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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정말 한국인이었나? 21년째 못 찾은 범인

입력
2022.03.18 04:5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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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일본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가족 4명 하룻밤 만에 잔인하게 살해한 후
집 안에 머물며 흔적 그대로 남기고 간 범인
한국인이란 의혹 제기됐지만, 명확한 증거 없어
수사 인력 28만명 투입됐지만 용의자 특정 안돼
유가족 노력으로 일본 강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0년 12월 30일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살해당한 가족.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인 야스코(41), 남편 미야자와(44), 아들 레이(6) 딸 니나(8).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캡처

2000년 12월 30일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살해당한 가족.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인 야스코(41), 남편 미야자와(44), 아들 레이(6) 딸 니나(8).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캡처

새해를 하루 앞둔 2000년 12월 31일 오전 10시쯤.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에 살던 하루코는 바로 옆집에 사는 딸 야스코(당시 41)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딸이나 손녀 니나(당시 8)가 전화를 받을 시간이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수신음만 반복됐다. 불안해진 하루코는 직접 야스코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피비린내에 하루코는 코를 막았고,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피를 흘린 채 1층 계단에 쓰러져 있는 사위 미야자와 미키오(당시 44)가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딸 야스코와 손녀 니나, 그리고 손자 레이(당시 6)까지 모두 무참히 살해돼 있었다. 훗날 일본의 5대 미제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잔인하게 살해한 후 제집처럼 머물다 간 범인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범행 수법은 너무나 잔인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1층 계단에서 발견된 미키오는 전신이 칼로 난도질당해 주변은 피로 흥건했다. 2층에서 함께 발견된 야스코와 니나에게서도 많은 상처가 발견됐다. 특히 야스코는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 수십여 곳이 흉기에 찔렸고, 부검 결과 흉기가 직접 심장을 파고 들어가 출혈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 레이는 2층 침실에서 목이 졸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건 살인 후 범인의 행적이었다. 범인은 전날 오후 11시쯤 네 명을 살해한 뒤 다음날 오전 1시가 넘어서까지 집 안 곳곳을 활보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멜론을 꺼내 먹었고, 미키오의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했다. 미키오의 시신을 지척에 두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는 ‘여유’까지 보였다. 범인은 머문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범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식탁에는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용기가 그대로 있었다. 미키오가 다니던 회사 사이트 등에 접속했던 인터넷 기록도 지우지 않았다. 지문도 여러 곳에 남겼다. 심지어 범인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물도 내리지 않는 엽기적인 행각마저 서슴지 않았다.

마치 전시하듯 범행도구가 포함된 유류품을 다수 남기고 갔다는 점도 일반적인 범죄와 달랐다. 집 안 곳곳에서 범인이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그랑 티셔츠와 외투, 털장갑, 머플러, 흉기로 사용된 회칼 등 10여 점이 발견됐다. 게다가 범인은 미키오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손을 다친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 상처에서 흘린 피로 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범인은 현장에 자신이 입은 재킷과 티셔츠, 모자, 머플러 등 10여 점의 유류품을 남기고 갔다. 일본 경시청 포스터 캡처

범인은 현장에 자신이 입은 재킷과 티셔츠, 모자, 머플러 등 10여 점의 유류품을 남기고 갔다. 일본 경시청 포스터 캡처


범인 금방 잡힐 줄 알았지만 오판

현장에 남아 있는 많은 흔적 덕분에 수사당국은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특히 지문과 혈액형은 수사망을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범인의 지문과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을 수 없었다. 범행 동기는 더욱 파악하기 어려웠다. 범인이 집에서 현금 15만 엔(약 158만 원)을 훔쳤다는 점으로 미뤄 '금전을 노린 강도 행각’이라는 이유가 제시됐지만, 그가 19만 엔을 발견하고도 두고 갔다는 점은 의문을 남겼다. 금전 문제였다면 범인이 굳이 3층까지 올라가 자고 있던 야스코와 니나를 공격, 2층까지 끌어내려 살해한 것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졌다.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살인을 염두에 두고 가족의 지인들을 조사했지만 문제가 될 만한 관계는 없었다. 미야자와 가족이 집 인근 공원을 자주 방문하던 폭주족ㆍ스케이트보더들과 다퉜다는 목격담이 나오며 이들이 범인이라는 설도 제기됐지만,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야자와 가족이 살던 지역은 공원 토지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마을 인근엔 애초 30채 정도의 집이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진 시기엔 미야자와 가족의 집을 포함해 단 4채에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시점이 늦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목격자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유력한 제보가 없진 않았다. 사건이 알려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팀에는 신빙성 있는 제보가 하나 접수됐다. 제보 내용은 12월 31일 오후 5시 20분쯤, 세타가야역에서 지하철로 약 3시간 거리인 도부닛코역에서 오른손에 깊은 상처가 있는 남자를 봤다는 것이었다. 이 남성은 열차에서 내린 뒤 역무원에게 치료까지 받았다. 역무원이 상처가 난 이유를 묻자 남성은 "열차 안에서 칼을 떨어뜨려 손을 베었다"고 답했는데 열차 안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용의자를 특정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수사당국은 이를 놓치고 말았다. 현장에 남은 지문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으리란 오판 때문에 제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탓이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자 다시 제보 내용들을 들여다본 수사팀이 이 제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지만, 이미 10개월이 지난 후였고 일말의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정목(丁目) 23번지 6호 주택. 이 지역은 인근 공원의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범행이 일어난 2000년 12월엔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위키피디아

