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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들 숱한 소송 휘말려도… 못 말리는 조합장 욕심

입력
2022.03.24 1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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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겸직으로 발생한 이해충돌 ‘나몰라라’
지방자치법 개정돼 올해부터 겸직 금지
조합장 유지 6명… 7월까지 겸직 포기해야
'지역 발전' 명분에도 현실은 구민들과 소송
"지역 현안, 구의원 '플레이어'는 부적절" 지적

재건축이 예정된 부산 해운대구 재송2구역 아파트 단지의 지난달 2일 모습. 해운대구의회 소속 이상곤 의원은 2020년부터 올해 1월 14일까지 해당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조합장을 맡았다. 부산=이정원 기자

재건축이 예정된 부산 해운대구 재송2구역 아파트 단지의 지난달 2일 모습. 해운대구의회 소속 이상곤 의원은 2020년부터 올해 1월 14일까지 해당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조합장을 맡았다. 부산=이정원 기자

"재건축될 아파트 단지 안 도로는 조합이 사들여요. 출입구에 차단기 달고 다른 구민들 통행을 막는 거죠. 그 일을 구의원이 나서서 맡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박모(72)씨는 지난달 2일 재송2구역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단지는 지난해 시공사 선정까지 마무리돼 착공만 기다리는 재건축 구역으로, 해운대구의회 소속 이상곤(58·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부터 올해 1월 14일까지 조합장을 맡았다. 이 의원은 매달 300만 원가량 보수를 받으며 구의원과 조합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재개발·재건축은 지역 개발의 호재로 꼽힌다. 그러나 재송2구역 비조합원 주민들은 구의원이 주도하는 재건축 과정에서 느낀 소외감을 내비쳤다. 박씨는 "공청회에서 주민들 의견을 수렴한다고 하길래, (대형 아파트가 들어올 경우) 보행권 침해를 신경써달라고 전했지만 영 듣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75)씨도 "인근 부동산에 책자 하나 안 줄 정도로 조합이 폐쇄적으로 운영됐다"며 "구의원이 조합장을 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발전 위해" 조합장 한다는 구의원들... 현실은 구민들과 소송전

그동안 기초의원들은 개발과 건축 관련 상임위원회에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재개발·재건축 조합장을 겸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올해 1월 13일부터는 기초의원들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장 겸직이 원천 금지됐다. 이해관계가 얽힌 조합장직을 기초의원과 병행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장을 겸직 중인 전국 기초의원들은 유예기간인 올해 7월 13일까지 조합장직을 내려놓거나, 의원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 한국일보 조사 결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기초의원 6명이 조합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구의원보다는 실익이 큰 조합장 연임 선거에 나오는 것 아니냐"며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21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돈암6구역 주택재개발조합 건물 문이 닫혀있다. 성북구의회 소속 윤정자 의원은 2019년부터 이곳 조합장을 겸직해왔다. 이정원 기자

21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돈암6구역 주택재개발조합 건물 문이 닫혀있다. 성북구의회 소속 윤정자 의원은 2019년부터 이곳 조합장을 겸직해왔다. 이정원 기자

기초의원들은 대개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조합장을 맡는 명분으로 내세운다. 서울 성북구의회 구의원이자 현재 돈암6구역 재개발 조합장을 겸직 중인 윤정자(66·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민선 5기 성북구의원을 지내고 한 차례 낙선한 뒤 현재 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윤 의원은 2019년 조합장 선거 당시 "(구의원으로 일하며) 구민들을 위해 일해본 경험"을 강조해 당선됐다. 조합 관계자는 "돈암동 재개발 사업은 한 차례 좌초된 적이 있어서, 구의원 영향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윤 의원이 조합장으로 추대됐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조합장직에 오른 지 3년이 지난 지금 윤 의원은 구민들에게 횡령과 배임, 도시정비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구민들은 윤 의원을 상대로 "조합 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서울시 융자금을 제때 상환하지 않은 채 정비업체에 지불해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성북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윤 의원을 무혐의 처분했지만, 올해 1월 서울북부지검이 보완 수사를 주문하며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돈암6구역 재개발 예정 구역과 신축 아파트 구역이 나뉘어 있다. 이정원 기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돈암6구역 재개발 예정 구역과 신축 아파트 구역이 나뉘어 있다. 이정원 기자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재개발 사업의 특성상 조합장이 형사 고발을 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주민들은 지역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구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 의원 고발에 동참하지 않은 조합원조차 "구의원 조합장의 장점도 있지만, 잡음이 계속되면 조합원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전했다. 윤 의원 측은 그러나 "의정 활동과 관계 없는 일에 대해선 이야기할 게 없다"고 답했다.

"관련 민원 하루에도 수십 통인데..." 같은 의원들도 의아

재건축이 예정된 부산 해운대구 재송2구역 아파트 단지에 지난달 2일 건설사 홍보 현수막이 붙어 있다. 부산=이정원 기자

재건축이 예정된 부산 해운대구 재송2구역 아파트 단지에 지난달 2일 건설사 홍보 현수막이 붙어 있다. 부산=이정원 기자

재개발·재건축 조합장 겸직은 기초의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다. 서울 중랑구의회 소속의 한 재선 의원은 "재개발·재건축은 어느 지역에서나 찬반이 갈리는 사안이고, 조합 내 갈등도 심해 하루에도 수십 통씩 민원 전화가 빗발친다"며 "지역의 가장 첨예한 사안에 구의원이 '플레이어'로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초의원들이 조합장을 맡으려는 것 자체가 주민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창호 지방행정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기초의원의 조합장 겸직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겸직이 금지된 상황에서 의원직을 포기하고 조합장을 선택하게 되면, 지역정치가 사익 추구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기초의원 2,978명의 겸직 현황 전수분석 결과를 직접 확인하세요 바로가기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njob/

이정원 기자
심희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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