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민생정책, 귀 닫고 독주하지 마라
②인사, 내 편만 쓰면 고립된다
③진영 논리 빠진 정책, 정권에 독 된다
④기자회견 정례화로 소통 진정성 보여라
⑤야당과 자주 식사하고 통화하라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나 허물과 실패까지도 자신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풀이한다. 정권 교체기에 대입해 보면, "전 정권의 실패를 잘 분석하면 미래 정권의 성공 지침서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리킨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국민의 끓는 열망을 받아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을 허락받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와 다른 정권을 원한다"는 게 이번 대선 결과에 응축돼 있는 민심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허물과 실패'부터 철저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반성과 전문가들의 제언을 종합해 '문재인 정부의 타산지석 5대 리스트'를 선정했다.
①민생정책, 귀 닫고 독주하지 마라
정부·여당은 부동산 시장 흐름과 무관하게 ‘답정너’(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 정책을 밀어붙였다. ‘무주택자는 선(善), 다주택자는 악(惡)’이란 흑백논리에 빠져 규제에 올인하다 정책 전환 시기를 놓쳤다. 2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끝에 지난해 '공급 강화'로 기조를 바꿨지만, 집값·전셋값이 치솟고 난 뒤였다.
인사도 문제였다. 정권 초기 ‘규제론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중용하고, 부동산 비(非)전문가인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에게 부동산 정책을 3년 반이나 맡긴 것은 패착이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13일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자체 분석이 일찌감치 나왔지만, ‘규제가 최선’이라는 내부 강경파와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밀렸다”는 반성문을 썼다.
2020년 8월 국회에서 거대 여당의 힘을 동원해 '임대차 3법' 입법을 강행한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부작용을 우려했으나,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집값·전셋값 폭등과 전세 난민 사태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처럼 "정책의 의도가 선하면 결과가 보장된다"는 오류에 종종 빠졌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탈원전 정책 등은 그 자체로 훌륭한 목표였지만, 무리하게 추진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됐다.
▶제언: 정책적 무능을 피하려면, 다양하게 듣고 유연하게 수정해야 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시장을 도덕 문제로 재단하면 비상식적 정책이 나온다”며 “다양한 전문가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했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대선 공약이라고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 수요에 따른 시장 움직임에 맞춰 정책을 유연하게 펼쳐야 한다”고 했다.
②인사, 내 편만 쓰면 고립된다
문재인 정부는 ‘내 편에만 관대한’ 인사로 민심과 자주 충돌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도덕성 내로남불' 사례가 수두룩하게 쌓여도 문재인 대통령은 “불법행위가 드러난 것은 없다”며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사태가 대선 패배의 씨앗이 됐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뒤늦은 후회다.
‘코드 인사’도 부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조국 전 장관 등 감성적이고 급진적인 인사들을 좋아했다”며 “편향적 정책이 완충 장치 없이 추진되는 바람에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인재 풀이 좁은 탓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을 주중 대사로,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이동시키는 등 돌려막기 인사도 반복됐다. 정권 말 사실상 ‘의원 내각제’를 이룬 것도 진기록이다.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민주당 의원 출신 장관은 8명에 달한다. 야당 출신 인사는 전혀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의 핵심은 대통령 인사권의 제한과 견제다. 인사권 남용을 막기 위해 '국회와 여론의 검증'이라는 단계를 만든 것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존중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야당이 '임명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는 현 정부 들어 34명에 이른다. 역대로 가장 많은 숫자다.
▶제언: 과감하게 영입해 인재 풀을 넓혀야 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새 정부는 문호를 개방해 실력 있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는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야당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며 “초반부터 통합 인사를 할 환경은 조성돼 있다”고 기대했다.
특히 정권 초기 검찰 인사는 새 정부 인사의 평가를 가르는 중대 분기점이 될 것이다.
③진영 논리 빠진 정책, 정권에 독 된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태생부터 ‘국민 분열’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을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수 세력을 겨눈 ‘적폐 청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는 바람에 '갈등'으로 정권의 문을 열었다. 청산 작업을 지나치게 오래 끈 것은 국정 동력 상실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진영 논리'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다. 소득주도성장, 검찰개혁, 언론개혁, 탈원전 등 진보는 환호하고 보수는 질색하는 정책에 치중했다. 반대 의견을 '구태'로 규정하고, 반대 목소리가 커질수록 오히려 정책 추진 속도를 내는 것으로 정권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결과는 중도층의 이탈이었다.
'편가르기'도 불사했다. '반일'은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 활용한 땔감이었다. 한일 갈등 격화 국면에서 여권 핵심 인사들은 ‘죽창가’ ‘토착왜구 척결’ 등을 입에 올리며 반일감정을 자극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 등 '정의'가 핵심인 사건이 발생해도 편가르기 논리가 먼저 작용했다.
▶제언: 정권 심판론을 업고 탄생한 윤석열 정부도 '편가르기' 유혹을 받겠지만,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선한 얼굴로 편가르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며 “그 덕에 문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지지층을 지키며 지지율 40%를 유지했지만, 결국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진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편가르기 정치는 결국 민심 이반을 낳고 정책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윤 당선인은 지지자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④기자회견 정례화로 소통 진정성 보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통의 상징이었다. 광화문광장에 자주 모습을 보인, 소탈한 인상의 문 대통령은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대국민 소통에 인색했다. 임기 5년 동안 기자회견은 7번 했고, 국민과의 대화는 2번 했다. 모든 국민 앞에서 국정 비전과 액션 플랜을 소상히 밝힐 기회를 1년에 평균 2번도 갖지 않은 셈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기자회견ㆍ언론브리핑 등 각각 약 150번)은 물론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약 20번)보다 미흡한 기록이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친문재인계 의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종교인처럼 절제되고 정제된 태도를 가졌다. 품격이 있지만, 주변 사람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스스로 소통하려 애쓰는 스타일도 아니다. '소통하시라'고 고언해야 할 청와대 참모들마저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자회견을 피하고 싶어 했다."
▶제언: 윤 당선인은 2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주변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보일 생각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자간담회를 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13일 대통령직인수위의 1차 인선안과 조직도를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20분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결국 윤 당선인의 의지와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
⑤야당과 자주 식사하고 통화하라
문재인 정부는 민주당을 '입법 오더 수행 기구'로 대했다. 수직적 당ㆍ청 관계 속에서 민주당은 검찰개혁,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국정원 개혁 등 청와대의 숙원을 입법으로 실행하는 역할에 치중했다. 공수처 설치에 반대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금태섭 전 의원이 징계를 받고 탈당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야당과의 협치도 형식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부터 매년 여야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할 말만 하고 헤어지는’ 수준에 그쳤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을 ‘사무적인 일’로 봤다. 야당 정치인과 허심탄회하게 밥을 먹거나, 비공식적으로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하는 물밑 정치는 부족했다”고 했다.
▶제언: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민주당을 "좌파 이념에 찌든 운동권 패거리 집단" 등으로 폄하하는 등 말빚을 쌓았다. 여소야대의 국회와 동거해야 하는 윤 당선인에게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인 국민의힘 관계자는 "평소에 아무리 욕해도, 대통령이 전화하고 밥·술 먹자고 하면 싫어할 야당 사람은 없다"며 "정권 초반 인사나 정책에 대해 민주당에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초기 관계 설정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묵 교수는 “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민주당의 도움을 얻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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