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모티프로 한 넷플릭스 '소년심판'
촉법소년 논쟁 다시 불러오며 화제
촉법소년 사건 처리 건수 5년 만에 56% 증가
윤석열 당선인 '촉법소년 연령 하향·처벌 강화' 공약
전문가들 "공약 효과 보려면 교화 방안 만들어야"
보여 줘야죠,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이 인기를 끌면서 또다시 촉법소년 연령이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1953년 만들어진 현행 촉법소년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거죠. 그때와 다른 청소년들의 신체적‧정신적 성숙, 날로 늘어나는 촉법소년 범죄 등으로 기준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촉법소년 적용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했다 흐지부지된 이 문제가 다음 정부에서는 실현될 수 있을까요. 드라마 '소년심판'의 모티프가 된 실제 촉법소년 범죄, 이에 대한 최근의 논의과정을 정리해봤습니다.
드라마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드라마는 가상의 공간 '연화지방법원' 내 유일한 소년형사합의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속내를 드러내 놓고 밝히는 심은석 판사(김혜수)를 중심으로 각종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심판하는 내용이 큰 줄거립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소년형사합의부'에서 소년보호사건과 소년형사사건을 모두 맡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미성년자에게 보호처분을 내리는 소년보호사건은 가정법원 소년단독판사나 지방법원 소년단독판사가 전담합니다. 혐의가 중대하고 만 14세 이상인 소년범은 소년형사사건으로 분류돼 지방법원 소년부에서 심리하죠. 이 둘을 모두 맡는 소년형사합의부는 가상의 조직입니다.
1회부터 공격적입니다. 인천 연수구 초등학생 유괴 살해 사건을 모티프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뒤 자수한 촉법소년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에피소드에도 가정폭력, 조건만남, 학교폭력, 입시비리, 디지털 성매매까지 다양한 소년범죄가 나열되죠. 정계 진출 야심을 가진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 아들의 시험 유출 사건을 다룬 6화는 조국 사태와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태를, 소년형사합의부에 배당된 집단 성폭행 사건은 n번방 사태를 떠올리게 하죠.
극 중 심은석 판사는 남의 자식을 죽게 만든 내 자식을 감싸거나 오로지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시험지 유출에 거리낌이 없는 부모들을 향해 "자기 새끼 아깝다고 부모가 감싸고 돈다면 국가가, 법원이 제대로 나서야죠"라고 일갈합니다. 때로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하게 폭행을 가하거나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모들에게는 "왜 이렇게 당당하십니까"라고 사이다처럼 되묻죠. 그가 자녀를 잃게 된 과정을 담은 9화 역시 용인 수지구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드라마는 소년범들이 악랄해지게 된 배경에 초점을 맞추되 이들의 불우한 환경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1953년 제정된 소년법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깁니다.
촉법소년 범죄...5년 동안 56% 증가
촉법소년.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를 일컫습니다.
한국은 현재 소년범을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 △만 10~14세 미만의 촉법소년 △만 14~19세의 범죄소년 등으로 나눕니다. 촉법소년은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할 수 있죠. 이보다 어린 범법소년은 아예 보호처분이나 처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보다 나이 많은 범죄소년은 형사처벌도 가능하지만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에도 내릴 수 있는 형량은 최대 20년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촉법소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처분인 보호처분 10호는 소년원 2년 송치입니다.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처벌 면제를 악용할 수 있는' 소년법이 오히려 청소년 범죄를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오죠.
실제로 촉법소년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2017년 7,665건이던 촉법소년 처리건수는 지난해 1만2,029건으로 56% 증가했습니다. 이 중 살인·강도·성범죄·방화 등과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5%에 그쳤으나, 폭력은 20% 수준입니다. 반면 형사사건으로 처리받은 만 14~19세의 범죄소년(소년사범) 사건은 매해 줄어드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2017년 8만4,026건에서 지난해 5만5,846건으로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촉법소년 연령 낮춰야... 여론 높지만
재범률도 높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보호관찰 중인 소년범의 재범률은 2020년 기준 13.5%로 같은 기간 성인 재범률(5.0%)보다 2배 이상 높았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신체적·정신적 성숙이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는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정부 답변 요건인 20만 명 동의를 넘긴 1호 청원도 다름 아닌 '소년법 개정 촉구'였습니다. 2018년 7월 서울 관악산에서 남학생들이 여고생 1명을 집단 폭행한 사건으로 또 소년법 개정 청원에 동의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가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여론을 반영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소년법 개정을 공약했습니다. 적용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낮추고, 학교폭력·성폭력 등 중범죄에 대한 촉법소년 적용 예외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죠.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습니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소년범죄와 관련해 '소년법 일부개정안' 등 총 16건이 올라왔는데, 이 중 ①만 14세인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낮추도록 한 내용의 법안이 4개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법안 역시 ②소년법의 상한 연령을 낮추거나 ③강력범죄의 경우 형량을 지금보다 늘리거나 ④성인처럼 필요시 구속영장 발부가 가능하게 하는 등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죠. 그러나 단 한 건도 처리된 법안은 없습니다.
"교화에 초점 둬야...." 연령 하향 반대 여론도
한편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폐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보호처분 기간을 늘리거나 형사 처벌만 늘릴 경우, 오히려 드라마 마지막 장면처럼 '소년 재범'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죠.
국회 입법조사처의 '소년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기존 논의와 새로운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처벌 대신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보호관찰 제도를 통해 재범률을 낮추고 있습니다. 일부 주는 소년법원의 대상 연령을 높이고, 형사법원으로의 이송을 제한하는 등 엄벌주의를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죠.
소년범에게 호통치는 모습으로 유명한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저서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정학 이론에 따르면 70%가 가장 적정한 수용 인원이고, 100%를 넘어가면 교정효과가 없다. 10평짜리 방에 15명, 18명씩 소년범들을 몰아넣으면 다 한 패거리가 되어 출소를 하게 된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요. 2018년 주광덕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소년원 수용률' 자료에 따르면, 전국 10개 소년원(여자소년원 2개, 남자소년원 8개)의 수용률은 129%(1,250명 정원에 1,612명 수용)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같은 기간 성인 교정시설 수용률 115.4%보다 높은 거죠. 특히 서울소년원(남자, 164%), 안양소년원(여자, 183.8%)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일본은 소년교도소만 7개, 소년원은 52개소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각각 1개, 10개 시설뿐입니다. 인구 대비로 봐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는 거죠. 천 부장 판사는 "소년교도소가 한 개만 있을 경우 전국의 소년범들을 한 곳에 모아 전국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만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가 없다"며 "그러므로 형사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경우 소년교도소의 증설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인프라 그냥 두고 연령만 낮추면 역효과 날 수도
드라마 속 '푸름청소년 회복센터'와 같은 청소년보호시설(6호 처분기관)도 일본은 50여 개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8개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국가가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죠. 이런 상황에선 직업훈련이나 교과 수업 등 청소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교화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촉법소년의 형량만 높이거나, 적용 연령을 낮춰 봐야 '소년 재범'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없는 만큼, 윤 당선인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민심'은 어떨까요.
지난달 촉법소년을 주제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정책 토론회 후 열린 시민배심원 투표에서 170명 중 91명이 '촉법소년 연령하향안'에 표를 던졌습니다. 연령하향 반대는 41표, 천 부장 판사처럼 적용 연령을 하향시키되 교화 방안을 강화하자는 절충안은 38표에 그쳤습니다.
소년법 개정. 새 정부의 '정의'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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