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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변혁' 관점으로 바라본 1차 세계대전의 기원과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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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변혁' 관점으로 바라본 1차 세계대전의 기원과 충격

입력
2022.03.1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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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리스 엑스타인스 '봄의 제전'
"스트라빈스키 발레 '봄의 제전'은 반란 에너지"
새로움과 현대성 추구가 바꿔 놓은 전쟁의 양상

1913년 5월 29일 니콜라스 로리치의 무대 미술과 의상을 배경으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봄의 제전'의 한 장면. 위키미디어 커먼스

1913년 5월 29일 니콜라스 로리치의 무대 미술과 의상을 배경으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봄의 제전'의 한 장면. 위키미디어 커먼스

1913년 5월 29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봄의 제전'은 20세기 공연예술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세르게이 댜길레프 러시아 발레단 단장이 기획하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안무했다. '파리 관객이 진정한 예술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홍보했던 러시아 발레단의 이날 공연은 객석 동요 끝에 아수라장으로 끝났다. 이교도의 제의를 표현한 무용수의 그로테스크한 몸짓에 고상한 취향의 파리 관객은 불쾌감을 표했다.

예술사의 유례없는 스캔들이자 현재는 모더니즘의 시초로 추앙받고 있는 이날 공연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봄의 제전-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은 예술사적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본 책이다.

라트비아 출신의 캐나다 역사학자인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의 기원과 충격, 그 여파를 발레 '봄의 제전'으로 대표되는 당대 문화적 변혁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20세기 전반기 인류의 현대적 의식, 해방에 대한 강박감이 어떻게 출현했고, 1차 세계대전과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예술과 전쟁을 함께 담아낸 책에 대해 "죽음과 파괴에 관한 책이자(…) 생성에 관한 책"이라고 서문에 적었다.

2015년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 공연. 국립발레단 제공(ⓒbAKI)

2015년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 공연. 국립발레단 제공(ⓒbAKI)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공연처럼 각 파트에 '막(幕)'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쟁 전의 삶을 그린 1막에서는 파리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봄의 제전' 공연을 비롯한 문화적 변동을 다룬다.

2막은 1914년 8월 독일의 선전포고로부터 시작해 1918년까지 이어진 1차 세계대전의 전개 양상을 그린다. 당시 독일인에게 무력 충돌의 핵심은 영토 문제가 아니었다. 변화와 확립을 위한 기회였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태양신을 향한 희생제의였다면, 독일의 돌진은 '전쟁의 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죽음으로 활기를 얻는 독일의 '봄의 제전'이었던 셈이다.

3막에서는 전쟁의 후유증을 설명한다. 1차 세계대전은 900만 명이 희생된 '대전쟁(The Great War)'으로 기록됐다. 이 과정에서 희망과 비전이었던 모더니즘은 악몽과 부정의 문화로 탈바꿈했다. 전쟁에는 화가, 시인, 작가, 성직자, 역사가, 철학자 등 지식인도 참여했다. 수많은 희생으로 전쟁의 목적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했고, 남은 것은 파괴와 나치즘이었다.

전략과 무기, 정치가에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전쟁사가 아닌 '희생 제물'이 되고 만 이름 없는 병사들이 맞닥뜨린 참상을 내세운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역사적 사료와 무용·음악·문학 등 다양한 현대 예술 장르를 분석한다. '봄의 제전' 외에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14년 12월 크리스마스 휴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 사건 등을 통해 격변에 따른 인간 의식의 변화 과정을 살핀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독일군을 위협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독일군을 위협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저자가 책을 막으로 나눠 서술한 또 하나의 이유는 20세기의 많은 사건이 드라마처럼 발생한 후 나중에 가서 뜻밖의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삶과 예술이 섞인 시대였다. 당시 예술가들은 전쟁의 광경과 폭음을 예술과 연결시켰다. 그들이 보기에 전쟁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이었다. 저자는 독일 병사들의 편지를 인용해 "전쟁은 시, 예술, 철학, 문화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봄의 제전'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엑스타인스의 저서다. 1989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문화사와 전쟁사를 솜씨 좋게 직조해내 오늘날 독자에게도 참신하게 읽힐 만하다. 결은 다르지만 전쟁과 문화의 유대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서도 발견된다.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했던 100여 년 전 댜길레프의 말과 대조적으로 지금의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류애다. 많은 예술가가 무대 위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연대와 지지 의사를 표한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해온 예술가들은 세계 무대에서 퇴출되고 있다.

역사, 문화, 예술, 문명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다만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풍부한 사료를 인용하고는 있지만 1차 세계대전의 국제정치학적 배경과 1910~1920년대 문화예술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봄의 제전·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최파일 옮김·글항아리 발행·592쪽·2만9,000원

봄의 제전·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최파일 옮김·글항아리 발행·592쪽·2만9,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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