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이 요구한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본격 동참하기로 하면서, 한국 무역도 이번 전란의 여파를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에너지 수입가격 급등으로 무역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핵심 수출까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는 '이중 무역 폭격'에 직면한 실정이다. 정부는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할 묘수 찾기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 수출만 미국 사전허가 대상"
28일 정부는 “전략물자의 수출통제 허가 심사를 강화해 대 러시아 수출을 차단하겠다”며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SWIFT) 배제에도 동참할 뜻을 밝혔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통제 관련사항을 미국 측에 외교 채널로 통보했다”며 “비 전략물자의 경우 조치 가능한 사항을 검토해 조속히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주도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 가운데 사실상 한국만 홀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통제 명단에 오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FDPR에 따르면, 반도체·정보통신·센서·레이저·해양·항공우주 등 57개 분야에 미국산 기술·소프트웨어(SW)를 사용한 국가는 앞으로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러시아에 수출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은 유럽연합(EU) 27개국과 일본, 호주, 영국, 캐나다 등은 미국의 허가절차를 통할 필요가 없는 예외국으로 분류했지만, 한국은 허가를 받아야 수출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했다.
‘수출 주력’ 자동차·반도체 타격 우려
이에 국내 수출기업들은 핵심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 받을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한국의 12번째 교역국(수출액 99억8,000만 달러·약 12조 원)으로, 수출액은 전체 수출(6,444억 달러)의 1.5%에 불과하지만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반도체 등 주력 수출분야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 한국 업체가 지난해 러시아에 수출한 자동차 부품 규모는 약 15억 달러(약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업체에 러시아는 미국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라고 전했다. 국내 기업이 러시아로 수출한 자동차 부품 대부분이 현대차·기아의 현지 공장으로 납품되는 터라 완성차 업체의 피해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크립톤과 제논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수입 비중이 각각 48%, 49%에 이른다. 네온도 수입액의 23%를 우크라이나, 5%를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이에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최근 네온 자체생산 기술을 확보한 업체(TEMC)를 방문해 “올 하반기부터 국산 네온 가스를 반도체 소재업체에 본격 공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악의 무역 시나리오 전개 우려”
전문가들은 에너지 수입가격 폭등에 이미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한 무역수지가 핵심산업의 수출 부진까지 겹치면, 장기 침체 터널에 진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국제 공조체제 흐름을 빠르게 읽고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정세가 무역에 최악의 시나리오로 진행되는 상황으로,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 주력 산업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부품 하나만 부족해도 생산망이 무너지는 만큼 정부가 업체들과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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