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다', '차를 몰다'와 같이 한 낱말이 다른 낱말과 짝을 이루어 연이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연이어 나오는 낱말 짝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낱말 짝이 나타나 더 자주 쓰이면서 새로운 짝을 만들기도 한다.
오래전 옛날을 뜻하는 속담으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있는데 '담배'와 '먹다'가 연이어 나온 낱말 짝이다. '담배 먹다' 낱말 짝은 18세기에 간행된 몽고어 대역 어휘집인 '몽어유해'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백 년 전의 소설 자료에도 '담배 먹다'가 주로 나타났지만 지금 빈번하게 사용되는 '담배 피우다'는 적게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담배'와 어울리는 낱말이 '먹다'보다 '피우다'로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950년대 간행된 국어사전에는 '담배를 먹던 시절'을 담고 있지만 요즘 국어사전은 '호랑이 담배 먹던(피우던) 시절'처럼 '피우던'의 사례도 추가하여 언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담배 먹다'에서 '담배 피우다'로 바뀌게 된 사정은 무엇일까? 담배는 음식물 섭취와 관련된 '먹다'보다는 '불'이나 '연기'와 관련된 '피우다'와 짝을 이루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언중들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글말에 비교적 늦게 나타난 '담배를 태우다'가 있다는 것을 보면 언중들이 '불'과 '연기'와 관련된 낱말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언어 변화는 단숨에 일어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글말 자료에서 '담배 먹다'보다 '담배 피우다'의 선택이 늘어나 '담배 먹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는 속담에 화석처럼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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