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일본 사회의 ‘부라쿠 문제’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의 드러나지 않은 사회 문제, ‘부라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이지만, 일본인도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적으로 회자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부라쿠(部落)’ 문제다. 부라쿠란 우리말로 ‘부락’에 해당하는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말이다. 원래 마을, 취락, 소규모 지역 공동체 등을 뜻하지만, 일본에는 이 말을 둘러싼 특별한 맥락이 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고 부르는 급격한 사회 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 국가가 성립했다. 그 이전의 에도시대(江戸時代)까지는 무사, 농민, 장인, 상인 등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된 봉건 사회였다. 에도시대에 인신 매매와 노비 제도는 금지되었지만, 식육이나 우마의 가죽을 처리하는 일, 사형집행, 장례, 오물 처리 등 특정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하층 신분으로 분류되었다. 이들은 논밭을 가질 수 없고, 생활에 필요한 권리도 인정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는 동떨어진, 악조건의 지역에 모여 살아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천민으로 분류되어 차별받던 이들이 살던 지역이나 마을이 바로 부라쿠다.
1871년, 메이지유신과 함께 선포된 ‘해방령’에 의해 일본에서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습처럼 반복되어 왔던 차별적 관행을 없애려는 노력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자면 ‘위로부터의 혁명’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메이지 정권의 해방령은 근대적인 통치 시스템을 확립시키고자 하는 지배자의 논리에 따른 조치였지, 신분과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명분상으로는 신분제를 철폐한 뒤에도 상위 계층에게만 주어졌던 특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제도가 차별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관습이 된 차별은 제도만 없앤다고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 활발하게 재생산되는 혐오와 차별의 담론
신분제가 폐지되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1922년에 부라쿠 주민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차별에 대항하는 당사자 운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일본 정부도 전쟁과 패전 등을 겪으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라쿠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이른바 ‘동화정책(同和政策)’이 추진되었다. 생활 인프라를 정비함으로써 부라쿠와 다른 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차별적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본 인권 교육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부라쿠 출신자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고통받았고,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도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 연애나 결혼에서도 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아서 ‘결혼 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편, 오랫동안 낙후된 채로 방치되어 왔기 때문에 부라쿠 지역은 생활이나 교육 인프라가 열악하고 범죄율이 높은 곳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부라쿠 출신이라고 하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안정적인 취업도 어려웠기 때문에 폭력배가 되거나 범죄 조직에 합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차별적 편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진출의 길이 막히고,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인식만 커지는 악순환이다.
2017년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량이 부라쿠 출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구체적으로는 부라쿠 출신이라는 이유로 혼담이 깨지는 결혼 차별(40.1%), 편견을 담은 차별적인 언행(27.9%), 신원 조사(27.6%), 취업이나 직장에서의 불리함(23.5%) 등이 여전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법무성에 정식 사건으로 접수된 부라쿠 출신자에 대한 인권 침해 사건은 2016년의 78건에서, 2019년에는 244건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조사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150년 전에 사라진 신분제의 잔재가 건재하다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는 증가 추세라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2016년 한 출판사가 5,000여 곳에 달하는 전국 부라쿠의 이름, 가구 수, ‘해방 운동’에 참여한 당사자의 개인정보 등을 한데 모아 ‘부라쿠 지명 총람’이라는 서적을 출판했다. 사회적 편견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리스트는 부라쿠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수단이 될 뿐이었다. 2021년 이 서적의 출판, 판매, 인터넷 게재 등을 금지하는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이 서적이 거래되고, 소셜 미디어에 관련 정보가 공공연히 게시된다. 부라쿠 정보를 총괄한 리스트는 원래 ‘동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실태 조사를 위해 일본 정부에서 초안을 작성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취지가 무색하게 1970년대 대기업 등에서 부라쿠 출신을 걸러내는 ‘블랙리스트’로 악용되었다. 법으로 금지되었던 악명 높은 블랙리스트가 인터넷 시대에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는 부라쿠 지역을 촬영해 보여 주는 채널도 등장했다. ‘역사적인 지역을 탐방한다’는 명분을 내걸고는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모욕감과 불쾌감을 주는, 명백한 혐오 콘텐츠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는 잊히기 마련인데, 유독 혐오와 차별에 관련된 담론은 더욱 활발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실로 이상하고 슬픈 일이다.
차별과 혐오가 ‘문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 사회에서 부라쿠 문제는, ‘자이니치 코리안(8·15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을 아울러 부르는 일본말)'에 대한 차별적 정서와도 상통한다. 자이니치 코리안들도 부라쿠 출신자가 겪는 차별과 혐오를 유사한 방식으로 경험해 왔다. 어떻게 보자면, 일본 사회에 부라쿠 주민에 대한 차별 의식과 혐오 관행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에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쉽게 정당화·습관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차별 정서와 혐오 행위가 일상화되어 마치 ‘문화’인 양 정착되는 상황은 세계사적으로 드물지 않은 사례다. 예컨대, 미국에서 흑인 노예들에 대한 해방이 선언된 것은 19세기 말, 시민으로서의 평등하고 정당한 권리가 법률로 제정된 것은 1960년대다. 하지만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줄여서 BLM)' 운동은 역사적인 적폐와 싸운다기보다 당장 우리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차별과 혐오의 ‘습관’에 맞서는 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굳이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차별과 혐오가 현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메시지가 되었다. 유력한 정치인이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레거시 미디어는 차별적 담론을 여론으로 포장하며, 소셜 미디어는 정치적 참여를 위장해 끊임없이 혐오를 재생산한다. 언제부터 차별과 혐오가 이토록 일상적이 되었다는 말인가. 시민으로서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인터넷 연구자로서는 이보다 더 참담할 수가 없다. 차별과 혐오가 ‘문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