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중추 격인 젊은 IT종사자들 대거 러시아 떠나
고국 떠난 죄책감 더해 루블화 폭락으로 고통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최소 수천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을 잃은 러시아가 또 다른 악재에 맞닥뜨렸다.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의 중추 격인 정보기술(IT)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러시아를 잇따라 떠나고 있다. 개전 이후 급속도로 경직되는 러시아의 상황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인데, 조국을 떠난 청년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고정된 장소에서만 일해야 하는 구시대 노동자와 달리 언제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디지털 노마드(Nomadㆍ유목민)의 정체성이 이들 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전범’으로 낙인찍힌 조국을 떠나는 마음은 편치 않아 보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세계경제에서 이탈한 러시아에서 젋은 전문가들의 ‘탈출’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구(舊)소련 구성국으로 러시아어 사용이 가능한 아르메니아에 도착하는 러시아인의 수는 개전 이후 매일 3,000명 이상이라고 아르메니아 정부 당국자는 NYT에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아르메니아에 노동자로 등록된 러시아인의 수가 3,000~4,000명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간 수년간 누적된 노동자만큼이 하루에 쏟아지는 셈이다. NYT는 인접 국가로 이동한 러시아인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아르메니아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인이 2만 명을 넘는다고 덧붙였다. 조지아로 빠져나간 러시아인의 수도 상당하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주까지 조지아에 러시아인 2만5,000여 명이 피신해 있다고 전했다.
전쟁 전만 해도 러시아는 그나마 살 만했다고 망명자들은 말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독립 언론은 물론 인터넷 검열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개전 후 상황은 180도 뒤집혔다. 러시아를 떠난 젊은이들 대다수는 애써 말을 아끼고 있다. NYT는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 출신 망명자 여러 명을 만났지만, 이들은 러시아에 남은 가족에게 영향이 갈까 두려워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반전 시위 참가자들을 잇따라 구금하는 등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살 길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미국 등 서방의 잇따른 제재로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급전직하하면서 머물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가 조국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전 세계 인구 관련 정보를 제공 중인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러시아의 총 인구는 1억4,60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18~44세 사이 청년층의 비율은 34%로 5,000만 명에 가깝다. 젊은이 수만 명이 러시아에서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인구구조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미래 사회의 먹거리인 IT 및 기타 첨단 산업 종사자라는 점이 문제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인재 유출은 수년간 러시아를 괴롭혀 온 문제”라고 전했다. 미국 기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푸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2019년까지 러시아를 떠난 사람은 200만여 명에 달하며, 그중 상당수는 기업가이거나 학자 등 지식계층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 개전 이후 러시아를 떠난 젊은이들까지 감안하면 러시아의 인재 유출은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콘스탄틴 소닌 미국 시카고대 정치경제학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지난 8일까지 러시아인 최소 20만 명이 조국을 떠났다고 예측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더해진 인재 유출이 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의)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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