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지금도 세계 25위 군사강국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우크라 국방력 약화시켜
세계 3대 곡창지대 보유 등 농업도 강국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34>생각보다 큰 나라 우크라이나
전 세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전쟁은 단순히 양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경제 제재까지 고려할 때 전 세계가 받는 영향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커다란 선입견이 확인되고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 등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체 국력이 허약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실은 군사 강국
먼저 두 국가 간의 군사력 차이를 비교해 보자. 물론 러시아의 군사력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역시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power, GFP) 집계 결과를 보면, 러시아는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현재 25위에 해당한다. 병력 수를 비교해 보면, 러시아의 현역병은 약 100만 명 수준으로 세계 5위, 우크라이나는 25만 명으로 세계 22위다.
이번 전쟁에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전차, 자주포, 견인포 등의 육군 군사력 규모는 러시아가 세계 1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낮은 수준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차 군사력은 세계 13위, 장갑차는 세계 7위, 자주포는 세계 8위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워낙 막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사실 우크라이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거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은 지금보다 훨씬 월등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핵무기 보유국 3위에 해당하는 나라였다. 구 소련 시절 각종 핵무기를 바탕으로 서구 유럽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핵미사일과 핵탄두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어 있던 핵탄두 미사일 176개와 핵탄두 1800여 개 모두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의 소유가 되었고,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 보유국으로 급부상하였다. 현역군 규모도 78만 명, 전차 보유 대수 역시 6,500대에 이르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국방력은 단순히 러시아가 놓고 간 전력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스스로가 구축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군수산업 육성 지역으로 지정되어 지속적으로 육성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방위산업체들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가며, 다양한 전략 무기들을 신규로 개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력 약화시킨 미국
먼저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미사일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1962년 쿠바에 배치됐던 소련 미사일은 전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최근에도 공대공, 지대공 미사일 분야에서 자체 설계 및 생산 능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수송기인 안토노프(An-225) 역시 우크라이나가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항공기, 헬리콥터 엔진 설계와 제조 부분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해군력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구 소련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 내 전체 선박 건조 물량의 30%를 점유하고 있었다. 해군 국방력의 상징인 항공모함 건조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항공기, 전차, 선박 등 다양한 방위산업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막강한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크게 감소시킨 국가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다양한 전략 무기들이 제3세계 국가 내지 반미 성향 단체에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지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제3세계 국가들 중 우크라이나에서 기술력을 전수받아 자체 무기를 확보한 사례가 적지 않다. 북한의 경우 ICBM 기술에 활용하고 있는 백두산 엔진이 우크라이나의 엔진(RD-250)을 개량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 항공모함'도 우크라이나의 바랴그 항공모함을 구매해 개조한 것이다. 인도의 차세대 전차 사업에서도 우크라이나산 T-84 전차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많은 경제적 지원과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일부는 차라리 러시아에 돌려주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더 정확히 말해 미국은 구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가 별도의 국가로 독립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엄청난 핵 보유 능력을 가진 우크라이나가 별도의 국가로 독립할 경우,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공헌한 바 있다. 신생 독립국들의 경우 연이어 내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만약 우크라이나에 내전이 발발하면, 이 과정에서 핵무기가 활용될 수 있다고 당시에는 판단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국방력 약화는 외적 요인 못지않게 내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국방산업은 대표적인 정부 주도 산업이다. 한 국가 내에서 중후장대한 군사장비를 구매하는 경제 주체는 국가뿐이다. 우크라이나 방위산업 기업들은 소련의 해체 이후 소련이라는 큰 구매처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내 방위산업 기업들은 그 규모를 크게 축소해야 했고,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경제가 크게 어려워지면서 일부 핵심 엔지니어들은 해외로 중요 기술을 넘기기도 했다.
농업, 자원 등 경제 잠재력도 커
우크라이나의 경제력은 군사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 곡창지대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의 국토면적은 60만㎦ 정도로,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가장 큰 나라다. 단순히 국토 면적만 넓은 것이 아니라 전 국토의 80%가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총 경지면적은 농업국 프랑스의 2배에 달하는 광대한 넓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으로 알려진 흑토대라고 불리는 체르노젬이 형성되어 있다. 흑토는 낙엽 등이 떨어진 후 미생물 활동으로 썩어 암회색의 토양층을 형성한 것으로 유기물을 많이 함유해 농사에 매우 이상적인 토지다. 전 세계 흑토의 4분의 1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북미의 프레리, 아르헨티나 팜파스와 함께 세계 3대 곡창 지대로 분류된다.
글로벌 메이저 업체인 카길과 ADM, 토퍼 등 글로벌 메이저 곡물업체들 역시 우크라이나 농업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이미 1991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에서 독립하자마자 대형 곡물생산기지를 세우는 등 적극적 투자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현재 전 세계 밀 수출의 10%, 옥수수 수출의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바라기씨, 옥수수, 보리, 콩 등도 전 세계 수출량 톱10에 들어간다.
이처럼 탁월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우크라이나 농업은 기나긴 정체기에 놓여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해 워낙 좋은 자연조건 때문에 우크라이나 농민 스스로가 새로운 농업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했다. 우크라이나 농업 생산은 가족 중심의 중규모 내지 소규모 소작농이 주도하고 있다. 인근 유럽 국가 대비 토지 면적당 농업 생산성이 낮다. 우크라이나 농가 대부분이 농업을 연중 지속 사업이 아닌 계절성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산량 덕에 신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자원부국이다. 철광석(매장량 세계 1위)과 석탄(세계 6위)을 비롯해 망간, 티타늄, 니켈, 흑연 등 다양한 자원이 세계적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셰일가스(Shale Gas)를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공급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유럽 3위의 매장량으로 평가받는 셰일가스 생산을 본격화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인 쉘, 쉐브론 등이 진출한 바 있다.
유럽 역시 러시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천연가스 수급 체제를 탈피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친서방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흑해에 매장돼 있는 석유를 캐내고자 프랑스계 기업을 중심으로 본격 시추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이어 유럽 제2위 영토대국이며, 유럽인의 동방 진출을 위한 길목임과 동시에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유럽으로 갈 때 지나야 하는 통로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빵바구니(Bread basket of Europe)라 불릴 정도의 농업 강국이다. 이 때문에 과거 레닌은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잃어버리면 이는 머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1223년부터 200년간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이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까지 무려 780년 동안 자신들의 땅에서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가 이번 사태도 슬기롭게 극복해, 자신들이 보유한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는 날이 빨리 도래하길 고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