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북 울진군과 강원 강릉시에서 각각 시작된 산불이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사상 최악의 재난사태로 발전한 것은 때마침 불어온 강력한 바람 탓이다.
매해 봄마다 기상·지형적인 이유로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 쪽으로 부는 국소풍이 발생하는데, 이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 한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간성 사이를 부는 바람이라는 의미인데, 고온건조할 뿐 아니라 풍속이 매우 빠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양간지풍의 이런 고온건조한 특성이 봄가뭄으로 인한 건조한 날씨와 만나면, 동해안에서 봄에 발생하는 작은 산불이 단시간 안에 매우 큰 규모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양간지풍은 울진의 서쪽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삽시간에 동쪽의 읍내와 원자력발전소 쪽으로 휘몰아갔다. 울진 산불은 4일 오전 11시쯤 한울원전에서 서쪽으로 10㎞ 이상 떨어진 야산에서 시작됐는데,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바닷가에 위치한 한울원전의 울타리를 위협할 정도도 확산됐다. 울진 산불이 잡히는 듯 하다가 다시 살아난 5일 새벽 울진군 온정면과 삼척시 원덕읍 일대에는 각각 초속 21.5m와 초속 15.2m의 강풍이 몰아쳤다. 강릉 산불에서도 옥계면 남양리에서 발화한 불씨가 강풍을 타고 동쪽 방향은 삼척시 쪽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양간지풍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에도 피해 사실이 기록돼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영동지방에 피해를 준 바람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20년(1489년) 3월 14일 기사를 보면 “2월 24일에 산불이 나 양양 205호와 낙산사 관음전이 불타고, 간성 향교와 200여 호가 일시에 모두 타 민간에 저장한 곡식이 모두 재가 됐다”는 강원도 관찰사의 보고가 등장한다.
최근에도 영동지방에서는 강력한 양간지풍으로 인해 산불이 민가지역까지 덮치는 대규모 화재로 이어진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2005년 4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 낙산사의 소실로 이어진 양양 산불에서는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32m까지 관측됐다. 2019년 4월 동해안 산불 때 미시령의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35.6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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