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과 인종, 나이와 옷차림 등이 제각각인 사람 7명을 찍은 사진이 있다. 영국 물리학회는 이 사진을 들고 런던 옥스퍼드가의 쇼핑객들에게 누가 물리학자인지를 물었다. 물리학자에 대한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알아보기 위해서인데, 응답자의 98%가 ‘흰 머리에 안경을 쓴 백인 남성’을 짚었다고 한다. 조사 당시인 2000년대 초반, 영국 물리학회 회원의 평균 연령은 31세이고 여성 회원의 수도 상당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심지어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젊은 여성도 같은 사진을 골랐다는 점이다.
어떤 말에 대해 이처럼 집요하게 우리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 그것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 심리학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유사한 이미지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 예로 ‘새’라고 하면 아무래도 ‘펭귄, 타조’보다는 ‘참새, 까치, 제비’가 먼저 떠오른다. 어린아이 때부터 날렵한 모양새의 그림으로 ‘새’라는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주 노출된 원형 탓에 성인이 된 후에도 종종 오판을 한다는 데 있다. 광고를 보면 전문 배우가 깨끗한 얼굴로 인자하게 웃으면서 노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런데 그 모습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오히려 전형적인 ‘노인’의 삶에 대해 우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광고에는 하얀 긴 치마를 입고 먼지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젊은 어머니가 나오지만, 보통 가정집에 이런 주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의 좁은 세계, 짧은 경험에서 빚어진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면 성별과 피부색, 나이 등의 왜곡된 정보에 휩싸이고 만다.
감자와 토마토는 채소일까? 감자가 주식인 나라에서도 감자는 채소인가? 과일빙수에 토마토를 얹어 먹는 문화권에서 토마토는 채소인가? 이처럼 실물이 있는 어휘일지라도 관념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하물며 학문 영역은 더욱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문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영역이다.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내용과 방법은 무한대이므로, 문과 안에서도 언어학, 문학과 철학, 역사, 법률, 경제학 등은 말 그대로 다 다르다. 그런데도 자조적인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가 나온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고정관념 탓이다. ‘문과’도 ‘물리학자’도 획일적인 정답이 있는가? 앞의 조사에서 진짜 물리학자는 ‘검고 긴 생머리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선 아시아계 젊은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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