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입 의존' 스리랑카 국가부도 우려
동남아, 러시아·유럽인 여행 취소에 '휘청'
개도국, 원유·곡물가 상승에 민생경제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인접하지도 않은 제3세계 국가들을 고통의 시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와의 무역이 국가경제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빈국은 물론, 유럽 관광객에 외화벌이를 기댔던 나라들 모두 경제난에 직면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곡물과 원유가 민생의 근간인 개발도상국까지 휘청거리는 등 러시아 야욕의 여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형국이다.
3일 블룸버그통신과 외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와 경제교류가 많았던 복수의 빈국들은 최근 러시아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되면서 수출입 대금 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스리랑카의 경우 자국의 유일한 수출상품인 홍차(실론티)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러시아가 "정상적인 거래가 어렵다"고 통보해오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은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떨어진 스리랑카는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가부도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스위프트 퇴출 조치는 러시아의 겨울 1순위 여행지였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직격탄이 됐다. 태국은 러시아 관광객이 자국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1%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인들의 여행을 중개하던 태국 여행사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연이은 여행 취소로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태국의 외국인 무격리 입국 관광을 가장 많이 이용한 국가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상공의 국제선 운항을 금지한 것도 동남아 국가들엔 재앙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동남아를 거쳐 호주로 향하는 이른바 '캥거루 루트'의 핵심 항로다. 가장 울상인 나라는 오는 15일부터 해외 관광객 무격리 입국을 처음 시행할 예정인 베트남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중부 다낭과 남부 냐짱 등 관광지를 모두 정비했지만, 태국과 비슷하게 예약취소 요구만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와 식량 공급 불안은 제3세계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화된 최근 휘발유 가격이 17%가량 오른 리터당 4,800리엘(약 1,420원)을 기록했다. 이는 캄보디아가 집계한 역대 최고 가격이다. 군부 쿠데타로 신음 중인 미얀마도 같은 처지다. 미얀마 유가 또한 지난주 리터당 1,600짯(약 1,800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양국은 유가 상승에 따른 식용유 등 생필품 가격도 두 배 이상 뛰고 있다.
이집트와 방글라데시는 러시아산 밀 수입 문제에 직면했다. 양국은 러시아과 우크라이나산 밀이 전체 수입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리비아·예멘·레바논 등 중동국가들 역시 근심이 깊다. 이들 국가는 수입 밀의 20%를 러시아에 기대고 있다. 더 큰 고민은 치솟는 곡물 가격이다. 1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밀 선물가격은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산 밀이 제때 수입되지 않으면 굶고, 일부라도 들어오려면 상당한 금액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입 대비 15%만 식품비로 지출하는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들은 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다"며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수록 가난한 나라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WB)도 올해 개도국의 3분의 1이 두 자릿수 식품 물가 상승률에 고통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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