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크리스퍼스 애턱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앨범 '삶의 열쇠 같은 노래들(Songs in the Key of Life, 1976)'에 수록된 'Black Man'은 인종주의를 비판하며 화합의 가치를 호소한 노래다. 흥겨운 펑크록 리듬에 이런 가사로 노래는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높이 들고 있는 미국의 깃발을 위해 맨 처음 목숨을 바친 이는 흑인이었다." 1770년 3월 영국 주둔군의 '보스턴 학살'로 숨진 크리스퍼스 애턱스(Chrispus Attucks, 1723~1770)가 그였다.
영국의 인지세와 설탕세 등으로 피식민지 미국인들의 분노가 치솟던 무렵이었다. 영국 의회는 주둔군 해군에 식민지 청년 중 체격 좋은 선원 등을 해군에 강제 징집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1770년 3월 5일, 보스턴의 한 이발소에서 이발사와 영국군 장교 사이에 빚어진 요금 시비가 화근이었다. 한 병사가 이발사를 폭행했고, 비명 소리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이발사를 역성 들며 병사들에게 눈 뭉치를 던졌고, 무장한 당직 부대가 출동해 무리를 향해 발포했다. 11명이 총에 맞았고, 그중 5명이 숨졌다. 무리의 선두에 서서 몽둥이를 휘두르다 총 두 발을 맞고 맨 먼저 쓰러진 이가 애턱스였다.
사학자들은 그가 흑인이 아니라 혼혈이었다고 추정한다.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의 노예와 원주민 부모 사이에 태어난 그는 27세 무렵 도망쳐, 사건 당시 포경선 선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인 평균 신장보다 10㎝ 이상 큰 덩치(신장 약 188㎝)의 그는 총을 든 영국군을 제압하며 도드라지게 싸웠다.
보스턴 시민들은 그와 희생자들을 당시 시청인 페놀 홀(Faneuil Hall)로 옮겨 사흘간 조문한 뒤 3월 8일 안장했다. 당시 보스턴 시민의 절반이 넘는 1만~1만2,000명이 운구 행렬을 뒤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5년 뒤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스티비 원더는 미국 독립의 첫 순교자가 비백인이었다는 사실을 저 노래로 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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