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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까지 수사했으나...'꼬리곰탕' 오명 남긴 그때 그 특검

입력
2022.03.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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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선 사흘 전 이명박 후보 특검 수용
특검법 통과 이틀 후 대통령 당선
정호영 특검, 최초 당선인 직접 수사했으나
석연찮은 의문점 남기며 수사 종료
13년 뒤 "다스는 이명박 소유" 반전
특검 '직무유기' 고발됐으나 무혐의

2007년 12월 16일 늦은 오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BBK 특검법'에 대한 수용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16일 늦은 오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BBK 특검법'에 대한 수용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사면·인사권 문제를 비롯한 신·구 권력 갈등이 집중 조명되는 가운데, 대장동 특별검사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시나브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책과 비전이 실종됐다는 평가 속, 이번 대선에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유난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윤호중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3월 임시국회 기간 내 특검법을 처리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에 윤석열 당선인도 13일 "진상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한다"고 응답했는데요.

하지만 대선 기간 내내 '수사 범위'와 '방법'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모습을 보면 특검이 정말 실현 가능할지 고개가 갸웃거려 집니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22년 첫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장동 의혹' 특검수용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22년 첫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장동 의혹' 특검수용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양당이 각각 어떤 의견을 내놨냐면요. 먼저 수사 범위에 대해 민주당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을 검찰이 부실 수사했다는 의혹부터 규명하자고 주장합니다. 부산저축은행의 대출이 대장동 개발의 자금줄이 됐다며 시작부터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또 당시 주임검사가 윤 당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책임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줄곧 대장동 개발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가 민간사업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특혜를 준 것은 아닌지, 그것이 배임 소지는 없는지 밝히자는 것입니다.

특검 방법으로 민주당은 상설특검제를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 국민의힘(여기까지 각 2명씩),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관, 대한변협 회장이 추천한 특검 후보 7명 중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게 됩니다.

국민의힘은 "상설특검은 정부·여당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며 일반특검제를 해야 한다는데요. 일반특검제는 대한변협이 특검 후보자 4명을 추천하면 여야가 이 중 2명을 추리고 문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는 구조입니다.


대장동 특검을 둘러싼 양당의 주장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수사 범위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부터 이재명의 배임 여부
수사 방법 상설특검제 일반특검제

정리하고 보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대목이 하나 더 있네요. 민주당 주장대로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부실 수사 건을 수사하려면 윤 당선인도 조사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데요. 당선인 수사, 가능할까요.

대통령은 헌법 제84조에 따라 특수한 경우(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추는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에 심판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수행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새 대통령이 될 당선인도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 것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요, 사실 당선인의 신분으로 특검 수사를 받은 사람이 이미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투자자문회사 비비케이(BBK)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등의 의혹으로 수사를 받은 건데요.

만약 대장동 특검법이 통과된다면 '데칼코마니'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당시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게 됐는지 그 전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검찰 '무혐의'→'광운대 동영상' 공개→MB 특검 수용

2007년 12월 5일 김홍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2007년 12월 5일 김홍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때는 바야흐로 2007년 12월 5일.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단 2주 앞두고 있던 날입니다. 이날 검찰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투자자문회사 비비케이(BBK)의 실소유주로, 코스닥 상장사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검찰은 '무혐의' 결론 내립니다.

이후 검찰의 결론을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실제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50.4%가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죠.

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날, 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했다는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메모가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플리바게닝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당시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 전 대표는 장모와의 필담에서 "이명박 쪽을 풀리게 하면 3년으로 맞춰주겠다고 한다"고 썼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광운대의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강연자로 나서서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은 강연내용을 담은 동영상 중 일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광운대의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강연자로 나서서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은 강연내용을 담은 동영상 중 일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 끝난 수사를 특검이 다시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16일 이른바 '광운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입니다. 2000년 10월 이 전 대통령은 광운대 특강에서 "저는 요즘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습니다. 금년 1월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고 말합니다.

대선까지 불과 사흘 앞두고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즉각 "이 후보가 거짓말을 했고, 무혐의를 발표한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비판을 쏟아냅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까지 법무부 장관에게 BBK 사건 검찰 재수사를 지시하며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죠.

오전까지도 "특검법 수용 검토는 오보"라며 일축했던 한나라당은 그날 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특검법 수용 쪽으로 의견을 모읍니다. 특검법안을 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레 "뭔가 숨기려 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날 마지막 TV토론을 마친 뒤 상황 설명을 들은 이 전 대통령도 결국 특검을 수용합니다.

그렇게 17일 일명 '이명박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합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9일 이 전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로써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특검 수사가 닻을 올리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위헌 시비 속 어렵사리 출범한 정호영 특검호

2007년 12월 27일 한국일보 1면

2007년 12월 27일 한국일보 1면

당선 이튿날 한나라당은 특검 철회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적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특검법은 원안대로 통과됩니다.

특검팀은 출범도 전에 두 개의 큰 고비를 맞습니다. 먼저 특검 임명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끝낸 사안을 재수사해야 해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고사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듬해 1월 7일 법관 출신 정호영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됩니다.

이명박 특검법이 위헌이라는 시비도 있었습니다. 특정 개인·사건을 겨냥한 처분적 성격의 수사는 위헌이고,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죠.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특검 임명 사흘 후인 10일 특검법 대부분의 조항을 합헌 결정합니다.

