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악당 호문쿨루스. 그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이었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려 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7대 죄악인 탐욕, 색욕, 식욕, 분노, 질투, 나태, 교만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낸 뒤 자식뻘의 호문쿨루스들에게 각각 주입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완벽한 존재가 되고 더 나아가 신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다른 호문쿨루스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모두 인간을 열등하게 바라보았다. 인간을 탐욕이나 질투 같은 '하찮은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종 욕망을 제거한 호문쿨루스들은 인간보다 완전한 존재가 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 욕망은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끊임없이 부인했지만, 그들은 매 순간 탐하고 분노했으며 심지어 인간을 동경하기까지 했다. 결핍이 낳은 오류였다. 욕망 또한 인간의 일부라는 걸, 가짜 연금술사들은 간과했다.
있는 재료로 더욱 값진 걸 만들려 한다는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정치인은 연금술사를 닮았다. 그들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하는 범위 안에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더러는 인조인간, 즉 호문쿨루스를 만들겠노라는 중세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처럼 무모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한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 집값 잡힐 거니 팔아라 하는 말들이 그렇다. 그 상상은 당연히 실패로 귀결되었다. 욕망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배제한 연금술은 성공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걸 정치인들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도 자신의 욕망에는 충실했다. 악덕 재벌에게 협조하지 않겠다며 관내 마이스터고 학생들의 삼성 취업에 반대하고, 저소득층 학생 대상 장학 사업을 막은 교육감은 제 자식을 영국 케임브리지에 유학 보냈고, '세입자들의 고충을 생각해서' 임대차법을 밀어붙인 국회의원은 정작 자기 집 임대료를 대폭 올려 폭리를 취했다. '욕망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전제를 바탕으로 연금술을 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가짜 연금술사들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패인을 놓고 많은 이유가 제기되었다. 원래 근소한 표 차의 패배에는 무수한 원인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내로남불'이 주된 원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타인의 욕망에 대한 멸시가 그 발단이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눔과 연대의 광주 정신'을 위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정치인들은 욕망을 죄악시하며 정책을 입안했다. 자기들도 지킬 수 없는 엄격한 도덕률은 당연히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고 싶고,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가 억눌린 국민들의 분노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비록 이재명 후보가 실용주의를 내걸고 고군분투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이미 드높아진 정권교체의 파고를 헤쳐나올 수는 없었다.
얼마 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와 '한국 청년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인터뷰한 적이 있다. 미국인 기자는 내게 "왜 한국 청년들이 진보 진영에 등을 돌렸느냐"고 물었다. '내로남불'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공교육 강화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명문 사립학교를 보낸다"고 풀어서 대답했다. 그는 대답을 듣자마자 "우리나라도 그렇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존재하는 욕망을 애써 부인하는 가짜 연금술사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의 연금술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은 곧 퇴장한다.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뒤처지는 소시민들을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진보가 새롭게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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