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4>메타버스 시대, 가상공간의 도시계획을 준비해야
바야흐로 메타버스 시대가 오고 있다. 게임이나 채팅 같은 놀이와 소통의 공간을 넘어 이제는 상업과 업무영역까지 메타버스가 확장되고 있다. 서울시는 ‘메타버스 서울 추진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6년까지 도시관리를 포함한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과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앞으로는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메타버스의 부상과 함께 등장하는 공간 이슈들에 대해 살펴보고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필요한 준비는 없는지 점검해보자.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에 살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를 일컫는 Universe의 합성어다. 미국의 비영리 미래예측 기술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일상기록(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 등 4개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 각종 정보가 뜨는 HUD(Head Up Display)는 증강현실 메타버스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면 이미 일상기록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메타버스는 아바타가 활동하는 거울세계와 가상세계일 것이다.
거울세계란 실제 세계를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대로 복사한 메타버스를 말한다. ‘구글 어스(Earth)’ 같은 인터넷지도 서비스나 ‘메타폴리스(Metapolis)’와 같은 가상 업무공간이 여기 해당한다. 구글 어스는 실제 존재하는 땅과 건물, 도로 등을 가상공간에 옮겨놓고 다양한 정보들을 더하여 보여준다. 부동산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직방 직원들은 본인 대신 캐릭터가 메타폴리스 안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가상세계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 시대, 인물 등을 통해 가상체험을 해볼 수 있는 메타버스다. 이용자가 게임을 직접 만들어 친구들과 즐기는 로블록스(Roblox)나 미래의 암울한 도시에서 용병으로 살아가는 가상체험을 해보는 ‘사이버펑크2077’ 같은 게임들이 있다. 비록 게임이라고는 하나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세계를 창조해볼 수 있고,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어떤 모습인가를 체험해볼 수 있어 귀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가상이지만 가짜는 아니다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분신인 ‘아바타(Avatar)’는 실제 인물과 연결돼 있으므로 가상이지만 가짜는 아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주인에 의해 조정되고 행동의 결과는 실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호라이즌 월드’에서 성범죄 피해를 봤던 한 여성은 아바타 간의 일이었지만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호라이즌 월드에서는 에드워드 홀이 제안한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의 최소값인 4피트(1.2m)를 아바타 간 거리로 설정해 신체 접촉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메타버스 내의 자산도 가짜로 보기는 어렵다. 업랜드(Upland)라는 메타버스에서는 미국 14개 도시의 부동산을 가상공간에서 사고팔 수 있다. 이용자들이 최초로 토지를 매입할 때는 가상화폐인 UPX를 이용하지만 다른 이용자의 토지를 구입할 때는 대금을 달러로 지불할 수 있고, 이 돈은 매도자의 계좌로 들어간다. 메타버스에서 가상화폐로 구입한 부동산을 재판매해 현실 세계의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업랜드상의 토지는 엄연히 현실 세계에서 실제 소유자가 존재하므로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 만약 그 땅에 실제 있는 건물과 동일한 건물을 지어 이를 메타버스에서 거래하고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다면 어떨까. 가상공간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만약 현실세계에서 소유자의 허락 없이 어떤 건물과 똑같은 건물을 지어서 판다면 소송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제페토(Zepeto)’ 안에서 내 아바타에 구찌 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가상세계라고 해서 사용자가 구찌의 옷을 똑같이 만들어 제페토에서 판매한다면 구찌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동일한 논리로 현실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가상의 토지나 건물에 대해서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체성과 확장성
직방은 사무실을 모두 없애고 자체 구축한 메타버스 공간에 모여 업무를 본다. 각자의 분신인 캐릭터들은 매일 아침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상공간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한다. 각 캐릭터의 머리 부분에는 동그란 원 안에 직원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사무실이나 의자들이 아직은 정교하지 않아 현실감이 높지는 않지만 업무효율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 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순천향대는 작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학교 운동장을 가상공간에 구축하고 신입생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입학식에 보냄으로써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메타버스 운동장에 모여 총장의 환영사를 함께 듣고, 동기들의 캐릭터들과 채팅을 함으로써 입학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직방과 순천향대의 사례는 상황에 따라 메타버스가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메타버스는 확장성 측면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콘퍼런스, 전시회, 박람회, 아이돌 공연이 좋은 예다. 2020년 9월 BTS가 ‘포트나이트’라는 메타버스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최초로 공개했을 때 1,230만 명의 아바타가 함께 춤을 추며 즐겼다. 현실에서는 어떤 공연장도 이런 규모의 관중을 수용할 수 없다.
메타버스와 도시계획
메타버스와 도시계획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선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유지하고 냉각하기 위해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므로 전력공급이 원활한 곳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수많은 사람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공공데이터들도 다량 저장돼 있어 정수장만큼이나 보안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데이터센터를 주요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하고 입지나 규모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도시계획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도시계획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각자가 구축한 메타버스에서 크지 않은 가상의 공간을 이용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와 디바이스가 발전하면 거대한 가상공간에 수억 명이 활동하는 메가 메타버스가 출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상공간 내에서도 위치(location)의 개념이 확고해지고, 그에 따라 서로 가까이 배치해야 할 용도와 분리해야 할 시설이 있을 수 있다.
메타폴리스에서 근무를 마친 아바타가 퇴근길에 사무실 앞의 상가에 들러 장을 보면 집으로 배달이 되는 미래를 상정해보자. 최적의 시설배치를 위해서는 그동안 발전시켜온 도시설계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부적절한 콘텐츠를 메타버스 안에서 노출시키는 경우 ‘청소년보호구역’을 지정해 성인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디지털트윈기술과 메타버스를 접목하면 도시계획을 가상공간에서 실행하고 아바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해 현실 공간에서의 도시계획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 지어지는 주택이나 도로에 대한 아바타들의 선호나 이용률을 미리 살펴봄으로써 현실세계의 도시개발에 반영하는 것이다.
도시의 한정된 공간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노력해온 도시계획은 메타버스 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 시대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고 유토피아에 가까워지려면 건강한 공간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계획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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