헌재는 '참고인 동행명령제'는 위헌이라고 판단합니다. 영장 없이 참고인의 수사 참여를 강제하는 조항인데요. 이를 두고 '특검의 주요한 무기를 박탈당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검찰 조사가 완료된 사안이라 영장을 발부받을 만한 대상자가 없다는 게 당시 특검의 특징이었습니다. 즉 가급적 많은 참고인을 불러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심지어 특검 기간은 40일(연장 포함)로 제한돼 있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 직접 조사는 했으나...

정호영 특검이 2008년 1월 7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태평양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정호영 특검이 2008년 1월 7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태평양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우여곡절 끝에 정호영 특검호는 15일 출항했고 그날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당시 대검찰청 연구관이었던 윤 당선인도 특검팀에 파견돼 함께 근무했습니다.

특검팀은 ①BBK를 포함 이 전 대통령를 둘러싼 이른바 '4대 의혹'을 수사합니다. ②다스 및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③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특혜 분양 의혹 ④검찰의 김경준 회유 및 협박 의혹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BBK는 앞서 보셨듯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서 주가조작에 가담했다(증권거래법 위반)는 의혹입니다. 다스와 도곡동 땅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돌려 930억 원의 재산 신고를 누락했다(공직자윤리법 위반)는 의혹이 일었고요.

상암동 DMC 특혜 분양은 대장동과 닮았는데요. 이 전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 재직 당시 한 부동산업체에 DMC 부지를 일부 넘기고 은행 대출까지 도와줬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는 의혹입니다. 마지막으로 김경준씨에 대한 부분은 '이 전 대통령은 무혐의' 결론 냈던 검찰 수사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것입니다.

김경준씨, 이 전 대통령 처남 김재정씨 등 사건 주요 인물들이 줄줄이 소환되는데요.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이 전 대통령 '직접' 수사 여부였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수사 종료를 일주일 앞둔 2월 17일 일요일 저녁 약 3시간 동안 이명박 당시 당선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됩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에 그쳤기 때문에 특검팀은 어떤 식으로든 직접 조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수사 대상자는 차기 대통령. 특검팀 입장에선 직접 조사가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직접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당시 한국일보 기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선인 주변에 대한 수사를 통해 이 당선인의 무혐의가 점차 드러나자 특검팀은 직접 조사를 해도 부담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당선인에 대해서는 소추가 가능하다는 학계의 다수설도 특검팀의 행보를 가볍게 했다.

2008년 2월 22일자 한국일보 5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방문조사로 진행됩니다. 당선인에 대한 예우와 일정을 감안한 것인데요. 이렇다 할 혐의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자칫 소환 조사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꼬리곰탕 특검' 꼬리표 달고 퇴장... 13년 뒤 법원 "다스는 이명박 소유"

2008년 2월 22일 한국일보 4면

2008년 2월 22일 한국일보 4면

나흘 후인 2월 21일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아시다시피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선 모두 무혐의, 검찰의 김경준씨 회유 의혹도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게다가 도곡동 땅의 경우 특검은 '형 이상은씨 지분은 상은씨 본인 소유가 맞다'고 확인합니다. 앞서 검찰은 '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특검은 다만 DMC 특혜 분양 의혹을 받았던 부동산업체 관계자의 횡령 혐의를 검찰에 통보합니다.

그러나 특검 수사 결과 곳곳에도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남았습니다. 특히 도곡동 땅의 경우 특검은 '상은씨가 지분을 살 만한 재력이 있었다'며 상은씨 지분이 맞다고 결론 내렸는데요. "매입 여력이 실제 매입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또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BBK 회장 명함'을 받았다는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의 진술보다는 "2001년 김경준씨와 결별한 후 명함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이 전 대통령의 진술만 인정한 것도 의문으로 남았고요.

이 때문에 정호영 특검은 '꼬리곰탕 특검'이라는 씁쓸한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 방문 수사 때 저녁 식사로 꼬리곰탕을 함께 시켜 먹었던 것을 트집 삼아 "꼬리곰탕만 먹고 끝났다"고 비아냥댄 것이죠.

추가 의혹이 증폭되는 와중에 이 전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나흘 뒤인 25일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반전은 13년 뒤. 대법원은 "다스는 이 전 대통령 소유"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삼성전자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다스의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를 유죄로 인정해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형을 확정합니다.


정호영 전 'BBK 사건' 특별검사가 2018년 1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상가 5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전 특검은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120억 원 횡령' 정황을 파악하고도 제대로 후속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됐다. 서재훈 기자

정호영 전 'BBK 사건' 특별검사가 2018년 1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상가 5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전 특검은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120억 원 횡령' 정황을 파악하고도 제대로 후속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됐다. 서재훈 기자

'부실 특검'이라는 비판도 따랐을 터. 참여연대가 2017년 12월 자신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자 정 전 특검은 이듬해 1월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합니다. "특검 종료 후 다스 120억 원 횡령 건을 검찰에 정식 인계했으니 부실 수사의 책임은 검찰에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찰은 2월 19일 정 전 특검을 무혐의 처분하며 "120억 원은 다스 경리 직원이 횡령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윤주영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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