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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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한 사람의 남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부장적 경계를 용감하게 넘을 때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한다."
- 벨 훅스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에서 재인용)
Her View : 여성의 관점
<46>이대남, 너는 누구냐
(2022년 2월 24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오늘은 '이대남' 이야기로 뉴스레터를 채우고자 해요. 지난해 허스토리는 정치권에서 '이대남'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혐오와 갈라치기를 동원해 이대남을 포섭하려는 정치권, 특히 몇몇 정치인의 행동을 꼬집었죠. 오늘 뉴스레터는 '이대남'이라 불리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대남'을 탄생시키고 그들에게 비대한 자아를 주입한 언론과 정치가 먼저 자성할 일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건 '이대남' 자신일 테니까요.
어느 시점까지는 '이대남'이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과잉대표된 현상이라는 견해가 타당하게 여겨졌어요. 2018년 '불편한 용기'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들과 달리 거리에 나온 게 아니고, 온라인에서 집단 여론을 형성하는 익명 집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20대 남성이라고 모두 '균일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 속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를 확산시키는 정치인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고, 대선 후보까지 구시대적 안티페미니즘에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하면서 이들을 단지 '트롤(온라인 공간에서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도발적 행동을 하는 이들)' 취급하며 무시하기엔 늦었다는 분석도 잇따라 나옵니다.
최근 '이대남'이라는 일방적인 호명을 거부하며, 무성의한 성별 갈라치기에 반발하고 나선 남성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과 직장인, 취업준비생 등으로 이뤄진 이 남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모여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했어요. 정치권과 언론에서 부풀리는 '이대남 현상'에 대한 일종의 반격입니다. '이대남'이라고 묶이는 2030 젊은 남성이 모두 안티페미니스트는 아니며, 오히려 '2030=이대남' 같은 접근이 청년의 삶을 더욱 악화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뭉쳤습니다. 이들은 대선까지 지속적으로 차별 반대에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여성혐오 정치 OUT"이라는 피켓을 들고 세상 앞에 나선 이유를 한국일보가 직접 만나 들어 봤어요.
▶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인터뷰 보러 가기 (https://url.kr/82zuai)
젊은 남성 가운데, 이제라도 '이대남'이라고 불리는 집단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고착된 차별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동료 시민의 연결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권력에 의해 '이대남'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들이, 스스로 이대남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남초 커뮤니티가 확산하는 혐오 발언의 비시민성에 눈을 뜨는 것일 겁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데미안'의 교훈처럼 말이죠.
'이대남'에게 '너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 이름이 정녕 너의 이름이 맞는지' 묻는 한국일보 칼럼을 소개합니다. 대학 시절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주위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인 'X세대'로 범주화됐던 필자는 자신의 대학 생활의 몇몇 장면을 반추해보며 묻습니다. '이런 내가 X세대 였나' 그리고 깨닫습니다. X세대라는 이름은 동시대 수많은 청년의 다종다양한 삶과 서사를 소거해버린 것을. X세대가 자신을 부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그 일원이 아니었음을 말이죠.
▶ '너의 이름은' 칼럼 전문 (https://url.kr/tahzcf)
칼럼 필자의 사유는 오늘날 대선 정국에서 빈번히 호명되는 '청년'과 '이대남'으로 확장됩니다. '이대남'을 '반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의미 성분만 가진 텅 빈 풍선 인형같은 기호라 진단하는 그는, '이대남'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면, 일단 의심하시라. 그게 진짜 당신의 이름인지를." 허스토리는 궁극적으로 '이대남' 명명을 극복한 남성 동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의 차별 구조와 혐오에 민감하게 공감하며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 그런 이들과 진실한 우정을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
페미니즘을 지향하거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한 7명의 남자들을 인터뷰한 책. 성별을 넘어 바라본 페미니즘의 지평은 무엇인지 각자의 위치에서 깊이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나요?"
이 책에는 7명의 남성이 인터뷰이로 등장합니다. 인터뷰의 첫 문장은 공통 질문으로 시작해요. 그들은 당당하게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대답합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한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기를 꺼렸다고 해요. 여성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건 아닌지, 내가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되는지 등등 고민이 짙었기 때문이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 등으로 다르게 스스로를 규정하던 이들은, 책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하며 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냅니다.
남성이 여성으로 사는 삶을 잘 상상하지 못하듯,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대남'으로 불리는 이들이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설정하면서까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시대정신을 역행하는지 가까스로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 책의 몇몇 대목을 옮기면서 오늘 뉴스레터를 마무리할게요.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이 페미니즘을 수용하는 것이 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인지 혹은 왜 다른 이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다채롭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단초인지를 깨달을 수 있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남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약해 보이는 느낌들을 숨기고, 감추는 것에 익숙해요. 특히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꺼내 놓는 순간, 아버지에게 '여자애처럼 울지 말라'고, 형에게 '게이처럼 굴지 말라'고, 친구에게 '장애인처럼 굴지 말라'는 다양한 형태의 정서적 학대를 반복해서 겪어요. 다른 존재자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남자다움은 여성/동성애/장애 혐오가 일상에서 벌어져도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조차 없는 무감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죠." (서한영교)
"다양한 롤모델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현재의 사회적 남성성을 유지하고 남성 연대에 속해있는 건 굉장히 피곤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줘야 하고,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하고, 위계질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잖아요. 때로는 폭력적인 방법들도 사용하면서요.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일인데도 미친 듯이 남성 연대의 열차에 타려고 하는 건, 바깥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열차 바깥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연스럽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한)
※ 본 뉴스레터는 2022년 2월 24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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