피해자들이 살았던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정목(丁目) 23번지 6호 주택. 이 지역은 인근 공원의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범행이 일어난 2000년 12월엔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위키피디아


꼬이는 수사…범인은 한국인?

대대적인 수사에도 단서조차 찾지 못한 수사 당국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때 시민들의 눈길을 끈 건 '외국인 범인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 범인이 한국인으로 지목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신발과 가방 때문이었다. 족적으로 파악한 범인의 신발은 280mm(일본 사이즈 27.5) 크기의 영국 브랜드 '슬레진저'였다. 이 브랜드가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생산되는 제품인 데다 280mm 사이즈는 일본에서 팔린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범인이 두고 간 가방도 한국에서만 생산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이 신발과 가방 모두 일본에서도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근거 없는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됐고, 어떻게든 이에 짜맞추려는 합리화가 지속됐다. 급기야 일본 아사히TV는 2002년 12월 28일 ‘기적의문 TV의 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초능력 조사관'이라는 사람까지 불러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리게 했다. 얼토당토않은 몽타주가 나왔음이 분명했지만, 이 몽타주를 두고 방송에선 "일본형 얼굴이 아니라 한국계에서 보이는 얼굴"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인 범인설은 2005년 범인의 DNA 감정 결과가 공개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분석 결과 범인의 아버지는 아시아계이고 어머니는 유럽계로 분류됐는데, 부계의 DNA가 일본인보다 한국인에서 발견될 확률이 약 3배 높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용의자 범위를 ‘한국계 혼혈인’으로 다시 좁혔고, 한국에 조사원까지 보내 확인에 들어갔지만 허사였다. 범인의 지문을 한국인들의 지문과 일일이 대조한 결과, 일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의심은 사건 발생 십수 년이 지나서도 이어졌다. 2015년 일본 작가 이치하시 후미야는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15년 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또다시 범인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범행을 사주한 이가 재일교포 부동산 중개인 가네다 히데미치, 한국 이름 김수도로 미야자와 가족의 재산을 노렸다고 주장했다. 범행을 저지른 이는 경기도 수원 출신의 조폭 이인은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다케치 쓰치다 전 형사는 2019년 미국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치하시의 주장은 "100%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일본의 한 TV 채널에서 제작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몽타주. 위에는 자막으로 "일본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의 한 TV 채널에서 제작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몽타주. 위에는 자막으로 "일본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적혀 있다.


강력범죄 공소시효 없앤 유가족…수사는 진행중

일본 경시청은 사건 해결을 위해 21년간 28만 명이 넘는 수사 인력을 투입했다. 총 5,000만 명의 지문을 대조하고 130만 건 이상의 DNA 검사도 했지만 단 한 명도 용의자로 확정하지 못했다.

유족에게도, 경찰에게도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사당국은 여전히 연 38명의 인원을 투입해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경시청은 올해 1월까지도 사건 정보가 담긴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며 시민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 발생 후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가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유가족들의 힘이 컸다. 2009년 미키오의 아버지 미야자와 요시유키(당시 80)는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 모임을 결성해 흉악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이듬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돼 해당 사건과 과거의 미해결 사건들까지 시효가 폐지됐다.

야스코의 언니 이리에는 2020년 동생 가족이 살던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범인이 잡힐 때까지 현장을 보존해 달라'고 호소해 결국 지켜냈다. 이리에는 같은 해 언론에 집 내부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여전히 이 집에 들어오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내부를 소개하며 "사람들이 이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지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 느낌을 통해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동생은 되살릴 수 없지만, 범인이라도 잡아 원한을 풀어주고 싶은 언니의 간절한 호소였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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