살 만한 칠레로 모여들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바첼렛 전 대통령이 아이티 난민을 수용하면서 칠레 거리 곳곳에 전에는 보기 드물던 흑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들은 난민 자격으로 입국해 노동 비자를 받는 조건으로 브로커를 통해 1인당 3,000달러를 칠레 정부에 지급했다. 합법, 불법 가릴 것 없이 이웃 나라 이민자들의 수는 차곡차곡 늘어나고, 환경미화원은 아이티, 우버 기사는 베네수엘라, 가정부는 페루라는 말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힌 와중에도 콜롬비아, 페루를 거쳐 도보로 칠레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이민자의 수가 늘면서 범죄율도 높아졌다.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2016년 4.2명에서 2020년 5.7명으로 증가했다. 칠레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외국인 범죄자 비율은 약 3.8%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혐오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에서 천 명씩 칠레 북부로 넘어오는 밀입국자들. 전과 달리 뒤숭숭하고 살기 팍팍해진 칠레. 사람들은 급기야 북부에 눌러앉은 불법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거주 텐트에 불을 질렀다. 이민자들의 폭행으로 동료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에 찬 트럭 기사들은 국경을 막고 트럭 시위 중이다. 헌법을 새로 쓰느라 속 시끄러운 칠레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유럽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유연했던 칠레 이민법은 이제 반갑지 않은 사람들을 막기 위해 까다로워질 모양새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말했다지,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모두의 나라라고. 그러나 모두의 나라가 될 맘이 없는 칠레는 이웃 나라 이민자들이 귀찮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감옥에 갇힌 왓슨 신부를 구한 성녀 마르가리타처럼 남미를 살릴 성인은 어디에 있나. 남반구에 짓궂은 유혹과 웃음이 흐를 날이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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