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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냉전해체 뒤 집권한 빌 클린턴 미국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 러시아를 향한 동진을 꾀했다. 힘의 진공상태에 빠진 동유럽을 끌어들여 러시아 위협을 막고 자유와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는 자유주의 패권 구상이다. 1996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반대했지만 클린턴 설득에 성공한 이는 앨 고어 부통령이었다. 당장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나토 가입 추진이 결정됐다. 당시 사직까지 고민한 페리는 더 강력히 반대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 나토 동진에 공개 반대한 인사 중에는 냉전 전략을 설계했던 조지 케넌도 있다. 그는 러시아 반격을 초래할 실책이자 새로운 신냉전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단극 체제의 압도적 패권을 위한 동진은 멈추지 않았다. 카터 정부에서 NSC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가세해 유라시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약속하는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선언문에 서명했다.
□ 약속을 믿은 우크라이나는 준나토 회원국으로 테러와의 전쟁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2014년 나토 가입 저지를 명분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지역을 침공했다. 당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나토 확대가 중대 실책이라고 비판했고, 헨리 키신저도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며 화해 정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8년 뒤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다시 추진하자 푸틴은 전면 침공에 나섰다.
□ 전쟁의 책임은 푸틴에게 있지만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복합적인 미러 세력 다툼의 산물이다. 더구나 상원의원 7선으로 줄곧 외교위원장을 지낸 조 바이든 대통령만큼 외교에 능숙한 이도 없다. 그의 외교안보 전략은 다시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것인데 대러 봉쇄정책은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바이든은 동맹 결집을 복원하고 하반기 중간선거를 위한 국면전환에도 성공하고 있다. 무섭기까지 한 강대국 현실정치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진영에서 자유로운 시각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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